조 순(전 경제부총리)

나라의 전망에 대해 매일같이 비관의 소리를 듣고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낙관하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억지로 하는 낙관은 낙관이 아니고 애국도 아니다.

친미니 친북이니, 좌파니 우파니 하는 선입견을 모두 다 버리고 한국의 앞날을 생각해 보자. 이 나라는 해방 이후 가장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 나라를 둘러싸는 어두운 그림자가 시시각각 짙어지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태연하고 국민 역시 그러니, 한국의 고뇌는 깊어만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60년 동안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소리는 그만 두자. 다 아는 소리다. 자화자찬의 이면에는 엄청나게 풀기 어려운 문제가 쌓이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 외교, 경제, 교육 등의 개선의 길이 꽉 막혀 있다.

정치를 보자. 정치권의 리더십이 지금처럼 빈약한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여권은 대선주자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었는가. 그러면서도 개헌과 한미FTA에 ‘올인’하고 있다. 앞으로의 9개월은 이것을 중심으로 판이 짜일 것 같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우리의 어두운 그림자를 더욱 짙게 할 뿐, 장래의 어두움을 걷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나라가 이렇게 된 것은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제로 돼 있기 때문은 아니다. 개헌이 우리 정치의 리더십을 살린다고 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경제는 어떤가. 어느 대기업 총수는 몇 해 후면, 혼란이 올 수 있을 것이라 했지만, 나는 우리는 이미 그 어려움의 와중에 빠져 있다고 본다. IMF 이후 정부는 정부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업계의 리더십도 빈약하다. 전경련 회장 자리 하나 가지고 진통을 겪었다. 국민은 저성장과 양극화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한미FTA가 이 경제를 두 가지 늪에서 헤어 나오게 할 것인가. 그렇게 믿을 하등의 이유도 없다. 내가 보기에 한미FTA는 가뜩이나 빈약한 이 나라 정부의 역할을 원천적으로 막아 버릴 것이며, 양극화는 더욱 가중될 것이고, 실업문제 역시 그럴 것이다.

대외관계는 어떻게 될까. 2월 13일 6자회담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지난 반세기 동안 남북관계 최대의 뉴스였다. 북한의 정권 붕괴를 바라던 미국의 대북정책의 기조가 달라졌다는 신호였다. 앞으로 북미관계가 어떻게 될지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하자면, 한국이 대북지원 부담의 큰 부분을 지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나빠지는 경제가 한편으로는 FTA의 덫에 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북지원의 부담에 허리가 휘게 될 것 같다. 우리의 정치, 사회, 교육 등에 대해서도 북한의 변수가 추가될 터인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국민이 가뭄에 비를 기다리듯, 정권이 갈리기를 바라고 있다. 정권이 갈리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인가. 그런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386세대의 무능을 나무라는 사람들이 집권하면 386보다 나을 것인가. 꼭 그럴 것 같지도 않다. 386을 등장시킨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아닌가. ‘참여정부’는 그전의 정권과 무엇이 다른가. 정권만 바뀌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과거에도 그랬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 기대는 항상 빗나갔다. 그 기대가 실현될 가능성은 세월이 지날수록 적어지고 있다. 좋은 사람이 나와야 한다. 좋은 사람이 나오자면 국민의 마음이 달라져야 한다.

※인간개발연구원 월보에 한 주 먼저 소개되는 조순 칼럼은 여의도통신의 취지에 공감을 표한 필자와 연구원의 동의하에 전재합니다. 이 칼럼은 여의도통신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27개 지역언론 회원사에도 동시에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