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486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1월 18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문창극 중앙일보 주필이 ‘한국정치 어디로 가야 하나-2007 대선정국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누가 대선 승자? 신문 읽지 마라!”

“유력 대선 주자인 고건 전 총리의 예상보다 빠른 중도 하차를 보면서 ‘정치는 살아 있다’와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이 왜 지금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인구에 회자돼 왔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아무리 유능한 정치부 기자라 할지라도 누가 대선 승자가 될 것인지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솔직히 정치부 기자치고 중요한 선거 결과를 정확하게 맞춘 적이 별로 없다. 주로 정당에서 작성한 문건에 적힌 몇 구절과 의원들이 던지는 발언 몇 마디에 의존하게 되다 보니 그런 결과가 나타난다. 사람의 마음, 즉 민심(民心)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읽어내지 못하고 정치인의 입만 따라가다 보면 오류는 불가피하다. 정치는 결코 입력한 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다.”

문창극 중앙일보 주필은 정치부 기자가 ‘불완전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으로 강연의 서막을 열었다. 그렇다면 ‘대선 기상도를 예보하는 캐스터’인 정치부 기자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실수와 오류를 연발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문 주필은 자신이 목격하고 체험했던 두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5년 전 이맘 때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리라고 예측한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1985년 2.12총선 당시에도 그랬다. 주로 민정당과 민한당을 출입하던 정치부 기자들은 신민당 돌풍이 불면서 총선 정국이 확 뒤집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두 거물 정치인이 정치규제 상태에 놓여 있었고, 무엇보다 먼저 집권당인 민정당의 위세가 너무나 강하다고 판단했기에 폭풍전야의 조짐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민정당과 민한당 의원들의 입만 좇았을 뿐이지 거리에서, 시장에서, 유세장에서 불어오던 민심의 소리에는 귀를 막고 있었다.”

민심은 엘리트 정치인이 사무실 탁상에서 작성한 문건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오만한 권력자가 구상한 정치공학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 아마도 문 주필은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래서 뜻있는 정치부 기자라면 그러한 문건이나 서류만 보고 기사를 쓰면 안 된다는 교훈을 전달하고 싶었을 터!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 먼저 상황적으로 대선을 파악하면 안 된다. 상황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일 신문에 나오는 뉴스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 솔직히 어떤 주자가 머리를 풀어 헤친들 묶어 올린들 그게 우리에게 뭐가 중요한가? 누가 1등으로 달리고 있느냐는 경마식 여론조사도 쓸모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결정적일 때 확 뒤집히는데 1년 내내 선두를 달리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돈키호테식 발상이라고 사람들은 조롱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바로 ‘나’가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 내가 바라는 지도자나 대통령의 상(像)을 먼저 그려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분명한 대통령 상을 가지고 상황과 정국을 바라보려면 신문을 읽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을 선택한다는 것은 ‘얼짱’이나 ‘몸짱’을 뽑는 것과 분명히 다르다는 것, 대선 후보가 반드시 최고의 리더십과 도덕성을 가진 사람은 아니라는 것, 아마도 문 주필은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설사 차선(次善)이나 차악(次惡)이라도 내 주관만 분명하다면 대선 주자 몇 사람의 부침에 홀리지 않게 될 터!

“고건 후보가 중도 하차하면서 큰 공백이 생겼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 중의 상당한 지분은 이명박과 박근혜 등 야당의 두 유력 대선 주자에게 몰렸다고 한다. 특히 이번 파동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본 이명박 전 시장 진영은 기분이 매우 좋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을 1년이나 앞둔 상황에서 나타나는 이런 쏠림 현상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 하면 우리 국민은 싫증을 너무 잘 내기 때문이다. 설사 시청률이 50%를 넘긴다 해도 드라마가 너무 길어지면 사람들은 새 드라마와 새 주인공을 찾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어디까지나 여론조사 1위를 한 것에 불과한데도 당사자나 사람들은 대통령을 이미 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5년 전 이회창 씨와 그 부인이 바로 그랬다.”
상황론을 경계하라던 문 주필의 어법은 그러나 갈수록 적나라해졌다. 현재의 정국을 9.11테러 사건에 비유했던 것이다. “한나라당은 ‘쌍둥이 빌딩’(박근혜, 이명박)이고, 그나마 존재하던 고건이라는 축마저 사라진 여권은 아무 것도 없는 ‘그라운드 제로’ 상태”라는 것!

“그런데 지금 노 대통령이 혈혈단신 ‘개헌호’를 몰고 오고 있다. 그 비행기는 가미가제식으로 쌍둥이 빌딩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물론 노 대통령이 개헌을 발의해도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노 대통령은 자신을 희생시켜서 무엇인가를 창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한나라당의 균열을 촉진하는 노림수임이 분명하다.”

/정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