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485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1월 11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가 ‘일류선진국이 되는 한국경제의 길’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적이 원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말라”

“최고의 군사전략가로 불리는 보 뉴엔 지압 장군은 ‘적이 원하는 곳에서, 적이 원하는 시간에, 적이 원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말라’고 강조했다.

경쟁전략의 권위자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경영대 교수 역시 ‘경쟁자와 다른 것을 하라. 어쩔 수 없이 같은 것을 해야 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하라.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모방은 전략이 아니다’라고 충고했다.”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는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강연의 서막을 열었다. 이날의 강연 주제는 ‘일류선진국이 되는 한국경제의 길’. 송 교수는 우선 우리 자신의 강점을 찾고 이를 보완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1960~2000년 동안 1인당 국민소득을 10배나 증가시키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경영학의 원조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 교수는 서양과 일본이 각가 2백50년과 1백30년에 걸쳐서 성취한 공업화를 한국은 불과 40년 만에 이룩했고, 기업가 역량 발휘에 있어서도 세계 1등은 미국이 아니라 단연코 한국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OECD는 학생들의 문제해결 능력이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나라로 한국을 뽑았다. 유명한 컨설팅 회사인 골드만 삭스는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에 있어서 2025년에는 미국, 일본 다음으로 세계 3위가 될 것이며, 심지어 2050년에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송 교수는 외국의 전문가들이 한국의 역량을 이렇게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비해서 정작 우리 자신은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듯했다. 그렇다면 한국이 이렇게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며 잠재력을 키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이 많다. 현대중공업의 세계 조선시장 점유율은 20%가 넘고, 세계 선박엔진 시장점유율도 35%가 넘는다. 이는 세계 5대양을 항해하는 선박의 5분의 1 이상이 현대 제품이고, 3분의 1 이상이 현대 엔진을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스코는 3년 연속 철강 생산성 세계 최고 기업의 자리를 차지한 바 있다. 광양제철소는 단일공장으로 세계 최고이자 최대이다. 이렇게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간 한국 기업들은 외국 기업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발한 모델로 일류가 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남을 모방하면 2등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1등은 불가능하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미국, 스위스, 일본, 싱가포르 등 세계 일류국가는 자체의 성장모델을 가지고 있다.”

모방은 전략이 아니다. 송 교수가 강연 중 몇 차례나 강조했던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다른 나라를 앞설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송 교수는 경제목표를 분명히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 릭 워렌은 ‘최대의 비극은 죽음이 아니라 목적이 없는 삶’이라고 했다. 국가의 경우에도 올바른 경제목표가 없으면 해체의 비극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옛 소련이 그 실례가 아닌가. 지도자들이 경제목표를 혼동하면 나라의 경제는 어지러워지고 국민생활은 빈곤해진다. 한국은 세계 4대 강국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등 지정학적 위치가 독특하기 때문에 국가안보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 분명한 경제목표가 있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방대한 시장을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지정학적 이점을 잘 활용하여 이를 실현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는 기업과 국가의 성장이 중요하다. 따라서 전략으로 경쟁하는 시대에서 생존하려면 신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송 교수는 경제발전으로 가는 길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시골길, 지방도로, 국도, 턴파이크(고속도로)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는 한국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턴파이크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지금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턴파이크를 달려 왔다. 그는 턴파이크를 만들고 진입로도 만들어서 시골길을 달리던 한국인들이 이를 타고 놀라운 속도로 달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한국은 단기간에 빈곤 탈피, 북한과 러시아 추월, 선진경제권 진입, 수출 3천억 달러 달성, OECD 가입 등의 빛나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만든 턴파이크는 어디까지나 ‘권위주의적 시장경제 턴파이크’였다. 권위주의는 모든 권력이 국가 지도자에게 집중되므로 국가 지도가자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지도자가 유능하고 청렴하면 큰 문제가 없지만 무능하고 부패하면 나라가 망하는 길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 필요한 턴파이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박정희의 턴파이크(옛것)가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목표로 했다면 새로운 턴파이크(새것)는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는 일류선진국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송 교수는 말했다. /정지환 기자

송병락 교수의 이력서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미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제학 석·박사
▲ 미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후 과정
▲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연구원, 산업정책실장
▲ 국제연합, 세계은행, 아세아개발은행 고문
▲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세계경제연구소 소장, 부총장
▲ 에너지경제연구원 이사장
▲ 미 하버드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공동대표
▲ 보건복지부 국민연금발전위원회 위원장
▲ (재)자유기업원 이사장

상훈: 제1회 한국경제학회상, 제10회 자유경제출판문화상, 국무총리표창
저서: 마음의 경제학, 경제는 시스템이다, 자본주의의 웃음 자본주의의 눈물, 일류선진국이 되는 한국경제의 길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