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인력과 자금, 고도의 홍보 전략으로 국민들을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고 진보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국민의 의식이다."
민주당 김효석 의원이 삼성 그룹 이건희 회장에게 보낸 공개편지의 한 구절이다.
김 의원은 지난4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게 드리는 고언'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재경부 국정감사 현장에서 공개했다.
"'삼성공화국' '삼성국감'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는 최근 상황에서 한번쯤은 이건희 회장을 만나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서두를 뗀 김 의원은 "경영학자의 한 사람이로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편지를 쓰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심각성을 이건희 회장이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을지, 가신그룹의 장막에 가려 사태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국민들의 의구심도 회장님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한 요인이 됐습니다."
김 의원은 편지라는 형식을 빌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삼성에 대해 수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김 의원의 정리한 문제의 핵심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현재 삼성과 관련된 문제제기의 핵심이 삼성그룹인가, 아니면 이건희 회장인가. 둘째, 현재 삼성과 충돌하고 있는 법규가 과연 삼성만을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는가.
김 의원은 이 두 문장을 화두로 삼아 자신의 평소 소신을 밝히고 있다.
먼저 첫번째 의문에 대한 해답.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갈등 양상이 기업경영 혹은 그룹이나 계열사 고유의 사업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예외없이 이건희 회장 가문의 소유·지배구조와 관련돼 있으며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 김 의원의 판단이다.
다음은 두번 째 의문에 대한 답. 삼성이 우리 사회와 충돌을 빚고 있는 법규는 삼성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적용되고 자본주의 시장 질서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은 삼성을 겨냥해 만든 비정상적이고 특이한 구조의 법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마련된 것이라는 주장이 사회 저변에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김 의원의 판단이다.
경제학자로서의 김 의원의 판단은 대다수 국민들의 보편적 판단 기준과 상당수 일치를 보였다.
그럼 세간의 지적에 대한 삼성 그룹 이건희 회장의 처신은 어떠해야 할까.
김 의원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선비정신'이라는 단어를 들며 결자해지를 요구했다.
"이제 국민들은 '이건희'라는 이름 또한 국민 앞으로 다가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삼성이라는 틀에 얽매여 삼성이라는 성을 지키기 위해 삼성이 갖고 있는 영광만을 지키고 이를 가족에게 물려주기 위해 자꾸만 법의 어두운 그늘만 찾지 말고 국민들과 함께 설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법의 어두운 그늘에만 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소통이 되지 않는 그늘만을 찾다보면 그 결과는 국민과 철저하게 괴리된 기업집단의 암울한 모습만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이건희 회장의 결단을 촉구하는 뜻의 고언이다.
김 의원은 "타의에 의한 압박이 아니라 삼성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모든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다면 비판과 비난, 그리고 갈등은 국민의 사랑과 지지로 바뀔 것"이라며 삼성 스스로의 해결을 요구했다.
가신 그룹에 대한 충고도 이어졌다.
김 의원은 "혹시 쓴 소리하는 경영자들은 없고 과잉 충성하는 가신들의 벽에 둘러 싸여 진정한 시장의 정보로부터 유리되어 있지나 않은지 한번 돌이켜 보아 달라"고 밝혔다.
삼성에 대한 김 의원의 쓴소리는 스웨덴 최대 재벌 '발렌베리 가문' 처럼 국민의 존경을 받는 가문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소박한 기대로 끝을 맺었다.<여의도통신=김동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