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최고의 태평성대를 꼽으라면 단연 중국의 요순(堯舜)시대다. 이렇듯 태평성대를 구가한 요, 순 임금의 통치철학은 알고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한사람의 고통으로 수많은 사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일인지고 만인지락(一人之苦 萬人之樂)’이다.
요 임금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효자로 이름난 현자 요중화에게 물려줬다. 요중화가 바로 순 임금이다. 국민을 편안하게 하려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 아들보다 나라의 미래와 백성의 안위를 더 소중히 여긴 요 임금의 정치철학이 엿보이는 단면이다.
5.31 지방선거가 끝나고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도시계획조례21조 개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규제완화를 위해서 조례를 개정하겠다’는 집행부의 발의에 따라 지난 5일 조례개정심의위원회가 열렸다. 예상대로 심의는 통과됐고 의회의 승인을 받기 위한 부의 과정에 있다. 위원회의 심의과정에서 반대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소수의견이라는 이유로 묵살됐다고 한다.
하기야 심의위원회라는 게 군청 실과장들로 구성된 형식적인 위원회다 보니 무슨 역할을 기대하겠는가마는 심의에서 통과된 과정을 알고 보니 정말 한심하기 이를데 없다. 위원장이 “반대하는 사람 손드시오” 하자 단 한사람만 손들고 나머지는 묵묵부답. 이어진 위원장의 말, “다수가 반대하지 않으므로 통과된 것으로 간주하고 의회로 보냅시다.”
만약 위원장이 거꾸로 “조례개정에 찬성하는 사람 손드시오”라고 물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한사람만 빼고 전원 손들었을까?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9월 같은 조례안을 심의했을 때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60년대 초등학생 시절 담임선생님이 자기가 찍은 학생을 반장 시키기 위해 누구 이름을 호명하고서는 “선생님이 보기에 아무개가 반장으로 적임자일 것 같은데 반대하는 사람 손들어 봐” 하고는 무서운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웬 방정맞은 망상일꼬.
군은 민선3기 때 제정 공표한 도시계획조례21조의 개정을 위해 지난 7월 24일부터 8월 15일까지 20여일간에 걸쳐 입법예고를 하고 주민의견을 수렴했다. 담당부서 관계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비공식 집계이긴 하지만 주민의견 수렴 결과 조례개정에 반대하는 의견이 약 80%, 찬성하는 의견이 약 20%로 반대의견이 압도적이라고 한다. 물론 이같은 결과가 심의위원회에 전달됐으나 “반대하는 의견 대부분이 타당성이 없는 의견”이라는 이유를 들어 묵살된 것으로 전해졌다.
타당성이 없다? 심의위원회에서 주장하는 타당성은 무엇에 대한 타당성이며 누구를 위한 타당성인지 감히 묻지 않을 수 없다. 군수의 생각과 틀리면 무조건 타당성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한낱 패랭이 민초들의 잡다한 의견이라서 가치가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반영도 되지 않을 주민의견수렴은 뭐하러 했느냐”는 질문에 정말 기막힌 답변이 나왔다. “그냥 절차상 해야 하니까” 한 것이라고. 듣고보니 ‘愚問賢答’이다.
그랬겠지. 상상외로 반대의견이 많이 나오니 당황도 됐겠지. 아무리 그렇다고 주인이신 군민들의 고견을 한마디로 타당성이 없다고 딱 잘라서야 이게 어디 ‘군민이 주인되는 살맛나는 담양’에서 있을 법이나 한 일인가! 더 이상 발의부서나 심의위원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그들 스스로도 잘잘못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인즉 닦달해서 무엇하겠는가. 아픈데 계속 찌르면 피 나올지도 모르니 이쯤에서 그만두자.
지금 우리 지역은 아직도 선거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갈등의 골이 깊게 드리우고 있다. 이처럼 얽히고 설킨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심 없이 주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는 지도자의 통치철학이 절대 필요하다. 한사람의 고생으로 성공을 거두면 수많은 사람이 즐겁게 된다. 반대로 한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사례도 있음을 주지코자 한다. 무릇 지도자는 독선과 독주를 버리고 자기절제와 희생정신을 통해 화합과 포용의 통치력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주민들의 의견을 소중히 여기고 주민들과 함께 지역의 미래를 논의하고 고뇌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우리는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