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단체에서 장애인 체험의 일환으로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선녀 역할을 맡은 사람은 두 눈에 띠를 둘러 장님이 되고 나무꾼을 맡은 사람은 그 선녀를 데리고 다니는데 절대 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 결국 눈을 감고 따라가는 선녀는 앞에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상태가 돼버린다. 그래 나무꾼의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나무꾼이 말을 못하는 대신 온갖 수단으로 알려주는 도움에 의지할 도리밖에 없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그것을 잘 극복해 나갈 방법을 생각케 하고 직접 헤쳐 나가도록 하는 선녀와 나무꾼 되기 프로는 많은 것을 떠올리게 했다.
선녀는 나무꾼이 무척 고맙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고 나무꾼은 장애인이 얼마나 힘든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농경사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나라에서는 그 동안의 근대화와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 대한 태도는 전통적 농경사회의 가치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전통적 농경사회에서는 힘든 농사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성인만을 인격체로 대우하고, 여성과 아동, 장애인은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더부살이에 불과한 취급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전통사회에서 장애인은 전생의 업보로 천형을 받은 사람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제는 장애인에 대한 이러한 시각이 바뀌고 있다. 장애는 전생의 업보도 아니고,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도 아니다. 2004년 12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등록장애인은 161만 2990명으로 전체 인구의 3.3%가 장애인이다. 인구 30명당 1명이 장애인으로 등록한 것이다. 실제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으로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을 감안하면 실제 장애인의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특히 이들 장애인구의 90%이상이 각종 질병과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 후천적 원인으로 장애인이 되고 있어 장애는 더 이상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일상적 사건이 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예비장애인'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장애인에 대한 근거 없는 그러나 뿌리깊은 편견과, 장애인이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 활동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편의시설, 채용에 있어서의 편견 등 아직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게 너무나 높은 벽을 쌓아 놓고, 우리의 이웃으로, 우리의 동료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사회에 살면서 장애인을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언젠가 내가 장애인이 되었을 때 나 또한 이웃으로 거부당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배려이자, 나 자신에 대한 배려다.
현재 담양군에는 2600여명의 장애우가 살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소망은 장애인 복지회관을 만들어 조그마한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공간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때마침 담양군장애인후원회에서 ‘러브뱅크’를 만들어 후원자를 모집하고 있다. 1구좌에 5000원씩의 후원금을 받는데 벌써 후원자가 상당수에 이른다고 한다. 이 후원금은 전액 장애인복지회관 건립기금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 한 코미디언의 죽음이 흡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국민적 금연운동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장애인 복지회관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러브뱅크 운동이 그동안 숨겨져 있었던, 또는 애써 외면하고 무시하고 있었던 우리의 또 다른 이웃, 장애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철폐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 되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