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연정(聯政) 발언에 대해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해온 김효석 의원이 정부 여당의 연정론(聯政論)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김 의원은 지난 1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연정 이상의 가치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시기’라며 정치권의 연정(聯政) 논의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김 의원은 연정론에 대한 다소 긴 글에서 “최근 연정에 대한 논의를 바라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변화관리 전문가 르윈의 이론을 제기하며 참여정부 탄생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던 김 의원은 결국 최근 연정 논의가 사실상 ‘정파적’이라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정권획득만을 위한 연정 논의에 대한 김 의원의 부정적 인식을 보여줬다.
김 의원은 연정 발언의 배경에 대해 “연정(聯政)은 선의로 본다면 국정책임자로서 대통령이 국정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고민한 끝에 선택한 카드로 보여진다”면서도 정치공학적 위험을 지적했다.
연정론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인식의 배경을 진단한 김 의원은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서도 충고를 던졌다.
김 의원은 정부 여당의 실패의 이유를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 부족’을 들고 “참여정부는 국정운영의 어려움을 연정이라는 우회적 수단으로 피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김 의원은 “국민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 생산적 논의에 한 사람이라도 더 머리를 맞대어 정치인 모두가 승리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내용의 대안을 제시했다.
이날 밝힌 김효석 의원의 입장을 전문 게재한다.(편집자)
"연정 이상의 가치에 대한 고민과 논의 필요"
- 지금은 방법론에 연연하기보다 한국 정치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고민할 때 -
대통령에 의해 연정론이 제기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대통령으로부터 교육부총리직을 제안 받고 본의와는 달리 정치적 논란의 가운데에 서 있었던 저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어떤 얘기를 하건 ‘부총리 제안을 받은 김효석 의원마저도~ ’, 혹은 ‘부총리 제안을 받은 김효석 의원만큼은~’이라는 수식어를 달면서 저의 뜻과는 다른 해석 혹은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한 발짝 물러서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연정 논의가 한국정치의 본질을 간과한 채 진행되고 있는 현상을 바라보면서 토론을 열어 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글을 띄웁니다.
‘연정’은 선의로 본다면 국정책임자로서 대통령이 국정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고민한 끝에 선택한 카드로 보여집니다.
그럼에도 여기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은 물론 학계에서도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연정을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고 해도 연정이라는 단어 속에는 정치공학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고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국민의 뜻에 의해 만들어진 정치의 틀을 인위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것은 자칫 정치적 야합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야당의 입장에서는 현재 지지도가 20%대에 머물고 있는 국정운영의 책임을 나누어 질 이유가 없다는 것도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는 국정운영의 어려움을 연정이라는 우회적 수단으로 피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에 정면으로 맞서 해결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참여정부는 자신이 가지는 시대사적 의미조차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일에 성공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의 탄생에는 과거 수십 년 간 반공, 성장우선주의, 국가우선주의, 권위주의에 갇힌 한국의 사회질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국민의 선택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일인중심의 카리스마 정치가 끝나는 시점에서 국민이 내린 중대한 결단이었습니다.
하나의 질서를 다른 새로운 질서로 만들어나가는 데에는 비용이 수반됩니다. 변화관리의 전문가인 르윈(Lewin)에 의하면 변화과정은 3단계를 거쳐 실행된다고 합니다. 기존질서를 녹이는 과정(unfreeze), 변화(change),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정착(refreeze)시키는 과정으로 나누어집니다. 즉 변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존질서를 녹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여정부는 지난 2년 동안 기존질서를 해체하는 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성장일변도의 경제정책, 효율성 위주의 국정운영에 대한 반성, 학벌위주의 인사,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과거사 규명 등 기존 질서를 녹이기 위한(unfreeze) 작업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에는 기득권으로부터 엄청난 저항이 수반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과정들이 국민들에겐 국정의 혼란, 불확실성, 사회적 불안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개혁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과정의 속성을 이해하고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하는 비용에 대해 국민들에게 충분히 알려 이를 함께 견딜 수 있는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개혁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또한 기존 질서의 해체 위에 만들려고 하는 새로운 것에 대한 비전을 던지는 일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참여정부와 집권여당은 이점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과 기득권층이 이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국민들이 이러한 비용을 감내하기에는 불안이 너무 큽니다.
안타까운 것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정책당국자나 이의 추진을 뒷받침해야 하는 집권여당조차도 이러한 변화과정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사람들까지 혼란스럽게 느낀다면 국민들은 오죽 하겠습니까.
이런 흐름이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여러 정책이 불쑥 불쑥 튀어 나왔다가 다시 수정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갈지자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정을 통해 여대야소를 만들어 개혁을 밀어 붙일 때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정치권에 대한 실망만 키울 것입니다.
연정은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론에 속하는 수단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정치는 방법론 이상의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정치가 추구해야할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오랜 동안 민주와 반민주 전선에서 ‘민주화’라는 가치를 위해 투쟁해온 정치는 17대 총선에서 ‘새로운 정치’ 대 ‘낡은 정치’의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신진세력이 정치권에 진입하였으나 새로운 정치는 자리 잡지 못하고 국민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 과거로의 회귀를 바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려할만한 상황입니다.
‘과연 현 정치상황에서 한국 정치가 찾아가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속에서 연정, 개헌, 선거제도가 논의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제3의 길”이란 가치체계를 만들어 정책메뉴를 엮어냈습니다. 노동당이면서도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접목하여 영국병을 치유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도를 넘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흐름에서 분배가치의 재정립, 심각해지고 있는 양극화문제, 정치 분야의 지역구도 심화, 중산층의 붕괴, 지속적인 잠재성장률의 저하 등, 오늘날 우리 사회와 국가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가치체계가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오늘날 정치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저 혼자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는 보수와 진보의 벽을 뛰어 넘는 문제입니다.
이 가치는 국민통합의 정치일 수도 있고 그 이상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치열한 토론과 고민이 필요합니다. 정파의 이해를 떠나 여기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합니다.
최근 연정에 대한 논의를 바라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낍니다. 정치란 정권을 잡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말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가 정권획득만을 위해 정파적으로 흘러가고, 정당은 당파적 이해에 따라 문제를 접근하며, 국회의원은 재선만을 위해 행동양식을 결정한다면, 우리의 정치는 희망이 없게 됩니다. 정치인 모두가 패자(敗子)가 될 것입니다.
국민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 생산적 논의에 한 사람이라도 더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그래서 정치인 모두가 승리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