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수확의 기쁨으로 가득찬 농민의 얼굴'을 그리며 가을 벼 수확철 정부 추곡수매 현장을 떠올린다면 큰 착각이다.
수매 현장에서 만난 김모 할아버지는 "자슥들에게 쌀이라도 붙여주고 싶었는디…, 수매도 맹년에 어쩔랑가 모르는디, 그냥 넘길라고…"라며 아쉬운 생각이 드는지 먼 산을 바라봤다.
김 할아버지는 이번 산물벼 수매에 21가마(가마당 40kg)를 배정 받았다. 모두 특등 판정을 받으면 1백20여만원을 손에 쥐게 된다. 나머지는 수매가보다 10%가량 싼 가격으로 농협에 일부는 소매라도 내야 한다.
올 연말안에 10년 동안의 유예 기간이 마무리돼 우리 쌀 시장은 기로에 서있다. 아직까지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팽팽함이 감도는 협상의 길목에서 만난 수확철, 그 때문인지 추곡수매 현장은 수확의 기쁨보다 시름에 가깝다.
특히 정부가 지난 8월 추곡수매제 대신 내년부터 공공비축제를 도입한다는 입장이어서 농민들의 근심은 더 해보였다.
올해 관내 산물벼 수매량은 4만4300가마(수북 2만1375가마, 금성 1만7925가마)이며 수매가격 역시 4%가량 인하된 가격이다. 농사가 잘돼 특등 판정 비율이 2배 가량 높은 건 그나마 위안이다.
농사를 마무리하는 수확의 계절이지만 농민들은 대부분 벌써부터 내년 농사를 걱정하고 있었다.
고영균 할아버지(75·고서 성월 3구)는 “앞으로 쌀농사 짓기 어려워지는 걸 누가 모르나, 나이 먹어 다른 걸 할 수도 없고..내년부터는 정부서 수매도 안헌다고 하는디 어째야 쓸지 모르겄다”고 하소연했다.
박만선 금성농협장은 "쌀 시장 개방은 현재도 죽기살기로 버티고 있는 농민들의 가슴을 도려낼 정도로 진통이 따를 것이 예상된다" 며 "그나마 다행히 행정과 농협에서 고품질 쌀 생산 기반 시설을 갖추고 경쟁력을 제고해 나가고 있는 것이 현재상태에서 유일한 대안이다"고 우려했다.
추곡수매제를 없애는 양곡관리법 개정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되지만 매년 시중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수매해온 추곡수매는 쌀 농가들의 소득기반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