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총회 사회봉사부에서 전화가 왔다. 필리핀 레이테(Leyte)섬에 구호요원으로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유인즉 레이테 섬이 10여일 동안의 집중호우와 지진으로 산사태가 발생하여 2천여 명의 사망자와 3만여 명의 이재민이 생겼다는 것이다.
총회 사회봉사부에서는 사태가 발생하자 긴급지원을 하였고, 산사태 당시 한 교회에서 목사님과 사모님을 비롯한 60명의 성도가 매몰되어 사망하였는데 이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60가구의 집을 지어주기로 하고 필리핀 정부에 요청하여 진입로 및 기반조성을 하여 주기로 약속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외여행 경험이 한 번도 없는 필자로서는 호기심과 더불어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흔쾌히 허락하고 사회봉사부의 일정에 따라 지난 7월 1일 인천공항에서 필리핀으로 향했다.
그러나 막상 필리핀에 도착하여보니 필리핀 정부에서 약속한 진입로 및 기반조성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냥 기다릴 수 없으니 발길을 돌려야 하는가 의견 끝에 이왕 필리핀에 왔으니(이번에 참석한 사람들이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므로) 사회복지 연수를 통하여 우리의 발전기회를 삼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져 본래 목적했던 일정을 소화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먼저 긴급지원을 위하여 먼저 레이테 섬에 다녀온 사회봉사부 총무를 통하여 왜 이렇게 커다란 산사태가 발생하였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필리핀 레이테(Leyte)섬은 본래 목재가 생산되는 곳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경제적인 수입을 위해 목재를 베어내고 야자수(椰子樹/Coconut)를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내린 10여일 동안의 집중호우와 지진으로 산사태가 발생하자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 심었던 이 야자수는 뿌리가 깊지 못하여 허무하게 무너지고 많은 인명피해를 만들어버린 장본인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아시아를 강타한 '항만의 파도'라 부르는 '쓰나미'(津波.tsunami) 역시 이와 마찬가지의 사태라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자연환경을 보존했던 지역은 쓰나미의 피해를 면했지만 인간들이 개발한 지역은 예외 없이 많은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자연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우리 일행은 일요일이 되어 현지 선교사(마닐라장로회신학대학교 기획처장)가 출석하는 마닐라 빈민가에 위치한 JESUS CHRIST POTTER'S HOUSE CHRISTIAN CHURCH(칼루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교회에 들어갔더니 강단 앞에 온갖 나무와 새, 그리고 물이 흐르는 아주 평온한 천국을 상징하는 듯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그림 속에 대나무가 그려져 있지 않은가? 놀란 마음에 옆에 앉아 있는 현지 인에게 "Bamboo! Bamboo!" 하였더니 "Okay!" 하였다. 대나무골 담양에서 살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 작은 발견에서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며칠 동안의 일정에서 살펴보니 필리핀에서도 우리나라처럼 "Bamboo Hearts"라는 대나무 요리가 있었고, 서민과 빈민들이 사는 지역에서는 대나무로 울타리를 하고 있는 집들이 많이 있었다.
또한 번화가의 대형마트의 조경에 대나무가 있는 것을 보면서 대나무는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아주 필요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다음날 우리는 Asian NGO Center 사무국장의 안내로 재개발과 철도확장 사업을 위하여 5384가구의 철거민들을 아무런 보상이 없이 강제로 이주시킨 블라칸(Bulacan)지역을 방문하였다.
블라칸 지역에서는 억압받고 생계가 어려운 지역주민들이 생계유지 프로그램 T.R.A(Towervills Relocates Association INC/이주민의 생계를 지원하는 연합체)를 통하여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남자들은 자동차 정비 등 기술을 가르치고 여자들은 캔디(candy)나 초콜릿(chocolate)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T.R.A 관계자는 정당한 권리나 가치를 바꾸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했다. 주민조직의 사무실에서 파파야(papaya) 등 과일나무에서 채취한 천연비누를 만들고 있었지만 판로가 여의치 않다고 한다.
또한 남자들 역시 적당한 일거리가 없어 도시에서 노동이나 본래 그들의 생업인 고기잡이를 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지난 2000년 7월 10일 쓰레기 산사태로 2천여 명이 사망한 빠야타스(Payatas)지역을 방문하였다. 빠야타스 지역은 우리나라의 난지도와 같은 곳이다.
쓰레기가 모여서 산을 이루었는데 그 산이 무너져 2천여 명이 사망했으나 200여 시신밖에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죽은 혼령들이 "help me! help me!" 한다 하여 죽은 혼령들을 추모하는 공원을 조성하여 기념하고 있다는 조금은 섬뜩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필자가 옆에 있는 지역주민에게 2000년 당시 쓰레기 산이 얼마나 높았는지 물었더니 "very very high!"라 하였다. 그런데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지금도 냄새가 고약한 그 무너진 쓰레기 더미 위에 많은 사람들이 집을 살고 있으며,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쓰레기 산사태로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또 다른 곳에 거대한 쓰레기 산이 생성되고 있었다.
필자는 필리핀 선교현장을 찾아다니며 많은 것을 느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한 아름다운 자연을 보호하지 않고 인간들의 욕심으로 인해 자연을 훼손을 하게 되면 반드시 그 재앙은 우리에게 다시 되돌아 온다는 사실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값없이 베풀어준다. 깨끗한 공기와 아름다운 환경, 그리고 오묘한 삶의 법칙들을 말없이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이러한 선물에 감사할 줄 모르고 함부로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장본인들이 되어 버렸다.
지금부터라도 가정에서, 일터에서, 삶의 현장 속에서 작은 실천을 통하여 환경오염을 막아 자연을 사랑하므로 써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분명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리핀에서 다시 나의 자리 담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푸른빛으로 환하게 생글거리는 뿌리깊은 대나무가 반가이 필자를 맞아주었고, 이전보다 더한 사랑으로 쾌적하고 살기 좋은 아름다운 담양을 가슴 가득 꿈꾸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