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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노년의 행복을 꿈꾸는 나산의 연꽃 축제송병관(국가인권위원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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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8.31  09: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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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 담양군 수북면 <나산 행복 마을 연꽃 축제>에 다녀왔다. 축제는 2년마다 한여름 연꽃이 필 무렵 열린다. 공간적 배경은 나산 방죽이다. 연꽃은 마을회관에 앉아서 편하게 감상할 수 있을 만큼 하얀 빛깔을 드러냈다.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4~50대 청년들이다. 축제의 성패 기준은 연꽃의 개화 시점이다. 그러나 연꽃으로만 이 축제를 평가할 수는 없다. 연꽃이 피든 안 피든 상관없다. 축제의 진짜 주인공은 마을 어르신들이기 때문이다. 마을 어르신에 대하는 청년들의 마음은 진심이다.

청년들은 2011년 8월부터 축제를 시작했다. 지난 3년간은 코로나 영향으로 열리지 않았다. 마을 어르신 식사, 장구 난타 축하공연, 내빈 소개, 개회 선언, 개회사, 환영사, 축사, 감사패 증정, 기념 촬영, 댄스 가수 공연, 각설이 품바 공연, 장기자랑 및 행운권 추첨 등이 저녁 6시부터 9시 30분까지 진행됐다. 갖출 건 다 갖춘 행사였다. 10년 세월을 거치면서 축제의 외형적 성장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지역 국회의원이나 지방 의원들의 방문이다. 당연히 개회식 시간도 길어졌다. 이장님, 청년회장, 부녀회장, 축제 추진위원장의 정겨운 인사말은 정장 차림 정치인들의 세련된 어법과 비교되었다.

청년들은 왜 이렇게 진심일까?

축제가 열리던 이른 아침, 1회 때 회장을 맡은 친구(정종율, 55세)가 전화했다. 그는 제법 규모가 큰 전자부품 조립 중소기업체를 운영한다. 회사에서는 그를 사장님으로 부른다. 기념 수건과 초청장을 돌리던 중이었다. 어머니 집에 왔는데 문이 잠겨 있다고 했다. 우리 집과 친구 집 사이에 큰길이 있다 보니 동네가 다르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가까이 지낸 터라 이웃사촌처럼 지낸다. “병원 가신 모양인데 늦지 않게 모시고 가겠다.”고 답했다. 나산 축제는 요즘 시골에서는 드물게 청년들의 힘으로 진행한다는 게 특징이다. 비용은 청년회, 주민, 출향 인사의 찬조로 충당하고, 음식 장만은 부녀회에서 담당한다. 이런 규모의 행사라면 지자체 보조나 기업들의 광고가 있을법한데 찾아보기 어렵다. 청년들이 음식을 나르고, 초청장을 직접 전달한다. 전문가의 손길은 무대 설치 등 최소에 그친다.

나산 축제를 만드는 자발적 참여의 힘이 어디서 나올까? 고전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이 행사가 유지되는 원동력이 늘 궁금했다. 해마다 축제 때만 되면 사서 고생하는 모습이 경이롭기만 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마을에 애경사가 있으면 한 데 어울려 서로를 축하하고 위로했다. 하지만 이젠 지역 사회도 다양성이 존중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아서 청년들끼리도 선배랍시고 권위적으로 일을 꾸미기 어렵다. 그런데도 이 동네 청년들은 여전히 그 힘을 유지하고 있다.

밤이 되니 방죽에서 기생하던 모기가 활개를 쳤다. 친구는 음식이 차려진 상을 나르고 틈틈이 모기를 쫓으면서 무대 위를 오르내렸다. 그 친구의 한마디가 매우 아프게 다가왔다. 다음에는 축제를 못 할 것 같단다. 코로나를 지나면서 어머니 아버지들이 몇 분 안 되니 속상하단다. “그래도 해야 하지 않냐?”는 말로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고 싶었다.

노인 인권 해결을 위한 실천

자세히 보니 무대 앞쪽에 자리하신 어르신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자주 뵙던 어르신들은 주름이 늘었고 몸집도 왜소해 보였다. 중학교 동창 모임을 이곳 축제장에서 갖기로 한 친구들도 아무개 아버지 어머니를 보니 늙으셨다는 대화를 나누었다. 보는 눈은 다 같은가 보다. 그런데 이게 어디 나산 마을만의 문제인가. 사람은 누구나 다 나이가 들면 사회로부터 배제되거나 잊힌다. 익명의 존재가 되는 걸 견뎌야 한다. 유엔은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하고 노인 인구수가 전체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을 ‘고령사회’라 규정한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3년 8월 현재 우리나라는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18.4%를 차지하는 ‘고령사회’다.

올해도 나산 마을이 처가인 각설이님께서 공연장을 뜨겁게 달궜다. 유명한 축제장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각설이가 우리 동네 마을회관에서 공연하니 얼마나 옹골진가. 자신을 연화촌댁 다섯째 사위라고 소개하는 정겨운 모습을 지켜보는 마을 어른신들의 해맑은 모습이 마치 연꽃 같았다. 연꽃은 습지에서 자란다. 자라는 동안 물을 정화한다. 나산의 연꽃들은 물을 정화해 농사철이면 방죽 아래 쪽에 위치한 논들로 흘려보낸다. 농부들은 그 물로 못자리를 만들고 나락을 키운다.

오늘 행사의 주인공은 대부분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이다. 노년의 삶은 돌봄이 절실하다. 요즘은 농촌에서도 노인을 직접 돌보는 자식들을 보기 어렵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게 되면 시설로 거처를 옮긴다. 누구나 ‘노인’이란 소리를 듣기 싫어한다. 우리가 통상 쓰는 <노인>이란 용어는 행정, 법적 집행 수단으로 통칭 되는 단어로 거부감을 동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년, 청소년, 청년, 중년, 장년이란 표현에 비해 노년이란 단어가 익숙하지 않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동정이 아니라 연민이어야 한다. 동정은 ‘나는 젊다’는 전제에서 상대를 대상화하는 것이고, 연민은 ‘나도 언젠가는 나이 들어간다’는 ‘내 일이라는’ 공감이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축제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과거 ‘효’나 ‘경로’의 개념만을 강조할 수 없는 시대다. 마을 청년들은 ‘효’를 넘어 노년 인권 문제를 근본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인권이란 게 뭔가? 생애주기를 거치면서 자존감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아닌가?

돌봄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박수를

노인 장기 요양 서비스의 전달체계는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보험자), 장기요양기관(장기요양급여 제공),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구성된다. 노년의 삶은 전적으로 국가에 의존하는 사회복지 체계 흐름을 따른다. 노인들이 다양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는 게 당연하겠으나,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님과 마을 어르신에 대한 1차 책임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와 그럴싸한 핑계로 본질적 문제를 잊고 살아간다. 행복마을 청년들은 노년기의 돌봄서비스와 자기결정권 등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주목하고 있다. 이것은 어르신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들의 미래이기에 그들의 생각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나산 연꽃 축제는 이름만 축제지 내용은 경로잔치였던 셈이다. 그러하기에 연꽃이 피지 않은 축제였어도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힘든 행사에도 행복해 보일 수 있는 그 이유도 거기 있을 듯하다. 연꽃 축제는 향토색 짙은 농촌지역 노년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어떻게 노년의 사람들을 대해야 할지 숙제를 던져준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 노년을 향해가고 있기에 축제의 메시지는 강렬하다. 담양이 사람답게 사는 동네가 되도록 무더운 여름밤 값진 땀을 흘려준 나산 청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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