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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함께 읽는 부부에세이 27호양윤덕(시인, 수필가/담양시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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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7.05  11: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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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좋은 날

며칠 동안 집을 비웠다. 그이가 회사 다니던 때 해외발령이나 출장 같은 어떤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우리 부부는 별로 떨어져 보낸 적이 없다. 함께 수십 년을 살아도 남편이 있어 불편하다거나 떨어져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은 며칠 떨어져 보내기로 했다. 정년퇴직하고 집에 머무는 그이와 간혹은 크고 작은 다툼이 있어도 떨어져 있을 생각은 하지 안 했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외손자를 돌보는 날엔 우리의 의견 충돌이 강도나 횟수가 심해졌다. 코로나19로 학교 가는 날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제 부모 출근한 낮 동안 혼자 있는 것이 안쓰러워 작은아이 데리고 올 때 함께 데리고 오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 날은 늘 책을 끼고 살고, 시간만 되면 책을 읽어라, 등등 호되게 야단치는 할아버지 사이에서 보다 못해 내가 중간에서 손자 편을 들다 우리 둘의 다툼이 되는 것이다. 서로 아이들을 대하는 성격차이나 교육관 차이가 심하다. 물론 남편 방식이 옳다고 해도 내 자식들 키우면서도 힘들었던 날이 많았는데 나이든 지금도 손자문제로 우리의 불화가 잦다니, 생각해볼 일이다. 아이들 정서에도 좋지 않고 어린 마음에 상처가 생길까봐 두 아이 짐을 싸들고 서울 딸네 집으로 가기로 맘먹었다.

학습은 제 부모한테 맡기고, 그저 우리는 손자손녀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정서적인 면을 풍부하게 해주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남편은 제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손자가 늘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날마다 좋은 날’은커녕 날마다 먹구름 끼고 궂은 날만 계속되어 갱년기도 모르고 지나간 우울증이 이제 와서 살아나는 것이다. 나의 철학이, 손자손녀 돌보는 일로 집을 떠나 딸네 집에 머무르는 일은 절대 없다, 고 했는데 오죽하면 내 철학을 무너뜨렸겠는가, 작심하고 딸이 회사 바쁜 일이 다 끝날 때까지만 머물다 집에 오려 했다.

그런데 남편이 나흘 째 되는 날에 서울 딸네 집으로 왔다. 그리고 여러 사정으로 작은아이만 데리고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와서 보니 남편이 정성스럽게 붓글씨로 쓴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캘리그라피 문구가 탁자 유리 밑에 끼워져 있었다. 남편의 마음이 읽혀 기분이 좋았다.

거실을 오가며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그 문구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날마다 좋은 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먼저 좋은 날의 걸림돌이 되는 문제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좋은 날이 되려면 걸림돌이 되는 것부터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감정은 하루살이 같은 것이어서 오늘은 좋은날이지만 내일은 또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먼저 목소리 톤을 생각해본다. 간혹 궂은 날이 되는 것이 말하는 목소리 톤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억양이라고나 할까, 목소리 톤만 부드럽게 해도 나쁘지 않은 날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그때마다 든다. 말의 부드러움은 온화한 마음과 연결된다. 온화한 마음바탕에서는 거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부드러움이나 온화함이 없는 말투가 사람 마음을 아프게 쿡쿡 찌른다. 그럼 발끈하게 된다. 송곳날처럼 찌르는 말투는 모든 걸 무너뜨리기도 한다.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이 깃든 말투가 되면 화를 내고 싶어도 이해하고 웃고 지나갈 수 있다. 화날 때일수록 말투에 신경을 쓰는 수양을 해야겠다.

그리고 또 하나는, 상대방 마음에 거슬리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다. 부부지간일수록 말 토씨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서 부드럽게 표현해야 한다. 그 말 토씨 하나가 상대방 기분을 천사로도 만들고 악마로도 만든다. 예를 들어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남편이 귀가한다는 시간에 오지 않고 늦어져 신경이 예민했던 날이 있었다. 그때 남편한테 한소리 했더니 설득하기는커녕 왜 그렇게 집착하느냐고 버럭 화부터 냈다. 내 입장에서 보면 집착이 아니고 부부관심이었는데 말이다. 집나간 짐승도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신경이 쓰이고, 들어오면 왜 이제 들어오니, 라며 반가워서라도 한마디 하게 된다. 그때 짐승은 꼬리를 치고 안겨든다. 하물며 부부끼리 좀 불만을 표시한들 꼭 그런 표현을 써야할까. 그 단어 외에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았던 듯하다. 나는 기분이 무척 나빴지만 그냥 어휘력 부족이겠거니 하고 속으로 삭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약주를 마시다 멸치를 찾았다.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당신은 왜 멸치에 그렇게 집착하느냐 했더니 무슨 집착이냐고 버럭 화를 냈다. 집착이라는 말에 기분이 상했던 것 같다. 받은 걸 돌려줬을 뿐인데 무척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다. 남은 괜찮지만 부부이기 때문에 더 기분 나쁜 말이 있다. 그걸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부부는 가깝고도 먼 사이라고 하나보다.

내 아이들이 다 자라 결혼하고 집을 떠나 부부만 사는 공간에서 ‘날마다 좋은 날’이 되기 위해서 새로 다짐해본다. 이제 우리는 날마다 얼굴에 주름살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 서로 안쓰러워하며 다정하고 온화한 마음을 잃지 않도록 목소리와 단어 선택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객지에서 자취하며 지내는 아들이 아빠 엄마 좋은 시간 보내라며 스타벅스 커피 티켓을 보내왔다. 늘 신경써주는 내 자식들 덕분에 다시 마주보며 웃는다. 남편과 내 마음이 환해지니 바깥도 밝아 보인다. 우리 손자손녀도 이다음에 잘 자라 “할아버지 할머니 저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영화 티켓이라도 핸드폰으로 보내주지 않을까, 한바탕 웃어본다.

아무리 감정의 기복이 심한 날이라도 남편이 먼저 웃고, 내가 따라 웃으면, 내가 먼저 웃고, 남편이 따라 웃으면, 그날이 바로 좋은 날이다. 온화함과 부드러움이 있는 행복한 하루다. 그래도 남편 곁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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