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독자투고/인터뷰
특별기고/세종의 애민정책과 주권재민시대 위정자들박철홍(전. 전남도의회 운영위원장)
담양인신문  |  webmaster@wdy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1.06.15  12:15:3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왕조시대 주권은 왕에게 있었다. 왕이 나라 주인이었다. 백성들 또한 왕 소유권 중 하나로 모든 백성을 자식으로 생각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없듯이 왕은 당연히 애민[愛民] 군주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역사상 우리나라 왕들 중 '애민정책' 을 제대로 실행한 왕은 거의 없었다. 영조, 정조를 꼽기도 하지만 '세종의 애민정책' 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주권재민(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의 민주공화국이 된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도 '세종의 애민정책' 예를 찾아 보기 힘들다. 세계 역사 속에서도 드물다. '세종의 애민정책' 은 요즘도 보기드문 생명존중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공공선이 핵심이었다.

 
  그런 '세종의 애민정책' 을 살펴 보자.  
 
'임금의 직책은 하늘을 대신해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노비는 비록 천민이지만, (이들 또한) 하늘이 낳은 백성이다.' -『세종실록』 1427년(세종 9) 8월 29일 
 
세종은 노비, 노인, 여성, 아이 등 사회적 약자를 정책에 최우선으로 두었다. 또한 이들 삶의 질 향상은 임금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로 생각했다. 세종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파격적인 '노비 출산휴가정책' 을 실시한다.
 
 '여종이 아이를 낳으면 노비 남편에게도 30일의 휴가를 주어라.' -『세종실록』 1434년(세종 16) 4월 26일  당시 노비들 출산 휴가는 1주일이었다. 세종은 100일로 늘리도록 했다. 또한 산모 혼자 있으면 그 산모를 누가 돌보겠느냐며 산모 남편도 30일간 각종 부역을 면제하여 돌보게 하였다. 
 
 이 놀라운 정책은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대한민국에서도 아주 최근에 와서야 생긴 정책이다.  
 
세종의 노인 공경 정책도 본 받을만 하다.
 
 '나이 많은 사람을 존경해야 효도에 대한 풍속이 두터워진다.' -『세종실록』 1435년(세종 17) 6월 21일  
 
세종은 90세가 된 천인에게 쌀 2석(약 288kg) 하사, 80세 이상 노인은 신분과 관계없이 양로연 참석을 가능하게 했다.  
 
세종은 여성 건강문제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 예로 세종은 의녀제도 확장을 지시한다.  
 
'지역별로 여성관리를 선발해 제생원(의료기관)에서 가르친 후, 부녀자를 치료하게 하라.' -『세종실록』 1423년(세종 5) 12월 4일  
 
세종은 버려진 아이돌보기에도 나선다. '아이들에게는 겨울철에 먹을 것을 넉넉히 주고, 제생원에서 항상 관찰하게 하라.' -『세종실록』 1435년(세종 17) 6월 22일  
 
세종은 버려진 아이들 입양을 자유로이 허락하고 아이 버린 자를 찾아 고발하면 포상하게 했다.  
 
세종은 장애인들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관현악기를 다루는 시각장애인 중 천인인 자는 재주를 시험하여 채용하라.' -『세종실록』 1434년(세종 16) 11월 24일  
 
이처럼 세종은 장애인을 위한 전문직업까지 창출하여 일시적이 아닌 원천적으로 장애인 복지정책을 실행했다. 시각장애인 단체에는 노비와 쌀을 적극 지원토록 했다.  
 
세종의 애민의 세심함은 결혼지원정책에서도 보인다. '가난하여 시기를 놓쳐 혼인하지 못한 사람은, 친족에게 함께 결혼에 대한 준비를 하게 하고 곤궁함이 더욱 심한 자에게는 관청에서 곡식을 주도록 하라.' -『세종실록』 1435년(세종 17) 9월 29일  
 
결혼을 못하는 청년들이 넘쳐나고 있는 이 시대에 현 정치위정자들은 세종의 이런 세심함을 배워야 할 것이다.  
 
세종의 애민은 범죄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는 세 차례에 걸쳐 정확히 조사해 아뢰게 하여라. 이는 사람 목숨을 소중히 여겨, 혹시 잘못된 것이 있을까 염려하는 까닭이다.' -『세종실록』 1421년(세종 3) 12월 22일  
 
세종은 지금봐도 놀라운 정책인 국민투표까지 실시한다.  세종은 토지법 제정을 앞두고는 전국적으로 관리를 파견하여 약 5개월에 걸친 국민투표로 민심을 파악했다.  
 
세종은 관리등용에도 애민정책을 실시했다.  
 
세종은 천민출신 장영실을 등용해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켰다. 세종은 극심한 가믐에 기우제만이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천민출신이지만 과학에 뛰어난 장영실을 신하들 반대를 무릅쓰고 등용했다. 장영실은 이런 세종 뜻에 따라 자격루와 측우기, 해시계와 물시계를 만들어 냈고, 우리 고유 독자적인 달력이라 할수 있는 천문역서인 '칠정산'을 제작한다.  
 
그리고 세종은 원나라로부터 수입한 '농상집요'라는 책을 참고해서 우리나라 농촌 현실에 맞게 체계적인 영농법 연구를 바탕으로 쓴 책인 '농사직설'을 편찬하여 농업 생산에서 혁신이 일어나게 한다. 
 
 '세종의 애민정책' 의 결정판은 '훈민정음창제' 이다. 신하들 거친 반대로 한글은 거의 세종 혼자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훈민정음 반포문에도 세종의 애민정신이 뚜렷이 남아있다. 
 
 이처럼 세종은 1419년 ~ 1450년 제위 32년 동안 세종이 꿈꿔온 목표는 생생지락 즉 모든 백성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정말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애민군주 참모습을 세종이 보여주었다.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 시대인 요즘 대통령들에게도 찾아보기 힘든 세종의 애민정신에 또 실천한 애민정책이 있었다.  
오백년 전 세종처럼 오늘 날 우리 정치권 위정자들이 세종처럼 사회적 약자들 삶을 '십 분의 일' 이라도 생각하여 애민정신을 애민정책으로 승화시킨다면 우리 국민들 삶이 훨씬 더 윤택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본다.  
 
주권재민 민주주의 시대 선출직으로 나서는 모든 이들이 세종 애민정책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며 나서는 것일까? 아님 오로지 권력에 대한 집착일까? 
 
 나는 또 어떠한가?  
 
담양인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자코너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전남 담양군 담양읍 미리산길 28 별해리A 상가동 3층  |  대표전화 : 061)383-2772  |  팩스 : 061)383-9945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전남 다 174호(2002.10.25)
대표이사·발행인·편집인 : 김동섭  |  편집국장 : 정용택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용택
Copyright © 2013 담양인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