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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함께 읽는 부부에세이 제23호양윤덕(시인, 수필가/담양시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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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23  15: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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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나의 선생이 되는 순간

며칠 전 주말에 손녀를 데리고 서울 ***동에 있는 놀이터에 갔다. 남편은 손녀와 놀이기구를 타고 나는 의자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말이라 놀이터는 활기가 넘쳤다. 조용히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한쪽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둘러보니 같은 또래 초등학교 여학생 셋이 모여 있었다. 뭔가 좀 심각해 보였다. 혹시라도 요즘 왕따니 뭐니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들어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 어린이가 울음을 터트린다. 한 어린이가 상대 어린이한테 어떤 사과를 요구하고, 상대 어린이는 사과할 일이 없다고 하고, 또 한 어린이는 그 둘 사이를 오가며 화해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다투는 아이는 초등 5학년과 4학년이고, 화해시키려 하는 아이는 6학년으로 모두 같은 학교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요즘 어린이들의 말 실력이 매우 합리적이고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논리적이고 어휘력 수준도 변호사 같은 전문가 못지않았다. 4학년 어린이의 말에 의하면 5학년 언니가 두 가지를 잘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만 사과해서 나머지 잘못한 것에 대하여 사과를 받아야만 화해할 수 있는데, 5학년 언니가 사과를 하지 않으니 자신은 화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4학년 후배 아이가 5학년 선배한테 당당히 따지는 걸 보고 깜작 놀랐다. 그러니 6학년 어린이가 5학년 어린이에게 가서 자세히 설명을 한다. 4학년 어린이의 말대로 사과를 하도록 설득을 하지만 5학년 또한 더 이상 잘못한 게 없어 사과를 못 하겠다고 버티는 것이다. 나는 6학년 아이한테 정말 놀랐다. 참 진지하면서 선배 역할도 잘 해내는 모습이 대견하고 뭉클했다.

6학년 어린이가 5학년을 설득하면서 한 이야기를 요약해보면, 친구와 다투고 나서는 꼭 화해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 화해 방법이 자기가 잘못한 일에 대하여 하나하나 짚어가며 사과를 하고, 그 다음에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단계를 거쳐야 그것이 화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5학년 어린이한테 4학년 어린이에게 그렇게 사과를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다툰 일은 그날 화해를 하고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5학년 어린이는 사과할 맘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은 한 가지 외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5학년 어린이에게 자세한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은 잘못한 게 없는데, 그래서 지금 당장은 사과를 안 하고 집에 가서 엄마한테 자세히 내용을 말씀드려본 다음 엄마가 사과하라고 하면 그때 사과할 생각이라고 했다. 나는 그냥 ‘미안해’ 라고 사과하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려다가 차마 말을 못 꺼냈다. 그 어린이 생각이 옳은 것 같아서다. 자신도 지금 당장은 판단이 안 서니 엄마에게 한번 물어보고 나서 사과를 하겠다는 것도 옳은 일 아닌가. 오늘 당장이 아니고 하루 이틀 미루더라도 그냥 무책임하게 잘못했다고 하고 나서 억울해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장래에 꼭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꼭 그렇게 되렴”.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보다 그 어린이들 스스로 잘 해결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데 그 어린이들의 똑 부러진 말과 모습이 자꾸 떠올라 다시 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서로 다툼이 일어났을 때 화해의 절차는, 하나하나 자신의 잘못을 알고, 그 다음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그 다음은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하고, 그날 다툰 일은 그날 꼭 화해하고 마무리해라.’

문득 우리 부부를 생각해봤다. 다툼이 있으면 나는 무조건 미안해, 잘못했어. 그렇게 해결한 날이 대부분이었다. 아니 전부였던 것 같다. 시끄러운 것도 싫고, 어두운 분위기가 오래가는 것도 싫었다. 남편의 비위를 맞추려고 전전긍긍하며 그저 두루뭉술하게 지나가는 게 좋았다. 머리 복잡한 것 나는 질색이다. 오죽하면 나의 소원 중 하나가 남편한테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그 말 한 번 듣는 것이었겠는가.

드디어 내 평생소원 하나가 이루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마침 그 다음날 아침이었다. 잠자고 일어나는데, 웬일로 남편이 그동안 여러 일로 미안했다고, 당신도 서운한 마음이 많이 있었을 거다 등등 사과인지 후회인지를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수십 년 동안 내 탓이오 살아온 억울함 많았던 날들이 한순간에 씻겨나갔다.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쌓인 마음의 찌꺼기가 날아가 버렸다. 늦게나마 소원을 이루어준 당신, 고마워요.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노라,’ 시인 워즈워드가 이 시에서 한 가장 유명한 말이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다. 오늘 놀이터에서 만난 초등학생 3인방은 정말 우연히 만난 나의 스승이었다. 나보다 한 수 위였다. 그래서 또 그들이 한 말을 되뇌어 본다.

‘다투고 나서 화해절차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다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그 다음에 다짐, 그리고 그날 다툰 일은 그날 화해하고 끝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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