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독자투고/인터뷰
부부가 함께 읽는 부부에세이 21호양윤덕(시인, 수필가/담양시댁)
담양인신문  |  webmaster@wdy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1.03.05  15:13:3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지게 그리고 작대기

지게와 작대기는 함께 있어도 서로를 밀어내는 일이 없다. 그날그날 똑같아도 평생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지탱해주는 사이다. 등짐을 가득 짊어지고 가는 지게가 넘어지지 않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작대기다.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리면 작대기는 얼른 지게의 중심을 잡아 바로 세워준다. 그리고 함께 간다.

지게와 작대기는 실업의 한겨울에도 말없이 서로의 곁을 지킨다. 작대기 가는 곳에 지게. 지게 가는 곳에 작대기. 그 든든한 짝꿍이 보기 좋다. 저들 간에 무슨 불신이 끼어들까 싶다. 오직 두터운 믿음만이 바탕에 깔려있는 듯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짝을 바꿔치기 하는 변화무쌍한 시대에 조금도 배반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40대였을까, 나는 한때 논술강사 일을 접고 돈의 유혹에 빠진 적이 있었다. 논술강사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티엠보험회사에서 일을 해보라는 친구의 권유를 받았다. 그 시절은 보험에 대한 보수적인 생각이 많았던 터라, 고민 끝에 남편에게 의논을 하니 남편이 기꺼이 허락해주었다. 사회생활 경험도 해볼 겸 그리고 글을 쓰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할거라고 지지해주었다. 남편의 속셈은 내가 사회생활을 함으로써 직장 생활하는 자신의 고충도 이해해주길 바라는 속내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친구가 추천해준 회사는 서울 종로에 있는 높은 빌딩의 새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흥분이 되었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대기업 티엠업무인데다가 높은 빌딩 안에서 내 부스가 생기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컴퓨터 자판기를 두들기며 이어폰을 끼고 고객과 전화통화를 하는 업무, 그렇게 영업을 한다니 생각만 해도 멋지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리고 아침에 남편과 함께 집에서 나가 1시간 동안 전철 안에서 얘기를 나누며 출근을 하고, 퇴근길에는 종로 3가에서 만나 종착역에서 내린 후, 잠시 포장마차에 들러 곱창을 시켜놓고, 가슴이 불콰해질 때까지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루 있었던 일을 얘기하다가 가로등불이 길을 밝혀주는 고즈넉한 시간에 팔짱끼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낭만적인 생각으로 자꾸만 뭉게구름처럼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면접을 보고 교육을 다 마치고 나서 자리를 배치 받아 업무에 투입되었을 때는 그동안 기대했던 멋진 생각은 꿈에 지나지 않았다. 일단 기계치인 나는 첫날부터 전산작업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전화로 하는 업무다 보니 갈수록 목소리에 대한 콤플렉스까지 느끼기 시작하며 고객을 끌어오지 못하고 말은 늘 더듬거리기 일쑤였다. 목소리를 조용히 속삭이듯 해야 하는 일인데도 고객이 전화를 끊으려 하면 고객님! 하고 큰소리로 외치곤 했다. 그 소리가 조용한 티엠실 안을 쩌렁쩌렁 울려대니 갑자기 웃음바다가 되고, 팀장한테 늘 지적받기 일쑤였다.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는 날로 쌓여가고 그만 두길 바라는 팀장과 실장의 눈치는 따갑기만 했다. 그때마다 부스 앞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를 크게 써서 붙여놓고 하루하루 견뎌내던 나날. 그런 힘든 하루를 퇴근길이나 집에서 남편에게 털어놓으면 남편은 이런저런 힘이 될 여러 말을 하며 다독거려 주었다. 당신은 잘 할 수 있어. 늘 용기를 북돋아 주어 그만둘까 말까 흔들리는 내 중심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버티며 조금 적응이 되어갈 무렵, 남편이 해외로 발령 통보를 받고 나도 함께 동행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홀가분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해외로 현장소장 발령을 받고 해외에서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남편과 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남편 또한 처음 해보는 일이라 사람들과의 관계를 많이 힘들어 했다.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 숙소로 들어올 때마다 고충을 털어놓곤 했다. 그때마다 다소곳이 들어주며 순간순간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낯빛만 봐도 내일은 또 어떻게 버텨낼까 고민하다 잠들곤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남편이 달게 자는 모습을 보고 난 후에야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남편도 나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그리고 해외근무를 마치고 국내에 와서도 지방 이곳저곳으로 발령지를 옮겨 다니며 현장소장 직을 계속 이어나갔다. 지게 가는 곳에 작대기가 따라가듯, 남편과 늘 함께 했다. 해외나 국내나 사람 사는 세상은 만만치 않은 법. 하루 종일 사람한테 부대끼고 돌아온 남편을 편하게 대해주려 무척 노력했다. 약주를 나누어 마시고 이런저런 대화도 하며 하루의 힘든 일을 잊을 수 있도록 애썼다. 잠을 자면서도 한숨이 새어나오는 걸 자주 듣곤 했다. 내가 사회생활을 힘들게 해보았기에 남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남편 역시 그만둘까 말까 짐을 질 때마다 곁에서 내가 작대기 역할을 하며 그렇게 정년까지 잘 버텨왔다.

부부는 핏속의 염분도 서로 비슷할 것 같다. 그러니 함께 받쳐주고 지탱하며 정글 같은 세상을 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남편이 있어 내 삶이 막막하지 않았으니, 내 지게를 남편의 작대기 같은 응원이 받쳐주었을 것이다. 내 작대기 같은 응원도 남편에게 다시 일어설 힘이 되었을 것이다. 나머지 시간들도 꼭 그렇게 살아가야 하리.

지게와 작대기가 서로 한 몸이 되어 사는 건 상식이다. 상식적인 삶이 대단한 선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부부는 진부한 말 같지만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이 상식이다. 혼자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섰을 때 지탱해줄 사람. 나는 앞으로도 남편의 작대기로 살아가련다. 여보, 당신도 나의 작대기가 되어주어요.

 

담양인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기자코너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전남 담양군 담양읍 미리산길 28 별해리A 상가동 3층  |  대표전화 : 061)383-2772  |  팩스 : 061)383-9945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전남 다 174호(2002.10.25)
대표이사·발행인 : 김동섭  |  편집인 부사장 : 김광찬  |  편집국장 : 정용택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용택
Copyright © 2013 담양인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