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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함께 읽는 부부에세이 16호용기를 읽다/양윤덕(시인, 수필가/담양시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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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2.16  09: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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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이다. 무슨 좋은 생각 없나, 허공만 톡, 톡, 톡 튕기다가 오래된 책장 한 페이지를 넘기는데 내 가슴 한 페이지가 따라 펼쳐진다. 첫 페이지 큰 제목은 ‘용기를 쓰다’ 목차는. 1. 영화관에서 2. 남산타워 3. 1호선 4. 문학회 행사장에서 ……. 나는 여기까지 읽다 잠시 멈춰 차례차례 읽기로 한다.

1. 영화관을 읽는다.

결혼 전 어느 날, 때는 서로 수줍음이 많던 때, 남편과 나는 수원에서 만나 잠깐 데이트를 하다가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관으로 들어서자 좌석은 꽉 찼다. 서서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남편은 내 손을 꼭 잡고 사람들 속을 헤쳐 빈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자리가 없으니 앉아있는 어느 청년에게 다가가 자리를 양보 좀 해달라는 거였다. 남편이 무어라 했는지 다소곳 듣던 그 청년이 아무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었다. 그때 그 청년은 나로 하여금 두 시간이나 되는 영화를 거의 서서 보았을 것이다. 고마운 청년, 분명 착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남편이 듬직한 사람으로 보였다. 평생 나를 고생시키지 않을 남자라고 생각했다. 나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할 사람이라는 확신에 결혼할 마음을 굳혔다. 어떻게 해서든 나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던 그 남자, 나의 남편이 되었다.

2. 남산을 읽는다.

신혼이었다. 남산을 갔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봄인데도 우리 둘 사이에는 여름 같은 뜨거운 열기가 달아올랐다. 그가 남산타워 앞 계단에서 나를 덥석 업었다. 주변엔 사람들도 많았다. 부끄러워서 남편 등에 얼굴을 묻었다 뗐다 하는데, 그 높은 계단을 거뜬히 나를 업고 올랐다. 오를 때 어느 외국인 청년이 엄지 척! 하며‘최고’하고 외쳤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박수를 쳐주었다.

3. 전철 1호선이다.

50대 초반이었을까, 경기북부 동두천으로 이사해서 살던 때다. 남편은 서울 강서구로, 나는 종로 3가로 각자 직장을 다니던 때였다. 남편의 회사가 강서구인지라 집에 올 때 그쪽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종로까지 오면 나는 종로에서 기다렸다 합류했다. 다시 함께 1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전철을 타고 가야 집이었다. 그때마다 남편이 먼저 자리를 잡아놓고, 나한테 몇 번째 칸에 탔으니 그 칸 번호에서 기다리라는 신호를 주었다. 전철이 멈추면 나는 얼른 탔고, 자리가 없을 때는 남편이 일어서고 내가 앉아서 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잠깐 남편이 종로에서 데이트 좀 즐기고 가자고 해 시간을 보내다가 늦은 시간 1호선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마지막 열차가 아니었을까 싶은 시간, 옆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몇 몇 사람들도 있었는데, 막 전철이 도착할 즈음 갑자기“여보, 사랑해”남편이 크게 외치는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너무 황당하고 쑥스러웠다. 주변에 사람들도 꽤 있었는데, 그러나 나는 속으로 은근히 좋았다.

4. 한 1년 전 문학회 연말 행사장이었다.

행사가 거의 끝나고 초청 연주자의 트럼펫 연주음악이 흘러나왔다. 모두들 조용한 분위기에서 감상을 하고 있는 분위기인데 남편이 내 등을 밀면서 나가서 춤을 추라는 거다. 싫다고 해도 자꾸 나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나는 춤도 잘 못 추고 그렇다고 사교적인 성격도 아닌데 남편이 하라니 못 이겨 나가서 혼자 어색하게 춤을 추었다. 나중엔 몇 몇 사람들을 불러 음악에 맞추어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누가 욕을 하든 말든 남편이 밀어붙이면 나는 자동이다. 그러면서 남편은 내 모습을 사진 찍는다. 나는 남편의 용기 있는 행동에 스스로 익숙해져 있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누가 눈살을 찌푸린다 해도 남편의 행동에 자동으로 따르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

부부로 살아가면서 남편이 용기를 발휘했던 날들을 꺼내 읽으며 그야말로 빙그레 웃음 짓는다. 그런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날들은 그래도 봐줄 만한 나이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박수쳐줄 만큼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무대의 주인공이 된 듯한 날들을 읽으며, 늘 나를 주인공으로 살게 해준 남편이 생각할수록 고맙다. 이제 함께 듬성듬성 흰머리도 나 있는 나이가 되니, 그런 용기도 한 잎 두 잎....... 떨어져 나가고 있으리라. 그래도 이런 삶의 책장 하나를 넘기며 어설픈 독후감을 쓸 수 있고, 그 쓰는 심정이 나쁘지 않고, 새삼 남편이 올려다 보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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