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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함께 읽는 부부에세이 제14호양윤덕(시인, 수필가/담양시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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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04  15: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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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보로 살기로 했다

나는 원래 믿음이나 불신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 사이에서 이쪽저쪽을 위성처럼 떠돌았다. 하지만 나의 믿음의 시작은 남편으로부터다. 남편은 다른 종교는 절대 용납을 안 한다며 오로지 자신을 믿으라 했다. 자신을 믿으면 평화롭고 평생 나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했다. 그리고 오직 나 한 사람만 죽을 때까지 사랑하며 사는 일로 만족한다고 하니, 그 말에 감동받아 나는 남편만 믿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바다 속에서 전복 따 파는 제주해녀도

제일 좋은 건 임 오시는 날 따다주려고

물속 바위위에 붙은 대로 남겨둔다‘

이 미당의 시처럼 나도 그런 맘 하나 마음에 간직했다,

“당신 한 사람만 가슴에 들이고 죽을 때까지 사랑하며 사는 일로 만족하겠다.” 해녀의 제일 좋은 전복이 바로 아내인 나라고 하는 남편의 마음을 나는 가슴에 얼마나 간직하고 있었을까,

가끔 누가 나에게 종교가 있느냐, 종교가 뭐냐고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종교는 남편이라고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말한다. 그러면 사람을 믿는 게 아니라 신을 믿어야 한다고 충고하며 자신이 믿는 종교를 권한다. 하지만 나는 남편에 대한 신념이 종교처럼 강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바보라고 한다. 바보라는 말을 들어도 한번 정한 마음을 바꿀 맘은 없다. 나는 위성이 되어 남편을 향한 믿음을 향해 돌고 돈다. 다른 사람이 저건 고장이 난 거야,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처럼 남편을 향한 한결같은 맘으로 빙글빙글 돈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직접 세례 받으신 “00종교를 믿어라” 고 유언하셨는데도 나는 “아버지, 이 서방이 종교를 싫어해요. 죄송해요.” 하면서 지금까지 남편만을 믿고 살고 있다. 말은 감정이고 감정은 곧 심장을 파고든다고, 아버지의 유언보다 ”죽을 때까지 당신 한 사람만 사랑하며 살겠노라“는 말에 내 영혼을 다 빼앗겨 버렸나보다. 영혼을 휙 가게 만든 걸 보면 분명 남편의 최초 설교는 흡입력이 아버지의 유언보다 강했다.

 

남편의 설교는 시도 때도 없다. 제법 경청할 만한 내용도 많다. 평생 함께 살아갈 사람끼리 서로 마음 거슬리는 일 없도록 하자처럼 기분 좋은 말을 할 때는 남편도 듣는 나도 즐겁다. 끄덕끄덕 눈을 마주보며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척척 맞는다. 아주 환상적인 그림 한 폭이다.

하지만 설교가 어두운 방향으로 흐를 땐 절대복종을 강요하며 귀는 열고 입은 닫으라 한다. 설교 도중 이건 아닌데 싶다가도 나만 믿고 따르면 복이온다라는 말에 네네네 순종하고 귀를 쫑긋 세운다.

“때론 밤늦은 시간에 귀가를 해도 나는 오로지 당신밖에 없으니 나만 믿고 활짝 웃으며 맞아줘라. 그럼 당신에게 행복한 다음날이 온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기분만 흩트리지 않으면 우리의 좋은 시간이 보장된다고, 늘 화를 내는 일만 없도록 할 것을 강조한다. 종교의 문턱을 들어서본 적이 없는 나는 종교는 이런 건가보다 생각한다.

남편은 어느 상황에서든 나의 살아 꿈틀거리는 불만의 감정을 누르고 자신을 대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자유에도 규제가 있듯 이토록 이 남편과 함께 살려면 불만의 자유도 억압받는구나 하고 깨달아간다.

‘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고, 그의 마음의 평화로움이 나의 평화로움이다,’ 내 뼈 속까지 새겨진 말이다. 남편을 통해 평화를 얻고 행복을 얻으면 그만한 종교가 뭐 있겠는가. 만사형통이다.

 

남편이 설교만 하는 줄 알았더니 가끔은 생뚱맞게 코미디 같은 발언도 한다. 예를 들면 오랜만에 만난 내 조카가 “이모부 멋있다!” 하고 말하자 “그런 말 하지 마, 멋있다고 하면 이모가 나를 힘들게 해.”

진실만 말한다는 그의 입에서 갑자기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하니 그건 분명 코미디다. 똑같은 코미디 발언을 두 번이나 해도, 이제 해가 저물어가는구나 싶어 그냥 배꼽잡고 숨넘어가게 큰소리로 웃어준다. 가파른 산비탈 하나 가볍게 넘어가는 순간이다. 이렇게 나는 동글동글 우주를 닮아간다.

바보로 살려고 하는데 남편은 나를 자꾸 영리하게 길들인다. 남편이 하는 말을 일방적으로 많이 듣고 살아오다 보니 나도 제법 말문이 트인 것이다. 대꾸가 잦아졌다. 부부대화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주거니 받거니 자유토론이 제격 아닌가. 아내의 불만도 들어줄 줄 아는 넓은 도량을 가져라. 그리고 남아일언중천금 등등 그동안 느낀 점을 용감하게 말한다.

아내가 남편을 믿고 따르게 하려면 불만을 침묵으로 바꾸지 말아야 한다. 하늘에 계신다는 신도 복을 달라고 울부짖는 사람에게 자유 발언권을 주는데, 하물며 아내가 남편을 믿게 하려면 아내의 불만에 부드러워야 하고 이견 조율도 잘 해야 한다. 아내가 평생 믿고 따르려면 백번 그리해야 한다. 내가 바보가 된 이유는 남편이 이런 걸 잘 해주기 때문이다.

어느새 그렇게 걸어온 나이가 서녘 해에 이른다. 아버지의 유언도 물리치고 선택한 남편종교와 함께 걸어온 세월이 그래도 핑크빛으로 물든 저녁하늘 같다. 한낮의 날카로운 빛으로 눈을 찌르는 일을 서서히 접고 부드러워지는 시간이 황혼이다. 이제 저 중천에 에헴! 있던 해도 황혼을 맞아 두루뭉술하게 세상을 감싸 안고 가는 시간이다. 기운이 빠져 자꾸 입이 닫히려 한다. 아예 닫히기 전에 남편의 입과 끝까지 맞춰가야 할 것 같다. 싫은 말이든 좋은 말이든 서로의 입술에 대롱거리는 말을 서로의 입술로 씻어주고 감싸주어야 한다. 남편의 가는 입술을 바보스럽도록 조금 더 두터운 내 입술로 감싸고 나머지 길을 가려 한다. 진짜 내가 바보가 되는 길밖에 없다.

“남자는 사랑을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여자를 사랑하는 것으로 끝난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사랑을 사랑하는 것으로 끝난다.” (프랑스 시인 레미 드 구르몽)

나는 이 말을 살짝 바꿔본다.

나는(아내는) 사랑을 남편을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남편을 사랑하는 것으로 끝난다. 남편 또한 나(아내)를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나(아내)를 사랑하는 것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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