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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함께 읽는’ 부부에세이 제6호양윤덕(시인, 수필가/담양시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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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15  09: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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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오전에 집 주변을 산책하다 차 한 잔 하러 커피숍에 들렀다. 커피숍에는 이미 젊은 여인들이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차를 마시러 모인 내 딸 같은 젊은 아내들이다.

나는 그들 뒤에 앉아 차를 주문하고 기다리며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가만히 들어보니 남편들에 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대화 좀 하자고 하면 귀찮다고 성질을 팍 내고 밖으로 달아난다. 또 한 아내는 요즘 남편이 이상하다고 말문을 연다. 화장실에 가서도 카톡을 하고 자신이 옆에 있는데도 카톡을 하고 새벽에도 카톡을 해서 도대체 누구하고 카톡을 하나 보려하면 못 보게 피한다는 것이다. 밤에 귀가 시간도 늦고 때로는 취해 새벽에 들어오는 등 자신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 같다고 열을 낸다. 따지면 도로 의처증이니 집착이니 하며 자신을 병자 취급 한다는 것이다.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아내가 거든다. 왜 의처증, 집착이냐고, 당연히 아내로서의 권리이고, 권리 이전에 함께 사는 가족이 응당 할 일 아니냐는 것이다. 남편이 자신을 소홀히 하고 따돌리는데 어찌 가만 두고 보느냐. 애들한테도 그 정도의 간섭과 잔소리는 하고 사는데 남편한테는 더 당연한 것 아니냐. 남편한테 여자 친구 생겼니? 기특하다, 잘 놀다 와라,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또 열을 뿜는다. 남편들도 입장 바꿔봐라. 이어서 가만히 듣고 있던 한 아내가 “그냥 철없는 아들 하나 키운다 생각해. 얼마나 편한지 몰라!” 경험에서 나온 그 낡은 해법도 동원된다. 젊은 아내들이 나름대로 가정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이 대견하게 여겨졌다.

나 역시 젊은 시절 저러했는데 어린 아내들도 마찬가지인 것을 보니 마음이 스산했다. 바깥으로 도는 남편을 안으로 끌어들여 지키려 노력하는 아내의 마음은 숭고하기도 하다. 세상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관계인데, 그중에서도 배우자와의 관계에는 천 배 만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 순간이라도 도 닦는 마음이 아니면 버티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젊은 여인들이 끼리끼리 만나 서로 속내를 나누는 장면이 사랑스럽기도 했다. 가정은 혼자 기둥이 아니라 남편과 함께 두 개의 기둥이 되어야 지탱할 수 있다. 가정이라는 집은 뜻밖에 약할 수 있다. 해마다 넘쳐나는 이혼 사례가 이걸 증명하지 않는가.

가끔 남자들만이 있는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다. 어느 노래방 도우미가 어쨌다느니, 주점에 어느 여인이 어떻다느니, 동호회의 미스 김이 참 괜찮다느니 하며 한껏 흥에 부푼 장면들이다. 도무지 남정네들은 저런 이야기가 아니면 화제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저 남편들의 테이블에서는 언제쯤 고상한 이야기가 나오나 귀 기울여보지만 언제나 허탕이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만나는 것이 결혼이라고 한다. 그들이 지구에서 지구의 삶을 살려면 화성도 잊고 금성도 잊어야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화성과 금성 사이의 간격을 좁히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래도 아내들은 평생 고군분투하며 지구의 가정을 위해 노력한다. 남편들이여 함께 동참해주세요.

어느 가정에나 테이블이 있다. 나는 이 테이블을 가정의 테이블이라 부르고 싶다. 테이블에서 많은 일들이 이루어진다. 아내는 가정에서 테이블을 지키며 남편과 다정히 대화하며 오순도순 보내고 싶은 열망이 있다. 늦은 밤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는 곳도 테이블이다. 테이블에 마주 앉으면 부부의 눈빛이 마주친다.

나는 딸에게 현모양처의 정신을 내가 어머니한테 배운 대로 가르쳤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이 커피숍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들으니 현모양처로 산다는 것이 이 시대에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모양처는 아내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새삼 느꼈다. ‘현모양처’를 몇 번 쓰고 쓴 메모쪽지를 휴지통에 버렸다. 그러면서 문을 나서며 자꾸 내가 앉았던 테이블을 뒤돌아봤다. 저 테이블은 내가 버린 ‘현모양처’를 기억할까.

그리고 문득 나는 딸이 아닌 아들에게 마음의 쪽지를 남겼다.

아들아, 앞으로 네가 결혼하거든 너는 물질로 효를 실천하려 하지 마라라. 네 아내와 아들·딸에게 잘 해서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일로 효를 다해라. 특히 아내의 불평불만이 쌓이지 않도록 테이블에서 아내의 말을 들어라.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아내를 변함없이 사랑하며 이 지상의 가장 밝은 꽃으로 가정을 잘 가꾸어가길 부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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