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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지명 천년 기획/㉛수북면 정중(井中)·주평(舟坪)·풍수(風水)·황금(黃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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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4  09: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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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조 많은 유생들을 배출한 수북 학구당
   
▲ 수북면 황금리 빨래터
   
▲ 수북면 풍수1리 월산마을 표지석
   
▲ 수북면 주평리 마을회관
   
수북면 정중리 마을 전경
 

2018년은 담양군이 담양이라는 명칭을 사용한지 천년이 되는 해이다.  본지가 담양지명 천년을 맞아 관내 12개 읍면 및 해당 읍면에 속한 마을 형성 유래에 대해 연재한다./편집자 주

1)정중리 정중(井中)마을

정중마을은 고려말 우왕(1380) 때 형성되었다고 한다. 첫 입향조는 김해김씨, 나주임씨로 알려져 있다. 조선 숙종 44년(1718) 김해김씨 김무공 사군파 시조 익경의 12세손 김명집이 영암에서 살다가 새터를 찾아 이곳의 넓은 들과 풍부한 물줄기를 보고 정착하여 세거지를 이루었다고 한다. 뒤이어 나주임씨가 입향 하였으며 그 뒤 전씨, 국씨가 터를 잡았다. 북쪽으로 삼인산과 병풍산, 추월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으며 남으로는 무등산, 마을 앞으로 영산강이 흘러 봉산면 삼지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조선말까지는 창평군 장남면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북면에 편입되었다. 동서남북이 넓은 들로 둘러싸인 정중마을은 1978년 착공된 삼지교가 설립되기 전까지는 나룻배를 이용하여 시장이 있는 삼지리에 건너 다녔으며 그 곳 시장에서 필요한 생필품을 주로 물물교환 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2)주평1리 주평(舟坪, 용구)마을

용구마을은 김해김씨 판도판서 관의 17세손 의빈이 조선 영조(1745)때 부친 윤탁을 따라 담양에서 살다가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용구마을은 북쪽 용구산의 정기를 받고자 용구동이라고 했다는 설과 동쪽 오룡굴로 부르는 용(龍)과 구연의 구(龜)를 붙여 용구동으로 불러왔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은 동쪽산이 거북이가 머리를 길게 빼고 있으며, 거북이의 발과 산의 능선이 용처럼 보여 용구동이라 불렀다고도 전해진다. 그렇게 오랜 시간 불러오다가 ‘주평’으로 개칭한 것으로 전해진다. 용구마을 들샘이 10여개나 있어 오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 물맛이 좋아 이 물을 먹으면 큰 인물이 나온다는 말이 있어서 이곳에 정착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그 뒤 김의빈의 후손 중 동학란 때 담양 의병대 선봉장이 되었던 6형제가 나왔다 한다. 이들을 6바위라 하였다.

3)주평2리 구련(龜淵)마을

구련마을의 입향조는 조선 효종(1655) 때 광산김씨 중시조 문숙공 주정의 14세손 이중이 나주에서 이곳 구련동으로 은거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손들은 동학란을 전후로 모두 떠나 버렸다. 마을 동북쪽의 오룡골 골짜기에는 조선 숙종 39년(1713)에 광산김씨 중시조 문정공 태현의 20세손 창보가 지금의 대전면 행정리에서 이거해 살았다. 그 후손은 도둑 떼에 시달려 오룡골을 버리고 위 새터에 이거했다. 주평리는 2개 운영리로 분구되어 있는데 장성거리와 회관앞길로 나누어져 있고, 장성 거리에서 구련으로 가는 길에 있는 안골목, 새골목, 뒷골목 등 새터 4, 5, 6, 10, 11, 12반이 2구로 구련마을이다.

4)풍수1리 월산(月山)마을

월산마을은 순조 25년(1825) 하남정씨 달관이 이웃마을 동상동에서 이곳으로 옮겨 살았다고 그 후손들이 전한다. 그 뒤 나주오씨 양수가 고종 때 나주에서 이 마을로 이거 정착하였다고 한다. 같은 무렵 채씨, 강씨, 이씨 등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 처음 마을 이름을 ‘넘언들’로 부르다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달과 같다 하여 월산이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나산, 동상 마을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고개를 넘어오고 가는 길이라 하며 월산이라 불렀다고 전해 온고 있다. 월산마을은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며, 사방으로 통하여 안으로 들어오면 나가는 곳을 모르니 피난처로 안성맞춤이었으며, 도둑이 들어와도 독안에 든 쥐 모양이 되었다 한다. 산 너머 강림마을에는 영천이씨, 영천최씨 6호가 살았는데 조선 헌종 때 전주이씨 문상이 본면 고성리 궁암에서 분가하여 이곳으로 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 후 영천이씨와 최씨는 모두 강림을 떠나고 지금은 전주이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5)풍수2리 동상(東床)마을

동상마을은 조선 성종 11년(1480)에 함평이씨에 의해 개척되었다고 하는데 고증할 자료는 없고 구전에 의한다. 동상동 뒷산 여러 곳에는 함평이씨 묘소가 분포되어 있으나 그 후손들도 선대의 내력을 자세히는 모르고 있다. 또한 조선 성종 1년(1470) 남평문씨 충선공 익점의 6세손 민이 이곳으로 이거 정착하였고 형 희는 본 면 금구동에 정착했다고 한다. 마을 북, 동, 남 3면은 들로 이루어져 있고 뒤의 서쪽은 송림과 죽림으로 우거진 월산이 마을을 감싸 주고 있다. 마을 동쪽 수북 천변으로는 한수동과 쪽재골에서 흘러 내린 사석으로 충적된 평야지로 이루어졌고 서북쪽 강림에서 시원하는 시냇물은 마을 중앙 고짐보 수로로 흘러내려 남산리 앞에서 영산강으로 합류한다.

6)풍수3리 미산(眉山)마을

미산마을의 입향조는 구전에 의하면 조선 중종 때 전주이씨와 한양조씨들에 의해 개척되었다고 하나 그 후손들은 간데없다. 조선 선조 때 영천최씨 시조 최한의 16세손 태운이 동향인 영천이씨와 창의장으로 있으면서, 영호남을 거쳐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대전면 불태산 밑의 남쪽 평야를 바라보며 무등의 정기가 흐르는 이곳에 미어산에 와 결의를 맺고 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결의로 두 성씨는 한 본이라 지금도 혼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후 영천최씨가 자작일촌 하며 살고 있다. 미산마을은 본래 노령산맥의 줄기를 받아 물고기 꼬리 형국을 하고 있는데 산세의 정기가 꼬리까지 흐르고 있다 하여 미어산이라 부르다가 일제강점기 때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미산으로 개칭하였다. 일명 ‘미러뫼’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도 담양군 목산면 미어산으로 고증한다. 미산마을은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2km 지점에 위치한다. 북쪽 노령산맥의 지맥이 매봉산-배매산(당그래봉)-미산으로 내려 온 능선 끝자락 구릉지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 앞으로는 영산강 북안과 수북천 서안의 충적층 평야를 이루었고 마을 뒤 미산은 수림과 죽림으로 우거진 산자락이 마을을 안고 있다.

7)황금1리 금구(金龜)마을

금구마을은 조선 성종 1년(1470)에 남평문씨 중선공 6세손 희는 앞마을 운산리에서 살아왔으나 그곳의 식수가 좋지 않아 1890년에 이곳에 터를 잡아 오늘의 세거지를 이루었다고 한다. 문익점의 손자인 빈이 무관직을 지냈는데 병자호란 때 대전면 성산리에 유배당하자 그 아들 문완도 공직을 그만두고 선친을 따라와 19대까지 살았으나 식수를 찾아 이곳 금구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금구마을은 수북면의 촤남단에 자리하고 소재지와는 약 4km 거리의 들 가운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 동쪽 정중리와는 진입로를 함께 사용하고 남쪽은 황덕이 자리한다. 서쪽은 대전면과 경계하는 갑향리가 인접해 있고 북쪽은 고성리가 위치한다.

8)황금2리 황덕(黃德)마을

황덕마을은 담양전씨가 최초 입향했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지금은 한 가구도 살고 있지 않고 있다. 그 후 조선 효종 1년(1650) 진주인 강귀남이 진주에서 살다가 이 마을의 지형을 보고 후일에는 크게 번영할 수 있는 형국이라 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또 김해김씨 김영배는 이웃마을 정중리에서 조선 영조 36년(1760) 이 마을로 이거하였다고 한다. 마을 이름을 황덕이라 한 것은 마을이 넓은 들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색인 오방색 중에서 노란색이 한가운데 자리잡은 것을 인용하여 황 자를 따고 언제나 큰 이로움이 가득하다 하여 덕자를 더하여 황덕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마을의 위치가 영산강 상류 지대로 산이 없고 쌀과 보리 생산이 풍부하여 인심이 좋아서, 가을의 황금벌판의 황 자와 덕 자를 합하여 황덕이라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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