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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소설/소쇄원에서 꿈을 꾸다(작가 문순태)첫번째꿈, 조광조의 죽음(제5화)
장광호 편집국장  |  wdy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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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21  15:3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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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보는 춘부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도의정치 왕도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왕도정치는 인과 덕을 바탕으로 삼는 것으로 공자와 맹자의 중심사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예를 근간으로 삼은 도의정치는 상벌에 의한 권선징악을 통치수단으로 하며 왕도와 패도의 한계가 엄격하게 구분된다는 것도 알았다. 또한 맹자는 공자의 인에서 비롯되는 예를 발전시켜 덕치를 왕도정치의 바탕으로 삼았다. 
 
  양산보는 한양에 올라와서 처음으로 설을 맞았다. 이제 열여섯 살이 되었다. 그는 먼저 문하생들과 함께 스승께 세배를 하고 나서 학포 당숙 집을 찾아갔다. 설날 아침부터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양산보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당숙의 두 아들 응태와 응정이 널따란 마당에서 눈싸움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양에 올라와서 처음 만난 응태와 응정이 양산보를 발견하고 형님 오셨다고 소리치며 반갑게 맞았다. 응태는 양산보보다 네 살이 아래고 응정은 여섯 살 아래였다. 양산보는 두 아우들과 함께 먼저 사랑채로 건너가 학포 당숙께 세배를 드렸다.

“그래, 공부는 잘 되느냐? ”
“스승의 가르침에 세상 보는 눈을 조금씩 떠가고 있습니다.”
“정암 선생께서 너를 현량과에 추천하실 생각을 얼핏 비치시더구나.”
“아직은 일천합니다. 앞으로 공부할 것이 많습니다.”
“그래, 지금은 무슨 공부를 하느냐? ”
“왕도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허면, 왕도는 무엇이냐? ”

“왕도는 인과 덕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에 인의를 무시하고 무력이나 술수로 공리만을 탐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패도와는 다릅니다. 따라서 덕치란 치자를 비롯하여 모든 사람의 근본적인 심성이 착하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하지요.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본성에 바탕을 두고 인의도덕을 실천하는 것이 덕치이며, 임금은 덕으로써 인을 행해야합니다. 임금은 힘으로 백성을 복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덕으로써 심복시켜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참되이 복종하여 덕이 안으로 충실할 때 선정이 되는 것이지요.”

“옳거니. 권력정치란 왕도가 아니라 패도이지. 허나 도의정치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찍이 맹자께서 항산(恒産)이 있는 자는 항심(恒心)이 있으며 항산이 없는 자는 항심도 없다고 했느니라. 백성에게 일정한 재산, 먹고 살만한 힘이 없으면 그들에게 도덕을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해서 토지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전정법이 필요한 게지. 허나, 그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느냐. 현량과만 해도 그렇다. 초야에 묻혀있는 인재를 발굴하자는 것이 목적이니라. 본래 취지는 서얼과 사천을 가리지 않고 인격과 능력을 갖추었다면 과감하게 천거 대상으로 삼자는 것이 사림파의 본래 취지였으나 그리 되지 않고 있지 않느냐.”
 
“진정한 왕도정치를 실현시키자면 훈구세력의 힘을 제거하면 될 것입니다. 수구세력들을  몰아내지 않고서는 왕도가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양산보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학포 당숙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너는 언행을 삼가고 잠자코 있거라. 네 부친 소원대로 오로지 출사하는 것만 생각해야 한다.”
“군자는 소아를 버리고 대의를 취해야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옳은 말이다. 허나, 먼저 입신을 한 다음에 대의를 생각하도록 하거라. 아직은 네가 나설 때가 아니다.”
 
학포는 양산보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거듭 당부했다. 양산보는 마음이 무거웠다. 학포 당숙의 말대로 당분간은 입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싶기도 했다. 양산보는 오로지 학문에만 열중했다. 그 해에 그는 자신이 현량과에 추천되었다는 이야기를 동문들로부터 얼핏 들었다. 6월부터 12월까지 예조 천거된 사람을 걸러 의정부에 보고하면 의정부에서 다시 걸러낸 후, 기묘년 4월에 최종적으로 선발 될 것이라고 했다.    
 
양산보가 한양에 올라와 조광조 문하에서 사림파의 이념적 좌표인 도학사상과 절의사상을 배운 지 2년도 못되어 현량과에 추천을 받아 합격의 문턱에 다가설 수 있었다. 그 나이에 개혁세력의 일원으로 떠올라 현량과에 천거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조광조가 있는 한 그의 앞길은 이제 탄탄대로가 보장되는 것이었다.
  기묘년 새해가 밝았다. 예조에서 의정부에 보고된 추천인 중에 양산보는 빠져 있었다. 4월에 발표된 최종 선발자는 모두 28명이었다. 그는 실망하거나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뽑힌 28명 중에서 최연소자가 스물다섯 살이었다. 이제 겨우 열일곱 살에, 스승에 의해 천거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만족했다.(사정상 본지 연재는 이번호로 마감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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