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전남도의회 의원 두 차례 당선, 무소속 기초자치단체장 두 차례 당선. 이 신화 같은 경력을 소유한 주인공은 신정훈(42) 나주시장이다.
그는 고려대 재학 시절이던 지난 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을 주도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87년 고향 나주로 돌아온 그는 농민운동에 투신하면서 88년 전국수세거부대책위원회 총무를 역임했다. 이때 벌였던 수세강제징수 저지투쟁으로 부인 주향득씨와 함께 구속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했던가. 청년 신정훈은 나주농민회 활동을 기반으로 지방선거에 도전, 두 차례 전남도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그리고 마침내 농민후보로 출마한 2002년 지방선거에서 나주시장으로 당선됐고, 2006년 5월 재선에 성공했다.
“이번 지방선거만큼 어려운 선거는 없었다.”
“이번 지방선거만큼 어려운 선거는 없었다.”
한나라당의 정권심판론과 ‘싹쓸이만은 막아 달라’는 열린우리당의 읍소, ‘민주당을 살려야 한다’는 민주당의 구호 등이 복잡하게 뒤얽혔던 지난 5.31지방선거에서 무조속으로 생존에 성공한 신정훈 시장의 토로다.
당선된 지 두 달, 그러니까 60여 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당시 겪었던 어려움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 모양이다.
신 시장은 지난 7월25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5.31매니페스토 활동 평가를 위한 토론회에 참석해 자신의 삶과 지방선거 과정을 술회하면서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와 각오를 밝혔다.
“정책선거로 표현됐지만 국민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뽑고 정책과제를 선정하는 그런 선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매니페스토 정책선거운동은 구시대의 좋지 않은 정치에서 새로운 정치의 실현 가능성의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매니페스토 운동을 이 같이 평가했다.
신정훈 시장은 중앙당 위주의 정당정치가 판치는 현재의 정치 풍토에서 풀뿌리 지방자치의 신념과 곧은 원칙으로 일관해 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민주당의 물결 속에서 그간 네 차례나 지방선거를 치렀지만 그는 한번도 정당 공천을 신청한 적이 없다.
신 시장은 “우리나라의 지방 살림살이를 담당할 일꾼들을 뽑는 선거에서 프리미엄 정치, 불공정한 선거가 진행되면 나라살림은 편향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기에 지방선거에서 나의 삶과 정책으로 주민에게 어떻게 봉사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했다”며 자신의 정치입문 배경을 설명했다. 두 차례 광역의원과 시장 선거에 당선한 자신의 도전에 대해서 그는 단지 “운 좋게 성공했다”며 겸손을 표했다.
신 시장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유세를 하면서 정당이 아닌 정책으로, 정당이 아닌 시민의 삶으로, 국회의원이 아닌 자치단체장으로, 민주당이 아닌 시민을 살리는 정책선거를 하자고 호소했다”며 “결국 시민들이 동의를 해줘서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매니페스토와 관련 “이번 선거에서는 매니페스토가 정책 선거를 하는 첫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며 “선거과정에서 매니페스토의 한계를 되짚어보면서 정책선거가 발전해 온전하게 나라의 일꾼을 뽑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5월 돼서야 매니페스토 준비하란 얘기 들었다"
신 시장은 동시에 매니페스토 운동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매니페스토 운동은 자발적으로 후보자들이 제기한 것이 아니라 서울에서, 시민단체에서, 선관위에서 금권선거 등을 개선해 보자고 제기한 것이기에 후보자들의 준비가 부족했다며 자신만 해도 “5월 가까이 돼서 매니페스토를 준비하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신 시장은 현재의 선거 제도에 대해서 “후보자들의 정책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인 방안이 부족하다”며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후보자가 내세운 공약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이 공약을 요구, 검증, 평가하는 등 후보자가 정책공약을 고민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이를 검증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신 시장은 공약에 대한 대중적인 공개 검증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과거에는 합동연설회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없었다”며 “한번의 공개토론회와 TV토론회 말고는 공약을 검증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 시장은 “선거운동 기간 중 매니페스토 공약집을 발간해 알린다든지 그런 노력이 부족했다”며 “앞으로 시민들과 함께 공약이 전달되고, 그것을 비교하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 시장은 시민들이 나서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의 공약실천 활동을 사후 검증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공약을 사후 집행하는 과정을 탄력성 있게 검증해 봐야 한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시민단체에게 약속했다. 정책선거를 추진하는 시민연대의 활동을 보장하고, 거기에 필요한 정보를 다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에 주변의 재정여건의 변화, 나라 살림의 변화 등 선거 전에 판단한 것과 그 후의 시민들의 삶에 필요한 사항을 반영해 정책공약 실현에 필요한 정책공약의 영역을 만들어가야 한다.”
"토호세력과 중앙당에 풀뿌리 주민의 미래 맡길 수 없다"
튼실한 농민운동을 기반으로 전남도의회와 나주시장에 진출한 그였지만, 이번 5.31지방선거는 당선을 보장받기 어려운 유난히 힘든 선거였다고 한다. ‘민주당을 살리자’는 구호와 ‘정권심판론’ 등의 담론이 말해주듯 무엇보다 먼저 중앙당의 바람이 워낙 거셌다. 지방은 없었고, 오로지 당과 국회의원만 득세하는 선거였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속내가 절절히 묻어나는 말들이 이어졌다.
“이번 선거에서도 나주시 선거의 가장 큰 이슈는 뭐였나? 여전히 가장 큰 주제는 ‘민주당을 살려야 한다’는 주제와 ‘정권을 심판하자’는 주제였다. 두 번째 주제는 TV에서 많이 했고, ‘민주당을 살려야 하나, 죽여야 하나? 국회의원 살려야 한다’ 이 주제가 모든 후보들이 내놓고 논쟁한 주제였다.”
신 시장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후보들이 들고 나온 어깨띠에는 ‘아무개 국회의원의 선택, 희망, 영광’이라고 쓰여 있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지방선거에서 지방의 담론이 사라진 이상한 풍경이 연출됐다. 철저히 중앙당과 국회의원의 선거로 전락한 선거였다. 정말이지 이번만큼 힘든 선거는 없었다. 당이 모든 선거에 개입했다. 민주당 지지도는 76%였는데, 다른 전남 지역 상황이 다 그랬다.”
신 시장은 지방선거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아무리 정책선거가 된다 하더라도 이런 선거구도에서는 대단히 선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지역주의가 틀어쥐고 있는 지방선거에서 당이 좌우하는 선거 풍토를 만들면 안 된다. 지방의 살림살이는 지방의회에서 토론되기 전에 국회의원에게 가서 토론하고 와서 하는 일이 많은데 이처럼 왜곡된 지방자치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같이 했으면 한다.”
새로 출범한 민선 4기 나주시장 신정훈. 그는 토호와 중앙당이 패권을 쥐고 있는 지방의 살림살이가 결코 그들에게 예속되지 않길 바란다. 아울러 주민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풀뿌리의 미래를 희망한다.
그의 나이 어느덧 40대 중반이 됐다. /시민의 신문= 이준희 기자
신정훈 나주시장 이력서
- 양산초등학교, 영산포중학교, 광주인성고 졸업
-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신문방송학과 졸업
-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투쟁 고려대 대표로 주도(광주학살의 진상규명 및 미국의 사과요구, 징역 3년 선고)
- 1988년 전국수세거부대책위원회 총무역임
- 1987, 88년 수세강제징수 저지투쟁으로 부인 주향득과 함께 구속(징역 10월 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