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동자들이 ‘졸속적 한미FTA추진’의 브레이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대다수 신문과 방송이 ‘돈벌이 월드컵’ 띄우기와 한미FTA의 검증 없는 장밋빛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이들은 7월 총파업을 선포했다.
지난 6월초 워싱턴에서 열린 1차 본협상에 이어 내달 10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는 한미FTA 2차 본협상이 예정돼있다. 언론노조는 7월 3일부터 6일까지 총파업 찬반투표를 집중실시하고 14일 이전에 전 사업장이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한미FTA에 대한 규탄과 파업동참에 대한 결의발언이 줄을 이었다. 언론노동자가 한미FTA를 저지해 한국사회 초토화와 미국의 식민지화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KBS 진종철 본부장은 “한미FTA가 왜 이 시점에서 졸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 뒤 “개혁에 실패한 노무현정부가 마지막으로 외부로부터의 자극적 개혁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진 본부장은 “대통령 자신은 개혁이 안되는 현실을 타개하고 싶었겠지만 이는 참여정부의 마지막 잘못된 선택 중 하나”라고 질타했다. 한미FTA는 노 정부의 조급성이 이뤄낸 아주 비참한 사건이란 주장이다. 그는 “현 정부의 마지막 몸부림이 양극화해소와 한미FTA체결이라고 하는데 FTA를 하면 양극화의 양극화가 된다”고 꼬집었다.
진 본부장은 “이 정부의 임기는 1년 반밖에 안남았다”면서 “개혁에 실패했으면 실패를 인정하고 잘못한 개혁에 대해 반성하라”고 충고했다. 이어 “돌파구로 FTA를 찾는 것은 악수”라고 강조한 뒤 “강행 시엔 결국 청문회에서 한미FTA에 대한 벌을 받을 것”이라고 지탄했다. 그는 또 “유일하게 아직까지 남아있는 방송의 공공성 마저 FTA가 체결되면 무참히 짓밟힐 것”이라며 “KBS는 한미FTA저지에 선봉에 설 것”이라고 밝혔다. 진 본부장은 “필요하다면 노 정권 퇴진운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제주권 헌납’ 막아야 한다
MBC본부 김상훈 위원장은 한미FTA를 “경제주권의 헌납이고 방송의 민영화이자 극단적인 양극화”라고 정의했다. 그는 “국가가 월드컵 광기 뒤에서 졸속적 협상을 하고 있다”며 “민중의 생존권을 압살하는 FTA저지투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SBS본부 최상재 위원장도 “한미FTA는 한마디로 경제주권을 넘기는 것”이라며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은 임기동안 제발 아무 일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EBS지부 추덕담 위원장은 “공영방송 EBS가 한미FTA의 칼끝에 가장 앞서 나와 있다”면서 “FTA가 체결됐을 때 농민과 공영방송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처지는 똑같다”고 말했다.
YTN지부 현덕수 위원장은 “며칠 전 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 지침을 전달하면서 반대의견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것은 기우였다”고 밝혔다. 그는 대의원들이 ‘그 어느 때 언론노동자가 외국자본 침탈과 잘못된 정부 정책에 대해 행동에 나서본 적이 있었는가’라며 이구동성으로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한겨레지부 조준상 위원장은 “한미FTA는 협상이 아니라 ‘협상놀음’”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한미FTA거시경제지표가 조작이란 게 밝혀졌고 이미 한미간에 합의문이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라며 “한미FTA가 치밀한 각본에 따라 자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한국정부가 따낸 것이라곤 비자문제와 4만명 정도 되는 전문직 쿼터, 그리고 개성공단 관련 미국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었지만 개성공단은 명분으로 내세울 뿐 따내지고 못 한다”고 비판했다. 미국에게 양보 받은 것이 거의 없는 가운데 이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려 한다는 것이다.
조준상 위원장은 “한미FTA는 한국의 법 제도를 체계적으로 간섭할 수 있는 통로를 미국에게 열어주는 것이며 한국정부가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멍청한 짓을 한데 대해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미국과 교역해서 한국도 어쨌든 혜택을 보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거기에는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살상무기가 포함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F-15K가 대표적이다. 한대가 1천억원짜리고 2008년까지 5조6천억을 들여 사들일 예정이다. 그런 게 얼마나 많겠나. 미국으로부터 구입했던 모든 군사무기를 생각해보라. 미국하고 교역해 얻은 게 무엇인지.”
한미FTA 는 "온 국민의 목숨 방치하는 것"
이중근 경향신문지부장도 “오죽하면 신뢰받던 대통령 경제참모(정태인 전 비서관)가 나섰겠느냐”며 “이 나라는 FTA가 없었어도 외환은행을 헐값에 매각한 나라이고 그런 사람들이 FTA협상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정부에게 신자유주의를 막아줄 것을 바라진 않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최첨병을 걷지는 말아달라고 거듭 요구한다.” 그는 “파병은 일부 군인의 목숨을 위태롭게 했지만 FTA는 온 국민의 목숨을 방치하는 것”이라며 “이제라도 FTA추진은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기자회견에는 이광엽 아리랑국제방송지부 위원장, 정진배 동아일보신문인쇄지부 위원장, 박준원 일간스포츠신문지부 위원장, 이훈기 희망조합 위원장, 이명수 헤럴드미디어지부 위원장, 하용봉 청주방송 위원장, 박강배 한국위성케이블지부 위원장, 주봉희 방송사비정규지부 위원장, 이재권 KBS관현악단지부 위원장 등이 참여했다.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은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고 규정했다. “언론노조에는 방송과 관련해 반드시 지켜내야 할 과제가 있다. 하나는 공영방송체제를 지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상파 방송의 무료보편적 서비스를 지키는 것이다. 이는 절대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문제다.”
신 위원장은 4차례 중앙집행위와 중앙위원회를 통해 파업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단 한명도 반대하거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 위원장은 “모든 조합원이 조합 찬반투표에 참가할 것으로 믿고 파업에 찬성할 걸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 파업에 관한 모든 책임은 모두 자신이 지겠다”면서 “감옥에 가라면 감옥에 가겠다”고 결의를 밝히기도 했다.
언론노조는 7월 1일 영화인대책위와 함께 스크린쿼터 저지대회를 한 뒤 2차 본협상 기간에 한미FTA를 저지할 수 있는 중요한 국민대회를 벌이겠다는 방침이다. 기자회견문은 SBS 최상재 위원장이 낭독했다. 그는 "언론이 한미FTA의 대재앙에 대해 보도하기는커녕 마치 한국경제의 구세주인양 떠들어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은 최대한 늘린 지면과 방송시간을 월드컵에 모두 내어줌으로써 파수꾼으로서의 사명을 망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외세-거대자본-친미관료 등 삼각동맹의 충실한 입이 되어줌으로써 한국사회의 초토화, 식민지화에 적극 협조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최 위원장은 "이같은 현실에 언론노동자들은 깊은 자괴감을 느낀다"면서 "본능적으로 지금 우리가 아니면 누구도 영원히 이 대재앙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고 밝혔다. 언론노조 대표단은 이어 노무현대통령에게 보내는 한미FTA관련 공개서한을 청와대 민원실에 전달하기 위해 뒤로 돌아섰다.
청와대에 공개서한 전달, 대통령 면담 요청
경찰 측은 대표단이 경찰차를 타고 민원실에 갈 것을 종용했다. 신학림 위원장은 “우리가 왜 경찰차를 타고 가야 하느냐”며 반발했다. 신 위원장을 비롯한 언론노조 대표단 3명은 “경찰의 에스코트는 안받겠다. 당당하게 걸어서 제출하겠다”며 경찰 측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나 경찰은 “청와대 민원실에 걸어서 간 전례가 없다”는 이유를 대며 이들을 막았다. 신 위원장은 “민원실에 가는 것은 민간인한테 개방하지 않았느냐”며 “대표단 3명이 개인으로 가는데 왜 막느냐”고 항의했다. 경찰관계자가 머리에 두른 ‘저지 한미FTA’라고 적힌 띠를 언급하자 신 위원장은 머리띠를 풀며 “이제 됐냐. 이렇게 하면 민간인 복장이냐”고 응수했지만 경찰은 여전히 이들 앞을 막아섰다. 30여분간 실랑이 끝에 대표단 3명이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15m정도를 걸어갔지만 결국 경찰차를 타야 했다. 신학림 위원장은 “경찰차를 타고 가면 머리띠를 매고 가도 되고 대단하다”며 비꼬았다.
이들이 민원실에 도착하자 양정철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나와 항의서한을 받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신학림 위원장은 “대통령과의 면담요청공문을 전에도 보냈지만 대통령을 만나야 할 이유를 (양 비서관에게) 설명하고 면담을 다시 요청했다”고 밝혔다. 신 위원장은 “FTA의 최종적 책임과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며 “빠른 시간 안에 청와대가 언론노조 대표단과 한미FTA를 비롯해 언론정책과 관련한 면담을 가질 것”을 요구했다.
언론노조의 한미FTA저지를 위한 총파업 투쟁은 지난 5월 25일 중앙위원회에서 결정됐다. 이는 언론노조가 2000년 산별로 전환한 이후 첫 결정이다. 언론노조는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 때와 1999년 통합방송법 제정을 위해 총파업을 전개한 바 있다.
한편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도 내달 한미FTA 2차 협상시기에 맞춰 강력한 저지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민주노총도 7월 12일 10만 총파업을 조직하겠다고 천명하는 등 7월은 한미FTA저지 열기로 달아오를 전망이다. /시민의 신문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