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말 조조가 운명을 건 관도대전에서 원소에게 승리한 후 압수된 편지 한 묶음을 보게 되었다. 모두가 자신의 부하 장수들이 원소와 몰래 주고받은 것이었다.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말했다. “모조리 이름을 밝혀내 죽여야 합니다. 이런 자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조조가 대답했다. “원소의 세력이 강할 때는 나조차도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그랬을진대 하물며 딴 사람들이겠느냐?” 그러고는 명을 내려 모두 불태우게 한 다음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앞으로 이 일은 두 번 다시 입 밖에 내지 않도록 하라” 작가 이문열은 이 대목이 조조의 일생 전체를 통해, 아니 삼국지 전체를 통해 가장 광채 있는 부분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로마의 명장 카이사르도 파르살로스 전투에서 숙적 폼페이우스에 승리한 후 압수된 편지들을 읽어보지도 않은 채 불태우게 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용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후에 그렇게 용서했던 브루투스의 배신에 의해 최후를 맞게 되지만, 그는 역사에서 영원한 승리자가 되었다.
역사는 도전하고 승리하는 자의 기록이다. 그러나 영원한 승리자는 패배자를 포용하고 화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필자도 4년 전 선거에서 낙선했다. 그 처참함과 마음의 상처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나 내 앞가림도 못해 허덕이는 그 순간에도 “사람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서 원망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늘을 보며 수없이 되뇌었다. “내 탓이다, 내 탓이다”
선거를 치르면서 군민들은 찢어지고 갈라졌다. 서로에 대한 증오감은 군정을 수행하는데 짐이 되고 에너지의 낭비일 뿐이다. 그래서 당선자에 바란다. 물론 군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담양군이 나아갈 청사진을 짜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낙선자의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고,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포용하여 군민화합을 도모하는 일이다.
당선자가 “누구는 누구 운동을 했다더라”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공직자들이 특정인에게 줄서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선거에서 특정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거나 배척하는 일은 결국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뿐이다. 한편 당선자를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부군수가 몇이다, 진짜 군수는 따로 있다” 는 등의 말이 나돈다면 결국 모두에게 손해다.
현 참여정부는 많은 서민들의 지지와 환호 속에 탄생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가난한 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에게 남은 것은 한없는 실망과 후회뿐이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무능과 독선, 오만에 대한 심판이었다. 현 정권 출범이후 국민은 지역과 이념, 세대간, 그리고 가진자와 없는자로 사분오열 되어버렸다. 참여정부의 최대실패 원인은 ‘편가르기식 정치’ 때문이다.
이번 선거의 결과를 보고 민심이 무섭다는 것을 실감했을 것이다. 승리에 취하는 순간 민심은 바로 떠나버리는 것이다. 당선자는 이번 선거의 결과가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등 돌린 민심에 따른 반사이익이 아닌가도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내일은 다시 오늘로 다가 올 것이다. 당선자는 초심을 유지하고, 정직하고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로 남기를 바란다. 지도자는 한 때 손해를 보더라도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해야 한다. 또 2007년부터는 선출직 지방공직자의 위법.부당행위나 직무유기 또는 직권남용을 통제하기 위해 주민소환제가 실시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과거 로마제국이 융성한 원인은 관용, 개방성 때문이었다. 달라이라마는 “나를 괴롭게 만들고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당선자가 유능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군민 전체를 하나로 화합하여 군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지도자로 남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정희(광주지방변호사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