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 주인 젊은 선비 양산보가 꿈꾼 이상세계 그려 내
대봉대와 상상의 새 봉황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조명’

담양 남면 출신으로 <징소리>와 <타오르는 강>의 소설가 문순태 (74) 작가가 새 장편소설 <소쇄원에서 꿈을 꾸다>를 펴냈다.
담양이 보유한 조선시대 민간 별서정원의 백미 ‘소쇄원(명승 제40호)’ 을 소재로 쓴 이 소설에서 문순태 작가는 조선 중종 임금때 혁신적 개혁을 주도하다 사약을 받았던 조광조의 제자였던 젊은 선비 양산보가 고향(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돌아와 은둔하면서 소쇄원을 조성한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스승의 유배 길을 배종하고 배소인 화순 능주에서 수발을 들다가 끝내 사약을 받자 장례를 치른 후 고향에 돌아온 양산보는 연못을 파고 나무를 심고 정자를 짓고 봉황을 기다리며 슬픔과 분노와 외로움을 삭였다.

이 소설은 정치적 야망이 넘친 젊은이가 스승을 잃고 절망하다가 자연속에서 이상세계를 일구는 등, 은둔의 방법으로 찾은 의미 있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꽃 한포기 나무 한그루를 심을 때도 철저하게 의미를 부여했다.
소쇄원은 개혁의지가 강했던 양산보 라는 선비의 삶이 응축되어 있고 호남사림들의 담론의 공간이자 창작의 산실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당대에 소쇄원을 찾은 사람들은 송순, 김인후, 임억령, 고경명, 유성춘, 유희춘, 김윤제, 김성원, 정철, 기대승, 백광훈 등 기라성 같은 관료,문인,선비들이다. 김인후는 소쇄원을 소재로 180여 편의 시를 지었고 송순, 임억령, 고경명도 이곳을 배경으로 많은 작품을 썼다.

소쇄원은 지금으로부터 490년 전에 조성된 조선시대 대표적인 민간 별서정원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나무와 돌과 연못과 정자만으로 만들어진 정원이 아니라, 도학적 은일사상이 배어있는 이상세계이다. 소쇄원을 일군 양산보는 15세에 상경하여 조광조 문하에 들어갔다. 혈기왕성하고 총명한 그는 조광조의 개혁사상에 매료되었다. 기묘사화(1519)로 조광조가 사약을 받지 않았더라면 양산보의 출세길은 탄탄대로였을 터. 그러나 인생의 좌표와도 같았던 스승이 사약을 받자 양산보는 스승의 시신을 안치한 후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먼저 초정 대봉대(待鳳臺)를 짓고 봉황이 날아오기를 간절하게 기다린다. 그렇다고 그의 은둔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속세와 동떨어진 자연 속에 나름대로의 이상세계를 만들고자 한 것이었다. 출사를 포기한 그는 도가적 은일사상을 즐기고 싶었다. 세속적 욕심을 버리고 덕을 몸소 실천하려고 한 것이다. 도가적 은일사상은 노장사상의 핵심인 무위(無爲)의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무위한 철학적 의미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소쇄원은 내가 살고 있는 생오지 마을에서 15분 거리에 있어 자주 그 앞을 지난다. 그때마다 소쇄원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로부터 ‘별로 볼 것도 없는데 괜히 왔다’면서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다. 이것은 그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양산보 선생의 삶과 철학, 특히 스승을 잃고 크게 좌절한 후 출사를 포기하고 외로움을 극복한 젊은 선비의 올곧은 삶을 소설로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느 시대에나 인상의 멘토를 잃었을 때 좌절한 젊은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특히 작가 문순태가 이 소설에서 관심을 가진 것은 양산보가 대봉대에 앉아서 기다렸다는 상상의 새 봉황의 메시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양산보가 간절하게 기다린 것은 스승 조광조와 같은 개혁의지를 갖고 있는 선비이거나, 요순 같은 성군, 도학정치가 실현된 새로운 세상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막연한 그리움이었을지도. 이 작품에서 양산보는 봉황을, 향토사학자 최 선생은 잃어버린 개 진주를, 화자인 문인주는 딸의 소식을 기다린다. 이들의 기다림은 또 하나 희망의 씨앗이다.

이 소설은 화자인 소쇄원 문화해설사 문인주가 꿈속에서 양산보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화자는 아홉 번 양산보를 만나 소쇄원을 일구게 된 이유 등 의문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형식으로 이어간다. 소설은 소쇄원을 중심으로 반경 1km안에 있고 고려 두문동 72현에 든 전신민이 은거했던 독수정을 비롯해서, 정철이 성산별곡을 쓴 식영정, 정철이 김성원 밑에서 공부한 환벽당, 임억령이 살았던 부용정 외에 무등산이 무대가 되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역사적 근거에 충실하기 위해 80%이상 실존 인물을 등장시켰고 소설미학인 픽션을 최소화했다고 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꿈에서 만난 양산보에게 소쇄원에서 이루고자했던 이상세계가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
“나는 명경지수와도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을 꿈꾸어 왔소. 하늘과 자연,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지고 태극이 꽃피는 세상 말이오.”
“태극이 꽃피는 세상이라... 헌데 처사님은 왜 시를 짓지 않으셨지요?”
“나무를 심고 화초를 가꾸는 일이 시를 짓는 마음과 같은 것이지요. 나무와 풀, 꽃들이 모두 시가 아니겠소?”
양산보는 시를 쓰는 대신 나무를 심고 꽃씨를 뿌렸다. 다만 선비들을 위해 페트론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 작가는 조광조가 사약을 받지 않았더라면 소쇄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인데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했다.
그는 또 “작가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와 역사 속 인물들을 하나하나 되작거려 깊이 들여다보고 그 실체적 진실을 세상에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작가 문순태는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고 1974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고향으로 가는 바람’ ‘철쭉제’ ‘된장’ ‘울타리’ ‘생오지뜸부기’  장편소설로 ‘걸어서 하늘까지’ ‘그들의 새벽’ ‘41년생 소년’ ‘도리화가’,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전9권)’ 외에 시집 ‘생오지에 누워’ 가 있다.
한국소설문학작품상 문학세계작가상, 이상문학상 특별상, 요산문학상, 채만식문학상, 한국카톨릭문학상, 한림문학상, 전남도문화상, 광주광역시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문 작가는 순천대와 광주대 교수를 역임했고 지난 2006년 정년한 후 고향 담양에 돌아와 법인 ‘생오지’를 설립했으며 현재 ‘생오지 문예창작대학’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면서 다수의 문인을 배출하고 있다. 특히 문순태 작가는 오는 9월 열리는 ‘2015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 기간 중 개최되는 세계대나무총회(WBC)에서 40개의 회원국을 대상으로 ‘대나무의 인문학적 가치’ 라는 주제로 발표를 준비하고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장광호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