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한 만큼 보람이 있어야 하는데 풍년 농사를 짓고도 마음 놓고 웃지 못하는 농민들을 보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이런 농민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농협에서 자체 수매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5일 대전 농협 창고에서 자체 수매에 나서고 있는 하정호 조합장의 말에서 농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 나온다.
경운기에 나락을 가득 싣고 온 A씨에게 정부에서 수매하는 공공비축미로 판매하지 왜 농협으로 오느냐고 물으니 되레 면박을 주면서 “자식처럼 재배한 쌀의 공공비축제 수매가 지연돼 농가들마다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며 “이같은 가운데 대전농협에서 자체 수매에 나서 농민은 농협을 믿고 마음껏 농사를 지으면 되고 농협은 조합원들이 생산한 쌀을 신용으로 얻어낸 전국의 판매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고 대전 농협을 칭찬했다.
농협이 잘했다는 소리를 듣기가 거의 불가능한 농촌에서 이같은 칭찬은 어색할 지경이다.
농협이 농민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은 지는 오래됐다. 지역 농협은 조합원의 권익을 위하고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의 공동이익의 증진과 그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도록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농협이 자체 경영수지를 맞춘다는 명목으로 돈벌이에 급급해왔고 농민들보다는 농협 임직원만을 위한 조직이라는 불신을 받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비해 대전 농협은 올해 1만3000여가마(40kg 기준)의 벼를 수매할 계획이다. 대전농협이 칭찬과 기대를 받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다. 일반벼 자체수매사업도 경제사업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전농협의 이번 자체 수매는 국회 쌀 협상 비준을 놓고 농민단체의 강력한 반발로 공공비축제 수매가 계속 지연되어 각종 자금 상환은 물론 당면 겨울 영농비 지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들에게는 큰 도움이 아닐 수 없다.
대전 농협은 올해 대전면에 배정된 공공비축물량 2만8849포대의 45%인 1만3000여 포대를 자체수매하면서 포대당 현 거래시가 4만3000원을 기준으로 지급하되 처분시 손실이 발생하면 농협 부담으로 하고 매출이익이 발생할 경우 소요 경비와 최소한의 수수료를 제하고 나머지는 출하농업인에게 전액 환원할 계획이다.
농협 관계자는 “공공비축수매가 시작돼 일단 자체 수매를 중단했지만 공공비축수매가 완료 되는 직후 남은 잔량 또는 전부를 농협에서 수매해 농민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같은 대전농협에 방침에 대해 조합원들의 평도 좋은 편이다.
조합원 B모씨는 “대전농협을 지역농협의 모델로 삼아야 한다. 대부분의 지역 농협이 경제사업 같은 농민을 위한 일보다는 신용사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며 “대전농협은 농협 임직원들이 농민을 위해 직접 몸으로 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희망이 있다”고 평가했다.
조합원 C모씨도 “지역 농협이 대전농협처럼 농민을 위해 뭔가 새로운 일들을 하여야 하는데 대부분의 농협이 사무실 안 에서 일만 하지 농민들과 함께 생각하거나 일을 하지 않고 있어 비판을 받는 것이다”고 말했다.
대전농협이 이렇게 조합원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 것은 하정호 조합장의 공이 크다.
하 조합장은 수십년간의 농협 근무경험을 통해 농협이 농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그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경제사업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