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바닥을 치고 있는 쌀 시세가 올해 공공비축미 수매가 및 미곡처리장 자체 수매가 하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농민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2005년 산 햅쌀의 수매가격이 올해 처음으로 시행될 예정인 ‘쌀소득보전직불제’의 직불금액 규모를 좌우할 것으로 보여 우려를 더하고 있는 상황이다.
쌀소득보전직불제는 농림부가 고시한 목표가격(17만원/1가마)과 실제 거래가격 차액의 85%를 정부가 보전하는 제도로 고정형직불금(1ha기준 약60만원)은 오는 12월중으로, 변동형직불금(전국표준쌀값)은 내년 4월중으로 농가에 지급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변동형직불금으로 농림부가 산정기준으로 정한 전국표준쌀값(올10월부터 내년 1월까지 전국 쌀 산지의 평균 도매가격)의 수준에 따라 농가가 받게 될 금액이 결정된다.
현재 우리지역 미곡처리장(이하 RPC)의 쌀 도매시세는 80kg 한 가마 당 평균 14만4천원 선으로 근래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 가격은 지난해 산물벼 수매가격과 도정비용 등을 감안한 도매원가 수준(약16만원/80kg)에도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다. 더구나 햅쌀 출하를 앞둔 상황에서 지난해 수매한 쌀 중 상당량이 아직 창고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가격하락과 맞물린 거래량 감소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금성농협과 수북농협의 경우 벼 수매를 실시한 이후 처음으로 9월25일 현재 각각 수매물량의 10%(26,000개-1040톤. 금성), 12.5%(15,000개-600톤. 수북)를 재고로 안고 있으며 대전DSC(건조저장시설)에도 15,000개(600톤)가 재고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매년 8월말쯤 각 RPC의 쌀 재고량이 바닥났던 상황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사상초유의 재고사태와 관련해 금성농협 관계자는 “재고사태는 전국적인 현상으로 쌀 소비 감소와 계속된 풍작, 수입쌀 개방 등으로 인한 불안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하고 “그렇지만 농협중앙회가 각 지역농협의 재고 쌀을 구매키로 결정함에 따라 올벼 수매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금성농협 등 우리지역의 주요 쌀 도매기관 대부분이 지난해 쌀 물량 해소조차 힘겨워 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변동형직불금의 기준이 될 올 벼 수매가하락은 쉽게 예견되고 있다. 추곡수매 폐지와 함께 정부가 벼의 등급별 수매가격을 제시했던 기능까지 사라지면서 이제 수매가격의 기준은 철저히 ‘시장’에 맡겨진 것이다.
수북미곡처리장 관계자는 “지역에서 생산하는 쌀을 전량 수매한다는 원칙은 변함 없다”면서도 “올 벼 수매가를 미리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해 수매가격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쌀 시장 전반의 개선조짐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지역 쌀농가 보호를 위한 지역의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담양군 농민회 남봉희 회장은 “쌀 관세화유예협상이 효력을 갖기도 전에 벌써 국내 쌀 시장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쌀 가격의 하락이 현실로 다가온 이상 도나 군에서도 스스로 지역농가를 보호할 수 있는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군 농정과 조재휘 과장도 “올해부터 쌀소득보전직불제가 시행되는 만큼 쌀 가격으로 인해 농가소득이 당장 감소하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장기적으로 지역 쌀 생산 농가를 보호하고 안정적인 생산량과 판로를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조과장은 대안으로 "친환경 고품질 쌀을 생산해 수입쌀과의 차별화를 꾀하는 동시에 자국산 쌀의 고가화를 유도해 소득증대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까지 실시했던 추곡수매제도를 대체하는 ‘쌀공공비축제도’를 올해부터 시행한다. 농림부 관계자는 “추곡수매를 대체하는 쌀 공공비축제도를 통해 올해 400만석의 공공비축미가 지역 미곡처리장과 농수산물품질관리원을 통해 수매될 예정”이라며 “400만석은 지난해 추곡수매물량 500만석보다 약 20%정도 줄어 든 물량”이라고 밝혔다.
공공비축미의 가격은 포대벼(농관원수매 250만석)의 경우 수확기를 기준으로 농관원이 파악한 전국표준쌀값이 적용되고, 산물벼(미곡처리장수매 150만석)의 경우 각 지역 RPC가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금년에는 기후조건이 양호하여 가뭄도 겪지 않았고 태풍피해도 없었으니 풍작이 예상된다. 그러나 풍부 속에 빈곤이라는 말처럼 풍년이 왔는데도 수확기 쌀값이 떨어져 농가의 쌀 판매수익이 감소할까 걱정하고 있다. 예년처럼 정부수매제가 지속된다면 걱정하지 않을 테지만 올해부터는 쌀 정책이 전면적으로 개편된다. 쌀 재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정부는 약정수매제를 폐지시키고 금년부터 쌀 소득 등 보전직불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풍요속의 빈곤, 수확기 값 하락
UR에서 우리나라 쌀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관세화 유예를 적용 받았고 이 유예기간을 연장시키고자 작년에 재협상을 개시했다. 작년 4월부터 9개국을 상대로 힘겹게 협상을 벌여왔고 12월에 완료되어 그 결과를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했으며 WTO에서는 금년3월에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협상결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정부측에서는 자화자찬이고 생산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관세화 유예기간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연장되었으며 반대급부로 낮은 관세로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물량(TRQ)이 확대되었다. 즉 1995년에는 25만5000톤을 수입해야 하고 이를 매년 늘여 2014년에는 40만8000톤을 수입해야 한다. 물론 전량을 정부가 직접 수입하는 국영무역을 양해 받았지만 수입하는 TRQ의 일정량을 반드시 시판해야 한다. 즉 2005년부터 전반기 5년 기간에는 매년 수입량의 10%를, 후반기 5년 기간에는 매년 30%를 시판해야 한다. 시판하는 방식은 정부가 유통업자에게 공개 입찰방식으로 매도하게 된다.
재협상 내용이 발표되자 협상 상대국에 제시한 부대조건을 둘러싸고 의혹이 불거지고 생산자의 불신을 받게 되자 정부는 국정조사를 받았고 국회는 비준하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다. 쌀 재협상이 국회의 비준을 받지 못하면 관세화 유예기간 연장은 무효이고 자동적으로 관세화로 이행하게 되므로 국회로서는 실로 난감한 처지에 놓여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비준이 통과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회의원들은 농업인의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쌀 재협상타결을 계기로 정부는 쌀 정책을 개편했다. 즉 양곡관리법을 개정하여 정부수매량과 수매가격에 대한 국회동의제를 대통령승인제로 전환함으로써 그동안 실시해 온 쌀에 대한 약정수매제를 폐지시켰다. 반면에 쌀 소득 보전기금법을 제정하여 금년 7월부터 쌀 소득등 보전직불제를 실시한다. 즉 쌀값 형성을 자유시장에 맡기고 가격이 하락하여 생산자 소득이 줄어들면 정부가 이를 보전해 주는 방식이다. 부족분 전액을 지불하지 않으며 보전하는 방식이 좀 복잡하다. 정부는 보전금액 산정에 적용할 기준가격으로서 목표가격을 설정한다. 이 목표가격은 쌀 수확기 산지가격을 기준으로 농림부 장관이 결정하며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3년마다 조정할 수 있다. 금년부터 3년간 적용할 목표가격은 80kg 가마당 17만원으로 확정했다.
목표가격과 시장가격과의 차액에 대해 직불금을 지불하는데 직불금은 고정식직불금과 변동 직불금으로 구분된다. 고정 직불금은 쌀 수확량이나 쌀 가격과는 무관하게 고정적으로 지불되는 금액이다. 즉 논 형상을 유지하면 휴경해도 되고 벼, 미나리, 연근, 왕골 등의 작물을 재배해도 무관하다. 단지 벼를 재배해야만 변동식 직불금을 받을 수 있다. 고정식 직불금은 ha당 60만원으로 정해져있다. 쌀을 재배하면 고정직불금을 먼저 받는다. 다음에는 목표가격 17만원과 수확기 시장가격과의 차액을 계산한 후 이것의 85% 중에서 고정직불금을 공제한 나머지를 변동직불금으로 받게 된다. 그러므로 목표가격과 시장가격과의 차액의 85% 보다 고정직불금이 더 많을 경우에는 농가수취가격이 목표가격 17만원보다 더 많을 수 도 있다. 이점을 노리고 생산자는 고정직불금을 상향조정해 주길 바라지만 이것이 많아지면 부재지주가 고정직불금을 바라고 임대한 농지를 회수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된다.
생산자 수확기 판매 자제를
정부매입을 포기하는 대신 국민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으로서 공공비축제를 실시한다. 수확기 시장가격으로 매입하며 비축량은 600만석이고 보관기간이 2년이므로 연간 매입물량은 300만석이지만 올해는 첫해이므로 400만석으로 결정했다. 농가의 쌀 수취가격을 높이려면 수확기 가격이 하락하지 않아야 한다. 목표가격과 시장과의 차액 전액을 보전해준다면 별개지만 85%만 직불금으로 받게 되므로 여하튼 시장가격이 높아야 한다. 정부매입량이 400만석뿐이고 쌀이 남아도는 실정이므로 수확기 가격하락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농협 RPC가 소기의 역할을 다해야 하고 쌀 생산자는 가능하면 수확기 시장판매를 자제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