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면 동운리가 고향으로 흙을 떼어놓고는 자신의 삶을 말할 수 없다는 김씨는 '동운리 딸기 생산회사(?)'의 대표이사로 자신을 소개한다. 1000평 남짓의 비닐하우스를 안내하는 그의 표정에서 조금의 어색함도 찾을 수가 없다.
2남2녀의 장남으로 농군이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사일을 해 온 김씨는 65년 겨울 군복무를 마치고 농사가 아닌 다른 사업에 고심했었다.
"젊은 시절에는 욕심이 많았습니다. 공업사도 운영했었고 지하수 개발사업에도 뛰어들었습니다. 그 당시 제 나름데로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인지 지금도 후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김씨의 노력은 실패였다. 줄어드는 일감과 늦어지는 결재로 사업은 손해를 감당해야 했고 이로 인해 쓰디쓴 실패를 겪어야 했다.
물론 농사일도 사업과 병행해야 했다. "땅은 절대 놀리면 안된다."는 김씨의 소신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이후 사업을 정리하고 본래 자신의 자리였던 들녘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농군의 길을 걸은지 3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는 지금 딸기수확에 여념이 없다.
"토마토, 오이, 호박 안해 본 작물이 없습니다. 몇해 전에 방울토마토 시세가 좋다해서 재배를 했었는데 추운 날씨와 유류값 상승으로 막상 수확시기가 되자 인건비도 안나오는 손해를 봤었지요. 나오는 한숨을 숨길수 없었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제게 다시금 기회를 준 것이 땅이였으니까요"
사업실패, 농업인들이 갖는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던 그를 더욱 힘겹게 했던 것은 사고로 인한 장애였다. 김씨는 지체장애우다. 2001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고가 김씨를 찾아 왔다.
장갑을 의지해야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두손과 다리 때문에 농사일의 힘겨움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김씨는 '땅'과의 인연을 쉽게 놓지 못했다. 물론 그의 뒤에는 수족(手足) 되어준 아내 이남선(61)씨와 동운리 주민들이 있었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현재 김씨는 시설원예 1000평과 4000평의 논을 빌려 벼농사를 짓고 있다.
"만약 사람이 인생을 두 번 살수 있다고 해도 후회는 하기 마련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삶은 현실에 만족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지금 농사꾼입니다.몸은 불편하지만 고향땅이 일년 365일 싸늘한 겨울처럼 얼어붙은 땅이 되는 건 싫습니다."
김씨는 또 "농사꾼이라고 소개할 수 있는 자신이 좋다"며 "비록 주어진 길이 하나뿐이라도 좌절하지 말고 굳은 의지로 허락된 길을 씩씩하게 걸어야 한다."고 현재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김재종씨. 그는 부농도 특별한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는 농업인도 아니다. 더구나 사고로 인한 불편함도 그의 몫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김씨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찾아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도 역시 지금 대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대한민국 농군중에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