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뻗은 남해고속도로를 쾌속질주하는 자동차들 사이로 만덕산 기슭의 산자수려한 대덕면 문학리. 내문과 외문으로 나뉜 마을은 도로위의 차량행렬이 무색할 정도로 평화롭다.
그 곳에서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박경태(51. 대덕면 문학리) 대덕 농업경영인 회장.
메론재배를 위해 땅을 돋우고 있던 박씨는 작업복 위에 말라붙어 버린 흙을 털며 반가움에 악수를 청했다. 거친손과 잔주름이 흙과 함께한 세월을 말해주지만 보여지는 미소만은 젊음 그 자체다.
18살 되던 해에 서울로 상경해 직장을 다니며 도외지의 단꿈에 빠져 있던 박씨는 아버지의 병환으로 5년후에 귀농, 농사꾼으로 30여년 세월의 첫 단추를 풀었다.
"장남이 아니였다면 지금 여기에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2000여평의 땅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죠"
집안의 장손으로 도시생활에의 미련을 접어버린 박씨는 23살 청년의 꿈을 아버지의 땅에 심기 시작했다. 성장하면서 부모님을 도와 보고 배운데로 농사일을 해 온 그는 조금씩 욕심이 생겨 현재 시설원예 3600평과 수도작 1600평을 운영하고 있다.
'농사짓기 힘들다. 채무는 늘어만 가는데 수입사업은 없고 앞으로 벌고 뒤로 손해보는 일이 농사일이다' 농네 어귀에서 막걸리라도 한잔 하는 날이면 늘상 듣게 되는 지인들의 푸념.
박씨의 꿈은 부농이 아니다. 문학리 주민들은 박씨를 '농사대장'이라 부른다. 매년 딸기와 메론을 윤작, 쌀겨를 이용한 토양관리로 월등한 품질과 수확량을 자랑하는 박씨의 농사법을 주민들이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3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지금같은 농촌상황에선 농사짓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농사꾼입니다. 귀농의 증가로 농촌이 번영의 길을 걷는 일은 도시의 직장인이 해야할 일이 아니라 바로 저희같은 농사꾼이 해야 합니다."
"힘든 상황이지만 결코 포기해선 안된다."는 박씨는 대덕면 농업경영인회장으로 활동하며 농촌살리기에 고심하고 있다.
쌀수입 개방에 따른 수도작의 어려움과 오로지 농촌에서 작은 돈이나 만질수 있는 일은 시설원예뿐이라고 생각하는 박씨는 "주먹구구식 농사일에서 과감히 탈피, 농업인 머리속에 컴퓨터를 넣자"고 주장한다.
기업에서 일정기간 손익계산서를 쓰고 분기점을 따져 운영계획과 수정을 하듯 농사도 엄격한 자기관리와 경영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10만원을 들고 농자재를 사러가면 수첩과 필기구를 꼭 가져갑니다. 가격도 비교해보고 구매물품도 상세하게 적습니다. 가끔은 귀찮기도 하지만 비용과 수입관계를 정확하게 따지지 못하면 내가 먹는 음식이 입으로 가는지 코로 가는지 알수 없는 이치나 마찬가지거든요"
"농사는 빚 잔치다는 푸념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박씨는 과연 그런 생각을 하는 농민들이 얼마나 정확한 판단을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고 한다.
여러 여건들이 농촌생활을 힘겹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도시에서의 직장인도, 장사꾼도 나름대로의 역경은 다 있다. 박씨는 또 '어디서든 자기하기 나름'이란 말을 믿는다고 한다. 농촌관련 신문이나 잡지에서 크게 웃으며 생산한 작물을 한아름 안고 농촌의 희망을 보여주는 농업인들은 많다. "그들이 성공을 이룰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의 투철한 의식과 자기관리의 완성"이라고 박씨는 말한다.
"나같은 무지랭이가 농사나 지어야지 머 하것소" 소설이나 영화에서 들어봄직한 대사다. 그러나 현대는 다르다. 국민에게 좋은 음식을 공급하는 농업인이야말로 제일의 역군임은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박씨는 아내 전명자(47)씨와 4자녀들에게 이야기 할 것이다.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김필식 記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