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있어 행복하다.’ 두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미래가 있어 행복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행복하다. 이동섭씨(남면 풍암리 43)의 위트있는 표현이다.
무릎 높이의 고무장화, 국방색 작업바지, 빨간모자 그리고 만화 캐릭터가 수놓아진 파란색 남방, 다소 특이하지만 활기 넘치는 이씨의 복장이다. 게다가 능청스러운 미소가 만든 눈가의 주름은 자신도 모르게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고 있는 포근한 삶의 표시다.
남면 풍암리가 고향인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로 나가 사진일을 시작했다. 웨딩포토 사진관을 운영할 정도로 수준급 사진작가인 이씨는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카메라를 연거푸 설명하며 추억을 되새긴다.
지금 이씨는 카메라 앵글에 신랑,신부를 담는 것 대신 한우 60두와 수도작 2000평, 그리고 밤나무를 담아 자신만의 ?농촌앨범?을 만들고 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합니다. 꼭 해봐야 직성(直星)이 풀리거든요.” 이씨를 따라 들어간 우사 한켠에 자리잡은 5평 남짓의 통나무집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관을 정리하고 이씨가 배운 기술로 만든 작품이다. 설연휴 우사 경비실(?)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아담한 통나무집에서 이씨의 삶을 잠시 들여다 보았다.
97년 결혼과 함께 고향으로 이씨의 마음을 이끈 것은 연로하신 부모님이었다. 또한 도시생활중에도 산골마을을 못내 그리워했던 이씨는 부인 김정애(40)씨를 설득, 2년후인 99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본래 부모님이 하시던 농사일을 돌보며 한우 6마리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과 달리 열악한 도로여건, 수입사업의 부재로 인한 농촌의 현실이 이씨를 힘겹게 했다. 이런 이유들로 자연에 묻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면서 살고자 했던 이씨는 조금씩 욕심이 생겼다. “사람마다 태어나면서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 그릇은 살면서 키울수도 있고 줄어들수도 있지만 그릇에 비해 너무 많이 담으려 하면 탈이 생기는 겁니다.” 적당한 욕심이 만드는 삶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말하는 이씨는 한우키우는 일을 본업으로 다양한 수입사업을 모색하게 된다.
“처음엔 시설원예를 생각했는데 산골마을이라 어렵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산으로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산골마을의 특색에 맞는 사업에 고심한 이씨는 밤나무와 더덕 300평,고로쇠 2000주를 심었다. 이씨의 의도는 단기간의 성과가 아니였다. 밤나무는 시세가 좋아 큰 수입원이 될 수있다는 판단이었고 고로쇠나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더 큰 목적은 10년후의 남면 ‘산골체험농원’의 모습이다.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산비탈에 자리잡은 통나무집에서 기거하며 밤을 따고 나물을 캐며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곳.
“적당한 욕심과 만족의 조화가 농촌에서의 삶을 행복으로 이끈다.”고 말하는 이씨는 “농업인들의 자기발전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고 단언한다. 농업이라는 큰 톱니바퀴안에서 농업정책, 시장여건 등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그 중심을 버티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농업인’라는 말이다.
이씨는 올해 전남대에서 운영하는 ‘친환경축산 전문가반’교육에 지원했으나 풍암마을 이장을 맡게 된 이유로 포기했다.그러나?기회는 항상 만들어 간다.?며 낙심하지 않는다. 현재 남면 농업경영인회장의 소임을 포함하면 이씨는 2005년도 한해도 바쁜 일정을 보내게 될 것이다.
“제가 꿈꾸는 농촌은 대도시와 같은 발전과 번영의 모습만은 아닙니다. 내일이면 설명절입니다. 해마다 약속이나 한 듯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십시오. 과연 그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고향의 모습이 어떤것일까요. 저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제 길을 찾습니다.”
큰 빌딩,구경거리와 먹거리가 있어서가 아니다. ‘가도 가도 정겨운 고향’은 혁신적인 변화와 발전이 아니라 어머니의 따스한 가슴처럼 나이를 먹듯 더욱 깊어지는 고향이다.그리고 그 안에서의 발전이 가치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씨는 남면에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모텔들을 볼때마다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부인 김정애씨(40)와 3자녀를 두고있는 이씨는 등산을 즐기며 산과 어울리고 자식같은 한우를 돌보며 명절에도 변함없이 남면 산골을 지키고 있다. 이씨는 가까운 미래 지금 자신이 만들고 있는 ‘농촌앨범’속에 고향의 풍경이 어떻게 비춰질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 ‘정겨운 고향’의 모습이 아닐까. /김필식 記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