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기록은 2003년 이후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를 추월하여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과거에는 사는 것이 힘들어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국가의 중요한 직책을 수행하셨던 분들이나 유명 연예인들까지 자살하였다는 뉴스를 들으면 '나도 힘들면 자살할 수 있다'는 이상한 생각을 갖게 만든다.

요즘은 특정 사건과 관련된 조사를 받다가 자살을 택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떤 분은 억울한 측면을 죽음으로 호소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명예에 누(累)를 끼친 죄책감, 믿어 준 여러 분들에게 주는 실망감, 그리고 자신의 명예에 심각한 오점을 남기게 되어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옛말에 ‘선비는 죽일 수 있어도 모욕을 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재물과 권력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은 선비의 강직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자신의 잘못으로 야기된 사건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그 치욕에서 벗어나겠다는 선비들의 강한 자존심을 설명하는 말일 것이다.
역사를 보면 이렇게 자신의 이상과 신분에 걸맞지 않은 결과에 대해 치욕보다는 죽음을 택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나라 유방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하늘을 원망하며 자결했던 초나라 항우다. 사면초가(四面楚歌)의 포위망을 뚫고 가까스로 사지(死地)를 탈출한 항우는 오강(烏江)을 건너 강동으로 피신한 뒤 재기할 것을 권고하는 부하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자결하고 만다. 다 잡은 천하를 유방에게 넘겼다는 불명예와 강동의 귀한 자제들을 다 죽이고 자기 만 살아 돌아왔다는 치욕스런 불명예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으로 그 치욕을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항우를 어떤 시인(詩人)은 이렇게 평(評)하고 있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을 어찌 알 수가 있겠는가. 남자라면 부끄러움과 치욕 정도는 참고 이겨야 하지 않겠는가. 강동에는 수많은 인재들이 많으니 권토중래(捲土重來)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았던 것 아닌가.’ 참을 수 없는 치욕을 극복하고 오강을 건너 강동으로 피신한 뒤 다시 재기하여 천하를 도모할 기회를 포기한 항우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다. 손자(孫子)도 자신의 병법에서 장수가 조심해야 할 것은 급한 성질과 참지 못하는 분노라고 했다.

반면에 거대한 치욕을 참고 받아들이면서 마침내 그 치욕을 영광으로 바꾼 역사의 영웅들도 있다.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뒤 오왕의 신하가 되어 그의 똥까지 맛을 보면서까지 자신을 낮추며 굴욕적인 삶을 살았던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월왕 구천이라든지, 궁형(宮刑)이라는 치욕적인 형벌을 받고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사기(史記)를 완성한 사마천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그 치욕을 참아내고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이 이 치욕을 넘고 꼭 이루어야 할 일에 대한 강한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로부터 만들어진 고사성어가 바로 ‘치욕을 참고 무거운 책임을 진다.’는 인욕부중(忍辱負重)이다. 
월나라의 존망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사기 저작이라는 필생의 무거운 책임을 내려놓을 수 없기에 끝까지 치욕을 참고 견디어 낸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도 ‘굽히면 온전해 진다.’는 곡즉전(曲則全)이라는 말이 있다. 치욕을 참고 자신을 굽히면 하고자 하는 일이 온전하게 잘 풀린다는 말이다.
가정을 이끌고 나가야 하는 가장(家長)의 입장에서 책임은 무겁고 자신의 그렸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던 우리들의 삶 속에서 조직을 이끌고 무한경쟁의 전장을 누비다 보면 억울하고 속 터지는 일은 부지기수다. 어쩔 때는 내 실수로, 어쩔 때는 부하들의 실수와 남들의 오해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인욕부중(忍辱負重), 자신에게 부여된 큰 책임감을 되새기며 치욕을 영광으로 바꾸는 극기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