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大寒)의 추위를 뚫고 찾아간 한씨의 포도밭은 지난 해의 풍요를 뒤로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겨울나기에 바쁘다. 자신의 고향인 두곡마을에서 40년 가까운 세월을 흙을 벗삼아 '삶'을 일궈온 그는 관내 친환경농업의 기틀을 마련한 산증인이다.
"나이 육십의 제 얼굴을 한번 보십시오. 사람이나 흙이나 늙는 건 마찬가지지요. 농사 1,2년 짓고 그만둔다면 제초제 아니라 더 한 농약을 사용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도시, 도시해도 흙은 조상 대대로 우리 삶의 터전입니다. 농약으로 노화(老化)되버린 흙을 살려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이같은 소신을 갖고 있는 한씨가 처음 친환경농업을 접했던 때는 91년도 강원도 삼척에서 받은 영농교육을 통해서였다. 이후 농협 안성교육원, 도 농업기술원, 농촌진흥원,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실시한 친환경 교육에 열정적으로 참여한 것을 입증하 듯 책상서랍에 빛바랜 수료증이 빼곡이 쌓여있다.
"마을회관에서 우렁을 논에 풀어 키우자고 했더니 다들 웃더군요. 저보고 농사 안짓고 우렁 키우면서 살꺼냐고 묻는 노인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겨우 한 주민의 동참으로 2가구가 시작했습니다."
초창기 '우렁이 농업'을 이용한 유기농 쌀 생산을 마을에 뿌리 내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에 바쁜 나날을 보냈던 한씨는 낯선것에 대한 사람들의 경계와 걱정이 넘어야 할 벽으로 다가왔다. 그런 한씨의 노력으로 현재는 12개 농가의 참여로 5㏊ 면적에 지하 암반수와 우렁을 이용한 유기농 쌀생산단지를 조성,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생산된 쌀은 담양을 대표하는 '대숲맑은쌀'로 전국에 판매되고 있다. 또한 두곡마을의 성공사례로 참여가 늘어 현재 담양군 유기농 협회에130여 농가가 참여하고 있으니 한씨는 자신의 꿈을 절반은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한씨의 친환경농업 전파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농업기술센터에 둥지를 튼 '친환경 품질 인증자 협의회'를 운영하여 품목별 교육을 추진함은 물론 과거 일반 농가들을 상대로 남도대학에서 친환경교육을 펼쳐 농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친환경농법에 대한 의식이 점진적으로 확산되고 참여 농가수도 증가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한씨는 한가지 걱정이 있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개울물을 흐린다.’는 속담처럼 친환경농업을 표방하면서 변칙적인 방법으로 군 친환경 농산물 이미지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 때문이다.
"일반농가의 친환경농업으로 의식전환도 필요하지만 상생의 길을 걸어야 나가야 하는 농촌의 현실을 생각할 때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한씨는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면서 "농업인은 가장 존경받아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말자."고 주장한다.
"텃밭을 아십니까? 동트기가 무섭게 마당 한쪽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밭에서 아침 찬거리를 따시던 어머니의 마음이 텃밭입니다. 농업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지요. 텃밭의 건강함을 들녘에 뿌리 내릴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한씨의 '텃밭'애찬론은 단순히 옛 고향의 향수를 의미하지는 않는 듯 싶다. 텃밭을 일구는 마음이 국민의 식탁을 책임질 농업인들이 가야할 길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한때는 포도밭에 닭 수십마리를 키운 남편을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부인 고복희(53)씨와 1남3녀의 가정을 꾸리고 있는 한씨는 농촌의 모든 들녘이 농약 걱정없는 풋풋한 텃밭이 될 날을 기다리며 우리 젊은이들이 그 중심에 서 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김필식 記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