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1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467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8월 24일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볼룸에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21세기 국제질서와 우리의 외교과제'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작전권 환수해도 한미동맹 변화 없다"


주유엔 한국대표부 1등 서기관, 제56차 유엔총회 의장 비서실장…. "유엔을 이끌어갈 사무총장으로서 최상의 인물"(시애틀타임스 칼럼니스트 톰 플레이트)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서 훌륭한 자질을 갖춘 인물"(오스트레일리안 외신부장 그렉 쉐리단) 등 외신으로부터 호의적 평가를 받고 있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유엔과의 인연은 깊다.

그렇다면 한국 아니 아시아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은 탄생할 것인가. 그런 특별한 인연과 거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때문일까. 반 장관은 국제 정세의 큰 흐름을 짚어보는 한편 당면한 외교적 현안(북핵문제, 한미동맹, 전시 작전통제권, 한미FTA, 한일관계, 한중관계, 국제사회 기여, 재외국민 보호 등)에 대해 견해를 밝히는 순서로 강연을 진행했다.

지면 제약상 여기서는 '뜨거운 감자'인 한미동맹 논란과 전시 작전통제권 논란에 대한 언급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한미동맹은 지난 50년 동안 우리 정부가 가장 우선 순위를 가지고 진행해 왔고, 다음 정권에서도 이런 기조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물론 한미관계가 일정하게 조정국면을 거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미 양국은 논의를 통해 무리 없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우리 정부는 가능하면 한미관계가 호혜적이고 포괄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그러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는 주체가 보다 넓게 확대됐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대미정책 수립에 소수의 정부 당국자만이 독점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범위가 국회, 언론, 국민 등으로까지 확산되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반 장관은 한미동맹이 생산적인 토론이 아니라 소란스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 듯했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한 것에 대해서도, 그러한 양상이 언론 보도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유감인 듯했다.

"한미동맹이 급격한 변화의 상황에 놓이게 된 요인은 한국과 미국이 모두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의 변화 폭은 미국의 그것과 비교할 때 경이로울 정도로 넓다. 무엇보다 먼저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 국가로 성장했다. 실제로 아프리카 전체 나라의 수출 총액이 한국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반부패 투명성 등 몇몇 분야에서 여전히 낮은 지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GDP 등 대다수 분야에선 세계 15위 이내에 들고 있다. 더욱이 민주주의와 인권 수준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시민들의 자긍심이 강하게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 자긍심을 우리 스스로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되기도 했는데, 일부에선 그것을 반미감정으로 인식했다."

반 장관은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반미감정은 없으며, 그러한 '사회적 인식'이 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그는 한미관계가 호혜와 평등의 수준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만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미국이 '평소 못 듣던' 얘기에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의 방식에 갇혀 있을 순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만나 새로운 한미관계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당시 한미 정상은 지난 50여 년 동안 유지돼온 일방적이고 의존적인 한미관계를 정리하고 역동적이고 호혜적인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청사진에 합의했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군사전략 수정과 필요에 의해 추진되는 측면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철저하게 우리의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바라보려는 냉철한 자세가 요구된다. 일부에서 이 문제의 초점을 한미동맹 약화와 한미연합사 와해에 맞추려고 하는데, 그것은 과거의 방식에서 탈피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반 장관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작업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원칙의 바탕 위에서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동맹의 굳건한 유지와 강화 △주한미군의 주둔 및 전시 증원군 확보의 확실한 보장 △정보자산 교류의 현 수준 유지 △한미연합방위체제의 굳건한 유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듯이 국제질서가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우리가 그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한편 기회를 잘 포착하는 주체가 되기 위해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솔직히 우리의 민주의식과 정치의식의 성숙도, 시장경제와 정보화의 눈부신 발전은 국제적 부러움까지 사고 있다. 그런데도 자꾸만 우리가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심리적 불안감에 젖어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국은 미국을 '가장 중요한 동맹국'으로 여겨왔고, 미국은 한국을 '중요한 동맹국'으로 여겨왔다. 전시 작전통제권이 환수된다 하더라도 기존의 한미동맹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정지환 기자


반기문 장관의 이력서

▲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 미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
▲ 제3회 외무고시 합격
▲ 주유엔 한국대표부 1등 서기관
▲ 주미국 한국대사관 공사
▲ 외무부 외교정책실장
▲ 외무부 제1차관보
▲ 대통령비서실 의전수석비서관
▲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
▲ 주오스트리아 한국대사
▲ 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준비위원회 의장
▲ 외교통상부 차관
▲ 제56차 유엔총회 의장 비서실장
▲ 외교통상부 본부대사
▲ 대통령비서실 외교보좌관

상훈: 녹조근정훈장, 홍조근정훈장, 페루 태양 대십자 훈장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