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로 실종된 탑승자들의 생존을 빌면서, 경주 리조트 사고나 이번 사고를 돌이켜 보면서 우리 사회가 평소 얼마나 안전 불감증에 빠져 있는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글을 쓴다. 배를 무리하게 개조하고 무리하게 항로를 바꾸고 긴급한 상황에서 사람의 생명을 우선으로 조치하지 않는 관계자들의 안일한 대처도 용서받을 수 없다. 대통령은 사고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의 원망어린 하소연을 받아야 했다. 이런 사태를 만든 모든 공직자들과 재난에 대비하는 모든 관계 기관들의 평소 대처 준비도 지탄받아 마땅하다. 진정 국민과 나라를 위해 자신을 불태울 국가의 장자방은 없는 것인가.

초한지에 등장하는 한나라 고조 유방은 초나라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했다. 그 한고조가 이런 말을 했다. "장막 속에서 수판을 놓아 승리를 천리 밖에 얻게 하는 데는 내가 장량만 못하고, 양식을 천리에 실어 보내 군사들로 하여금 굶주리지 않게 하는 것은 내가 소하만 못하고, 싸우면 이기고 치면 빼앗는 것은 내가 한신만 같지 못하다." 유방은 이렇게 자신의 능력보다 이 세 사람의 정치·경제·군사 전문가들의 지혜와 능력을 빌어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어느 날 한고조가 자신과 여러 공신들의 지휘 통솔력을 평가한 적이 있었다. 모든 장수들을 평가한 다음 한신에게 자신과 한신 본인의 지휘 능력을 물었다. 이에 대해 한신은 유방은 10만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는 능력이지만, 본인은 많으면 많은 대로 전부 지휘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어떻게 보면 불경스런 답변이지만 한신의 뜻은 자신은 군사를 쓰는데 능하지만 유방은 나 같은 장수를 거느리는 데 능하다는 것이다. 한신의 이 말은 천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장수를 잘 다루는 사람이고 아무리 군사를 잘 거느린다고 해도 그 사람은 천자의 부하인 장수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즘 인기리에 KBS 사극 정도전이 방영되고 있다. 역사는 정도전을 뛰어난 유학자이며 병법가이고, 음악과 풍수지리에도 밝은 예언자의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맹자의 정치사상에 영향을 받은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그의 정치적 이념을 이렇게 표현했다.  “임금의 지위는 존귀한 것이다. 하지만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은 복종한다. 그렇지만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임금을 버린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군주는 재상을 선택해서 임명(人主之職 在擇一相)하고 국가의 모든 일들은 제상들이 처리해야 한다고 하였다. 정도전은 자신 스스로 재상의 길을 택하고 자신이 그리는 국가의 이상향을 실천해 줄 군주로 이성계를 택했다. 한 고조가 장자방(장량)을 쓴 것이 아니고 장자방이 고조를 이용한 것이다(不是漢高用子房 子房乃用漢高). 정도전은 스스로 장자방이 되어 고려 말기의 사회모순을 해결하고 각종 제도의 개혁과 정비를 통해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다져놓았다. 그는 자신의 영특한 정치적 능력을 한신의 말처럼 군사를 잘 부리는 장수의 역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천자와 같은 이성계를 충성으로 모시고 그 꿈을 이룩한 것이다.

삼국지를 읽어 본 사람들은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군사로 영입한 제갈량을 떠 올린다. 제갈량은 평상시 생활이건, 군대를 이끌고 전투를 벌이든, 모든 면에서 자신을 선택한 유비에 대한 충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모든 일을 친히 처리하고 밤낮없이 군사의 일을 충성스럽게 이행했다. 제갈량의 최고의 충성심은 눈물이 떨어진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는 출사표에 나타나 있다. 그렇지만 제갈량의 지나친 복종심은 전투에서 이길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대조적으로 조조, 조비, 조예, 조방에 이르는 4대에 걸쳐 군주를 보좌한 사마의는 제갈량과 다른 충성을 보여준다. 병력을 이끌고 출전할 때는 “장군이 전쟁터에 있을 때는 군주의 명이라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신조를 지니고 있었다. 부여된 임무가 명확하다면 스스로 책임을 다한 사마의가 전투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낸 것은 당연하였다.

병법의 대가 손자는, “장수는 한번 출전하면 임금의 명령이라도 무시하는 수가 있다.”고 하였다. 將能而君不御者勝 장수가 유능하고 군주가 조종하려 들지 않으면 승리한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군주가 할 중요한 일이란 전쟁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유능한 장수들에게 맡기면 된다. 전장에서 승리를 목표로 열심히 싸우는 장수를 신뢰하면 되는 것이다.
손자에게 궁녀의 목을 벨 수 있는 권한을 주었을 때 왕을 모시던 궁녀들은 손자의 북소리 하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제갈량은 아끼던 마속의 목을 베어 군기를 세웠다.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실종자를 구하는데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또 그게 명령이라고 했다. 이제 공직자들은 책임을 다하는 장자방이 되어서 대통령의 명령을 수행하고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국민들이 힘들어하는 손톱 밑의 가시로 인한 고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공무원 모두가 국민을 위한 장자방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