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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시인(詩人)과 잠수함 속의 토끼설재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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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6  17: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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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가을, 그때 나는 20대 초반의 문학청년이었다. 그리고 이 가을에 나는 운 좋게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루마니아 출신 작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를 만났다.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게오르규라는 이름이 생소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안소니 퀸이 주연을 맡은 영화 ‘25시’를 아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게오르규가 바로 이 영화의 원작 소설 ‘25시’의 작가다. 소설 25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루마니아의 어느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전쟁에 휩쓸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된다.

게오르규는 이 소설에서 인간을 한낱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전쟁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다. 25시는 하루 24시에서 한 시간이 더 지나버린 시간이다. 25시는 신의 한계애서 벗어난 시간이므로 모든 구원이 끝나 버린 절망의 시간이다. 게오르규는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순간이 바로 25시라고 말한다. 

여담인데 ‘25시 다방’이라든가, ‘25시 레스토랑’이라든가, ‘25시 노래방’ 같은 간판들을 본 적이 있다. 아마 가게 주인들은 멋져 보여라고 그런 상호를 붙였을 것이다. 25시는 구원이 끝나 버린 절망은 시간인데 말이다.

그 가을, 광주에서는 문예지 ‘문학사상’이 주최한 문학 강연이 있었다. 그 강사가 게오르규였다. 통역은 당시 문학사상의 사장이면서 이화여자대학교 불문학교 교수였던 이어령 씨가 했다. 

강연이 끝나고 나에게는 게오르규와 단독으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문학청년이었던 당시 나는 우리 대학교의 신문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대학신문의 대표 자격으로 게오르규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로서는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이때의 통역도 이어령 교수가 해 주었다. 

꽤나 긴 시간 인터뷰를 했다. 그 인터뷰 중에서 4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내용이 있다.  게오르규는 ‘시인은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잠수함은 현대의 첨단 잠수함에 비해 기능이 떨어졌다. 잠수함 속의 산소를 측정하는 기기도 없었다. 그래서 잠수함 안에 토기를 길렀다. 토끼만 관찰하는 병사도 따로 있었다. 산소량이 부족해지면 병사들은 얼른 느끼지 못하지만 토끼들이 시들시들하면서 먼저 반응을 했다. 그러면 잠수함이 수면으로 올라와 산소가 넉넉한 밖의 공기를 보충해서 다시 잠수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인들은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우리 사회의 안 좋은 징조를 간파하고 남보다 미리 아파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시인의 책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게오르규는 ‘시인’은 대표적인 상징일 뿐, 지성인(知性人)이라면 마땅히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구실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시(詩)는 시심(詩心)에서 만들어진다. 시심은 순은(純銀)처럼 고결하다. 시비(是非)가 분명하고, 정의롭지 않은 것과는 타협하지 않는 것이 시심이다. 그런데 이 시심은 어리거나 늙거나, 지식이 많거나 적거나, 권력이 높거나 낮거나, 돈이 많거나 적은 것과는 관계가 없다. 일자무식의 무지렁이도 옳고 그름을 분간할 줄 안다. 이것이 시심이다. 

시인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건강하다. 물론 게오르규가 말하는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책무를 다하는 시인이어야 한다. 
  
봄이 되었다. 마당가에 심어놓은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리자 경쟁이라도 하듯 매화랑 목련도 꽃을 피웠다. 살구꽃도 뒤질세라 개화를 서두르고 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모든 사람의 가슴에도 시심의 싹이 돋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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