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가리키는 말은 계속 바뀌어 왔다. '장애자'에서 '장애인'으로 몇 년 전부터는 친구란 의미의 友자를 써서 '장애우'라는 말이 사회복지시설에서부터 널리 쓰이고 있다.
광주 남구에 있는 복지시설에서 '지체장애인 한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는데 막상 어떤 말을 써야 할지 난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같은 변화는 단순히 표면적인 호칭의 변화가 아니라 그만큼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마음이 활짝 열려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조금이라도 장애인들에게 존경을 더하고 싶은 비장애인들의 노력이 '장애인을 위한 친환경'이라고 주장하는 농업인이 있다.
여운복(무정면 동산리. 50) 담양군 지체장애인 협회장이 그 주인공.
농업인들을 대하면서 '친환경'에 대한 그들의 소견을 들어왔다. 그러나 여 회장의 '친환경'은 조금 남다르다. 농사일뿐 아니라 지체장애인 협회 장으로서의 자리에서도 그는 '친환경'을 고집한다.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 자신의 농작물이 상품으로 큰 가치가 있듯이 장애인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기부나 위문품이 아니라 '장애인이 가치있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환경'을 만드는 일이 여 회장이 추구하는 진정한 '친환경'이다.
86년도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무정면으로 돌아온 여회장은 당시 교통사고로 인해 왼쪽뇌가 손상, 사고 후 6개월여동안 오른쪽 반신마비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부단한 재활노력으로 현재는 겉모습만으론 장애를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의 터를 지켜오고 있는 그는 150여 담양장애인들의 지혜로운 '제갈량'으로 제 2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1100평의 시설하우스에서는 토마토와 멜론이 전부 무농약재배로 생산되고 있습니다" 한번도 변하지 않고 친환경을 고집해 왔다는 여 회장은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고비용의 친환경자재의 부담이 크지만 친환경만이 살길이다"고 강조한다.
"일반농가가 자재부담을 안고 친환경으로의 전환을 결정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새로운 분야로 농업인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었다는 증거입니다.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의식이 편협함으로 물들이지 않게 하는 노력이 곧 발전을 가져옵니다"
농군으로서 새로운 분야로의 두려움을 떨치고 마음을 열려고 노력한다는 여 회장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자신의 일이라 여기고 있다.
사고로 인해 6살배기 늦둥이 아들을 둔 여 회장은 어느땐가 부족한 일손으로 아이들을 돌보지 못할 때 하우스 고랑사이를 뛰어다니며 방울토마토를 양껏 먹고 고랑사이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아이를 보고 마음이 아팠던 일이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자신의 '무농약 재배'가 더욱 자랑스러웠다는 여 회장은 서울 백화점과 마트에 자신의 농산물을 납품하고 있고 그 주문량도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강원도 어느 노인이셨는데 부인이 위암으로 고생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생산한 토마토가 어떤 경로로 강원도까지 배달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와 자초지종을 얘기하시더니 제 토마토를 부인이 먹고는 많이 좋아졌다고 지금까지도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농사와 장애인협회일을 항상 같은 마음으로 임한다는 여 회장은 "담양군 등록 장애인수는 2500여명인데 반해 협회 회원은 고작 150명에도 못미친다"며 "배우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장애인들이 협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때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 싶으면 어김없이 타시군 장애인 협회원들을 만나 시야를 넓히려고 노력한다는 여 회장은 "타군과 비교, 담양군의 장애인협회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지만 회원들도 무엇인가를 바라는 소극적 자세보다는 할 수 있다는 의식변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 회장은 또 "장애인들이 사회구성원으로 당당히 설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이 먼저 사회에 나설 때 '장애'라는 사실을 부각시켜 동정을 얻으려고 하지말고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비장애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노력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부인 정명임(46)씨와 1남 1녀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여 회장은 "지난 시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세상 모든 것들은 쉬어지기 전에 어렵다'는 말처럼 '농사'도 '장애'도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장애인을 만나면 자신을 표현할 때 '정상인'보다는 '비장애인'으로 표현하는 열린 마음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