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반에서 1등을 고수하는 친구에게 묻는다. "너 어떻게 공부해?" 돌아오는 친구의 대답은 성의는 커녕 그런게 질문이냐는 말투다.
"그냥 하는거지 뭐!"
'그냥 한다(?)' 목적도 없고 그렇다고 특별한 자기만의 소신도 없이 막무가내로 행하는다는 의미일까? 반대로 자신의 능력과 선택을 믿고 한 우물을 파듯 꾸준히 노력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 말을 한 학생이 아니고서는 그 뜻을 짐작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 농사를 선택하셨습니까?" 농민들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다. 질문은 하나인데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수북면 황금리 윤석만(45) 대표.(사진)
마을 이름탓인지 윤씨에게는 토마토가 '황금'같은 존재다.
"그냥 합니다. 토마토 재배만 20년이 넘었습니다" 윤씨의 대답은 질문자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속내를 아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84년도 제대후 현재의 1800평 토마토 시설하우스를 운영하기 까지 윤씨는 변하지 않았다. 20년이라는 세월은 사람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한세월이다. 그러나 윤씨는 "처음 가졌던 자신의 農心은 변함없다"고 피력한다.
쌀개방, 시세폭락, 경기침체 등 어려운 농가현실을 감안할 때 "그냥 농사만 짓는다"는 윤씨의 말은 자칫 시대 흐름을 무시하는 일이 아닌가 오해를 부를 수도 있지만 친환경 농법 전문가와의 주기적인 컨설팅, 유통업체와 농산물센터를 상대로한 영업활동 등이 이 오해를 말끔히 씻어준다.
"힘겨움을 느낄땐 즐거움으로 맞서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 물이 흐르듯 일이 훨씬 재미 있어지고 희망이 보인다"는 소신을 실천하고 있는 윤씨의 시설하우스에서 꽃봉우리를 피우고 있는 토마토들은 전부가 무농약 재배로 생산된다. 농약을 사용할 때 와는 달리 작물과 호흡하며 발병전에 모든 상황을 대처해야 하는 '친환경농법'은 분명 손이 많이 가야되는 길이다. 그러나 윤씨는 "컴퓨터시대에 주판을 쓰겠다고 주장한다면 그것같이 어리석은 일이 있겠냐?"고 되묻는다.
하루하루 작물에 투입한 친환경 자재와 컨설팅 내용 등을 자세히 기록하는 그의 영농일지가 말해주듯 "자신은 베테랑이고 싶다"는 그의 꿈을 확인할 수 있다.
"생산물의 판로확보는 농사만큼 무시할 수 없는 일이라 지속적으로 유통업체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는 윤씨는 "현재는 판로 걱정보다는 결재문제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다.
대부분의 유통업체는 15일 결재를 채택하고 있고 냉동창고가 없는 상황에서 보름의 결재기간은 농작물 보관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한다.
"지금의 농업은 '경영'이나 다름없습니다. 재배규모가 작든 크든 농사꾼은 경영인의 면모를 갖춰야 합니다. 현재는 종자선택에서 판로까지 모든 것이 농업인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윤씨는 부단한 노력 끝에 이틀 결재시스템을 요구, 올해 첫 계약을 끝내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올해는 시세가 썩 좋지 못하지만 내년엔 상황이 좋아질꺼라 생각한다"는 윤씨는 "긍정적 사고는 농군에게 필수조건이다"고 강조 한다.
"그냥 한다"는 말의 뜻, 힘겨운 상황속에서도 "자신만은 농촌을 지키겠다"는 그의 소신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이 정한 꿈을 키워나가며 살겠다는 농군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농사꾼이다. 내 자리는 흙 냄새가 물씬 풍기는 들녁이다. 그래서 내겐 해야할 일이 많다"고 매일 주문을 외운다는 그는 "말 주변만 있다면 강단에서 강의도 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부인 박삼순(40)씨와 1남 4녀 가정을 꾸리고 있는 윤씨는 스피커에서 들리는 여느 트롯트 가수의 '동반자'라는 노래처럼 농업을 인생의 동반자로 여기며 변함없는 농촌의 '터줏대감'으로 살아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