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와 캐쉬'라는 영화가 있다. 1990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두 액션배우의 유명세 때문인지 그 당시 큰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조금만 영화를 깊숙이 들여다 보면 삶을 살아가는 방법면에서 두가지 인간의 군상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철두철미형 탱고와 '행동하고 생각한다'는 사고뭉치형 캐쉬.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지만 영화광고에서부터 캐쉬를 '사고뭉치형'으로 묘사, 암암리에 탱고가 '추구해야할 인간상'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감독은 흑백론을 펼치기 보다는 영화에서 전개되는 위기상황마다 두 주인공을 번갈아 부각시킨다.
식물이 잘 자랄수 있도록 기름진 토양을 준비하고 품종선택에서 수확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농업'은 그 특성상 철저한 준비와 계획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진취적인 행동을 통해 세워진 계획만이 성공확률을 높인다"고 피력하는 농업인이 있다.
무정면 산지유통전문조직의 정한기(43 오룡리)씨가 그 주인공.
"계획이든 행동이든 무엇이 먼저인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는 "어떤 농사계획을 세우든지 간에 직접 시행착오를 거친 경험을 바탕으로 세워진 계획만이 가치있다"고 단언한다.
매일 아침 시설하우스 1500평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정씨는 메론과 토마토를 주재배작물로 700평은 양액재배, 800평은 토경재배를 하고있는 '행동파' 농군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배수관을 토양에 묻어 산소를 토양에 공급해주는 산소농법이 800평 토경면적중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항상 일정량의 토양을 남겨두어 새로운 농법을 직접 시도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한가지 농법만을 고수하면 작업하기 편한건 사실이지만 다양한 재배양식을 시도해 보면서 설령 수확량에서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직접 보고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해 농사를 계획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마치 작물재배방법 연구를 위한 실험실을 방불케 하는 아담한 식물원 분위기의 그의 시설하우스가 말해주듯 정씨의 실험정신은 주변에서도 정평이 나있다.
82년도 농기계사업으로 농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5년 후인 87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설하우스재배에 뛰어들어 무정면 산지유통전문조직의 일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친환경농업을 몸소 실천하는 깨어있는 농업정신으로 농업발전을 위해 발벗고 뛰고 있다.
담배꽁초 하나 하우스 바닥에서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하우스 내부는 갖가지 화분과 조경시설로 산뜻하게 느껴질 정도다.
"친환경농자재를 쓴다고 해서 다 친환경 농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쓰레기 하나, 폐비닐하나 땅에 묻히게 내버려 두지않고 말 그대로 흙을 사랑하는 농업인의 자세가 바로 친환경의 길이다"고 말하는 정씨는 "아내와 아이들 다음으로 흙을 사랑한다"고 넋두리 웃음을 짓는다.
최근 3년동안의 수해피해, 유가상승에 따른 경기불황으로 소비자들의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선호도 저하가 현재의 큰 어려움이라고 토로하는 정씨는 "토마토 5kg 한박스에 500원에 판매해야 할때는 정말이지 '심청전의 심봉사(?)'보다 더한 낙심이 들었다"고 한다.
농가수입에 힘이 되어왔던 일본 수출도 검역기간이 길게는 10∼15일 정도이고 일본 자체생산이 조금 많다 싶으면 반품을 요구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재 상황을 정씨는 결코 낙심으로만 일관하지 않는다.
"길을 걷다가 장애물에 봉착하게 되면 분명 다른길이 있습니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이지만 도전해 보는 거죠. 시세가 얼마나 나올까? 오매불망 수동적 자세는 농사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최근 정씨는 1만800여개의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세븐일레븐 바이어들과 만나 기초적인 계약상 논의를 끝낸 상태이고 또 다른 수출계약이 진행중에 있다.
"TV에서 올림픽 중계를 볼 때 한국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면 함성과 박수 몇 번으로 축하를 합니다. 그러나 그 선수 자신은 목에 금메달을 걸기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요? 연습이라는건 금메달을 따기 위한 준비이고 보면 연습을 통한 실수 또한 두려워 해선 안된다!"고 말하는 정씨의 삶 자체가 실험의 연속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농업은 흔히 '일년농사'라고 한다. 한 순간에 한 해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씨는 "전체가 아닌 부분적 시도는 충분한 가치가 있고 실험과 도전을 두려워 한다면 결코 발전은 없다"고 단언한다.
부인 임혜자(39)씨와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는 그는 말 수 없는 침착한 표정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도전의 땅을 일구고 있는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