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열가지의 축복을 받고 태어날 때 전 아홉가지만 가진 것 뿐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정상인도 힘들다는 농사일을 장애의 몸으로도 2000평 대지를 일구며 진솔한 농군의 길을 걷고 있는 임종배 씨(56, 대전면 갑향리)의 토로가 가슴에 와 닿는다.
소일을 핑계삼아 16살이 되던 해부터 20여년의 세월동안 대바구니 만드는 일을 해온 그는 어느 순간 주어진 여건에 맞춰 현실과 타협하는 것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부족함을 극복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된다.
그 이후 자신의 길을 찾았던 것이 지금의 '딸기 농사'였다. 태어날 때부터 농군의 아들로 절망할 기회조차 없이 인정해야만 했던 자신의 하반신 장애가 오히려 그에게 더욱 강인한 의지를 선물했던 것이다.
"처음 제가 농사를 짓겠다고 하자 주변의 만류가 귀찮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제 삶을 대신해 주진 못하기 때문에 제 의지를 꺽진 못했다"는 임씨는
"정부지원도 없던 시절 딸기농사를 결심하고 9미터 비닐하우스 철제를 1미터 간격으로 설치할때만 해도 그 힘겨움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여서 가끔은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그러기를 15년, 현재는 400평 대형하우스를 설치하고 겨울에는 딸기재배를 주로하고 매년 봄이면 시세판단을 근거로 품종을 선택해 다양한 채소류를 재배하고 있는데 올해는 처음 시도한 고추가 비교적 제값을 받고 있어 농군으로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요즘은 고추 수확으로 들녘에 나오기가 바쁘게 저녁 노을을 본다는 임씨는 아주 특별한 애마(愛馬)를 가지고 있다. 다리를 쓰지 못하는 이유로 특별히 개조한 임씨의 오토바이는 아담한 적재함을 가지고 있어 매일 수확한 고추를 광주 농산물센터에 납품하는 일을 도와주는 일등 수훈갑이다.
"한번 어떤 작물을 해봐야겠다고 결심이 서면 저는 이 오토바이를 타고 재배경험이 많은 농부들을 찾아 정보를 얻습니다. 그런이유로 재산 1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껍니다"
농사일을 해오면서 불편한 몸 때문에 어느 농군보다 인부(人夫)로 인해 어려움이 많았다는 그는 '사람없는 시골'이 못내 아쉽다고 한다.
"사람이 없어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다반사였고 일을 다 끝내고도 잘못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되는 경우는 셀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말 못하는 짐승보다 훌륭하다는 이유가 무엇때문인가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 아닐까요!"라고 반문하는 임씨는 "TV에서 삶이 힘들다는 이유로 삶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봅니다. 젊은 사람들도 많더라구요! 대체 왜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삶에 대한 의지에 보태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한다.
힘든 삶을 살아온 임씨의 한마디 한마디에 표출되는 그의 소신은 삶을 살면서 봉착하게 되는 어려움 만큼이나 그것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려는 의지도 그에 맞게 키워나가야 됨을 의미하는 것 같다.
허리높이의 고추가 임씨에게는 키를 훨씬 넘는 큰 나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임씨는 "오히려 불편하다기 보다는 더운 비닐하우스에서 오랫동안 해야만 하는 작업중에 비닐사이로 비치는 햇볕의 뜨거움을 막아주는 고추가 너무 고맙다"고 여길 정도로 매사에 감사하며 긍정적인 삶을 풀어가고 있다.
음식점에 들른 어머니와 아들, 아들의 장난으로 어머니의 옷에 케찹을 쏟은 아들을 어머니는 총을 맞고 죽는 시늉을 하며 슬기롭게 넘기는 어느 광고가 생각난다. '생각의 차이', 어려움을 슬기롭게 대처해 자신의 '의지'에 보태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는 어머니는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려는 '의지', 농군은 농사를 잘 짓고 싶은 '의지'와 다르진 않을 것이다.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고 있는 이춘임(53)씨와 사이에 3남을 두고 있는 임씨는 '자식농사는 매년 풍년'이라며 오늘도 어김없이 '울창한 고추나무숲(?)'안에서 자신만의 인생고랑을 한발 한발 내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