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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강연(64)새벽을 여는 강연(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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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11.29  15: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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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수(이클레어그룹 창립자)





'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1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478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16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제럴드 수 이클레어그룹 창립자가 ‘기업가 정신과 글로벌 비즈니스 전략’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죽으면 동전 한 닢도 가져갈 수 없지요”





드림 체이서(Dream chaser). 이클레어(Eclaire)그룹 창립자인 제럴드 수가 자신의 명함에서 밝혀 놓은 직업은 ‘꿈을 쫓는 사람’이다. 실제로 대만에서 태어난 그는 달랑 7백 달러만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가장 성공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아시아인 중 한 명이 됐다. 2000년부터 그의 이름 뒤에는 ‘실리콘벨리의 1만여 개에 이르는 회사 중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CEO’, ‘월스트리트가 선정한 아시아계 미국인 IT회사 중 최고운영자’ 등의 칭호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1969년 처음 미국으로 건너왔을 때만 해도 나의 영어 실력은 형편없었다. 공부하는 것만이 나의 활로를 열어줄 것이라 믿고 기회가 닿는 대로 학교를 다녔는데, 대학과 대학원에만 다닌 기간이 17년이다. 주로 과학과 공학을 전공한 나는 나중에는 MIT 경영대학원에도 다녔다. 당시 내가 재정적 여유가 있어서 이렇게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도미한 직후 9개월 동안 1천여 곳의 화장실을 청소해야 했을 정도로 생활은 열악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자 마침내 그 꿈은 현실이 됐다. 직원이 10여 명에 불과했던 작고 볼품없던 회사 아방뜨를 실리콘벨리의 톱 3에 들어가는 수 천명 규모의 회사로 키웠는데, 이 회사 구성원의 85%가 석사와 박사였다.”



그렇다면 제럴드 수가 이러한 성공에 이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경제지 <포브>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힘으로써 유명해졌던 ‘제럴드 수 15개 경영전략’의 일단을 소개했다.



“무엇보다 먼저 기업 문화의 초점을 글로벌에 맞춰야 한다. 더 이상 국내적 관점만 가지고서는 국제적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예컨대 아시아의 많은 나라가 IME 위기를 맞아 휘청거릴 때 중국의 상황은 아주 좋았다. 지구촌의 한쪽이 낮이면 반대쪽이 밤이듯이 경제적 상황도 지역마다 다르다는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이러한 시차(時差)가 경영자에게는 좋지 않은 조건으로 작용했다. 미국 본사는 낮이지만 유럽 지사는 밤이라 전화로 지침을 내리거나 의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나는 어디에 있든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72개 회사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시차는 그렇게 간단하게 극복됐다. 글로벌 마인드가 없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



그러나 기업이 아무리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우수한 인력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세계 500대 기업 중 100년 동안 유지된 회사가 단 한 개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기업의 효율성과 생산성 제고를 위해서는 생산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성공하는 회사는 무엇보다 먼저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생산력과 영업력이 강화돼야 품질로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인력관리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는 신상필벌의 원칙을 철저히 견지했다.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신제품을 개발하는 팀에게는 과감하게 1백만 달러의 인센티브를 지급했고, 상위 40%의 직원에게는 40만 달러의 연봉을 보장했다. 반면에 6개월 단위로 성과가 미미하거나 무능한 하위 5%의 직원에 대해서는 해고를 단행했다. 제품의 수명이 갈수록 짧아지는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매출의 20%를 연구개발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물론 이러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 제럴드 수 스스로가 CEO로서 회사의 운명에 모든 것을 걸었다. 20여 년 동안 단 하루의 휴가도 없이 하루 16~17시간씩 일했다. 신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정이 들었던 제품을 철수시킬 때는 “너의 자녀도 마음에 안 들면 죽여라. 죽이지 않으면 경쟁자가 죽일 것이다”라는 경구를 가슴에 새기기도 했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자전거가 넘어지듯이 3년을 주기로 제품 모델은 물론이고 기업 문화도 새롭게 창출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내가 더 중시했던 경영원칙이 있는데, ‘완전 100% 투명경영’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갖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관료와의 관계를 잘 풀어서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원천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 전 세계 기업 관련 소송의 94%가 미국에서 발생한다는 통계도 있는데, 작은 트집 하나만 잡혀도 변호사에게 수억에서 수천억 달러를 지불하며 소송전쟁에 휘말려야 한다. 나 자신도 개인 차원으로 4회, 회사 차원으로 27회의 소송을 체험했다. 철저하게 투명경영을 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책이다.”



그런데 제럴드 수는 ‘효율적 경영’을 통해 엄청난 부를 거머쥔 뒤에는 장학사업과 기부활동 등을 통해 ‘효율적 환원’을 실천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동전 한 닢도 가져갈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지환 기자





제럴드 수 창립자의 이력서



▲ 미 MIT 응용수학 학사, 기계공학 석사, 해양공학 석사

▲ 1982~1988 실리콘밸리에 PC하드웨어와 CAD소프트웨어 회사 설립 운영

▲ 1988~1991 선 마이크로시스템 그래픽 소프트웨어 이사, 전략영업팀 이사, 1400억 매출달성

▲ 1991~1994 IC디자인 회사 Cadence디자인시스템 사장, 2500억 매출관리

▲ 1994~2002 EDA 회사 Avant! 사장, 회장. 2002년 1.2조에 매도 및 합병

▲ 2000~2002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높은 연봉 CEO 선정, 월스트리트 선정 아시아계 미국인 IT회사 중 최고운영자

▲ Eclaire그룹 창립자 및 투자가

▲ Eclaire그룹 한국 독립법인 Cynthia Technology Korea 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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