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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가사문학의 본류를 찾아(9)기획연재/ 가사문학의 본류를 찾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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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9.18  15: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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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歌辭文學에 나타난 江湖閑情의 風流





강호한정의 가사는 시골(江湖)에서의 한가로운 정을 주제로 한 가사이다. 강호란 江과 湖水로 세상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은자나 시인, 묵객들이 어지러운 속세를 떠나 자연에 묻혀 생활하던 곳을 말하기도 하며, 또 이는 조정에 대한 시골의 뜻이기도 하다. 또 한정이란 한가로운 정을 말한다.



조선조에 들어와 유교적인 이념이 양반들에 의하여 정착되자 그것을 생활화하려는 노력이 여러 각도에서 나타났다. 그 노력은 정치현실에 참여하여 이념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방향으로도 나아갔고, 정치현실에서 밀려나 피세하면서 자연과의 화합을 통해서 이념을 소극적, 간접적으로 실현하는 방향으로도 나아갔는데, 강호한정의 가사는 현실적으로는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온 양반들이 심리적으로 안빈낙도를 꾀하여 한거하고자 하는 것으로 조선조 양반들의 이념과 처세관을 동시에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강호한정의 가사는 은자나 시인, 묵객들이 어지러운 속세와 뜻이 맞지 않을 때, 세상을 피하는 것을 목적으로 자연으로 돌아와 한거함에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어 주객일체가 된 생활이 문학으로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같은 주제는 조선시대 토지제도인 과전제가 고려의 전시과와 달리 고향을 생활근거지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강호한정의 가사에는 관직을 내놓고 전원으로 돌아가겠다고 노래한 ‘치사귀전가류’와 곤궁하게 살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天道를 지키겠다고 노래한 안빈낙도가류와 세상을 피하여 산림에서 숨어사는 것을 노래한 은일처사가류 등이 있다. 이러한 강호한정의 가사를 크게 둘로 나눈다면, 전원에서의 한가로운 情을 노래한 ‘전가한거계’ 가사와 곤궁하게 살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천도를 지키는 것을 노래한 ‘안빈낙도계’ 가사로 나눌 수 있다.



전자에는 ‘상춘곡’, ‘매창월가’, ‘면앙정가’, ‘퇴계가’, ‘환산별곡’, ‘도산가’, ‘낙지가’, ‘성산별곡’, ‘강촌별곡’, ‘강호청가’, ‘사제곡’, ‘봉산곡’(천대별곡), ‘일민가’, ‘낙은별곡’, ‘하명동가’, ‘초당곡’, ‘용추유영가’, ‘채미가’, ‘강촌일약가’, ‘강호별곡’, ‘낙민가’, ‘처사가’, ‘연정가’, ‘백구가’, ‘창랑곡’ 등이 있고, 후자에는 ‘낙지가’, ‘낙빈가’, ‘누항사’, ‘노계가’, ‘매호별곡’, ‘탄궁가’, ‘목동가’, ‘목동문답가’, ‘안빈낙도가’ 등이 있다.





전가한거계 歌辭





전가한거계 가사라고 하는 것은 田園에서의 한가로운 정을 노래한 것으로, 대표작은 정극인의 상춘곡이다.



상춘곡은 전 39절 79구로 된 정형가사로, 이는 작가가 만년에 고향인 전북 태인(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은거하여 후진을 훈도하는 한편 세속을 떠나 자연에 몰입하여 봄을 완상하며 인생을 즐기는 것을 노래한 가사로, 인용 부분을 보면 고향 태인의 山水 경치가 빼어난 곳에 몇 간 띠집을 지어 자연을 벗하며 정자에 거닐면서 시를 읆조리고 냇가에서 목욕도 하고 조석으로 낚시질도 하고 꽃나무로 수를 셈하며 술을 마시고 춘흥에 겨워하는 강호한정의 심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상춘곡’에 못지않게 작자의 고향의 아름다움과 강호한정을 노래한 ‘면앙정가’가 있다.



면앙정가는 송순이 지은 가사로 서사에는 면앙정은 무등산의 지맥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곳에는 七曲과 정자가 있고, 또 그 정자에서 바라보는 사방의 산세의 승경을 노래하고 있다.



본사에서는 春, 夏, 秋, 冬 4계절의 경관을 노래하고 총괄적으로 4계절의 경치를 한없는 경치라 하고 있다. 결사에서는 세속 명리를 떠나 있는 몸이지만 날마다 자연승경을 찾는 물외한정과 술친구와 풍류를 잡히며 취해서 즐김도 임금의 은총이라고 하면서 연주의 정을 나타내고 있다.



위에 인용한 부분은 물외소식 항으로 이 가사는 면앙정 주위의 산수의 아름다움과 사시경물과 그에 몰입하여 유상하는 전원에서의 한가로운 정을 설파하고 있다.



홍만종의 ‘순오지’에도 ‘면앙정가’의 내용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 있다. 홍만종이 산수지승과 유상지락과 호연지취를 노래한 것이라고 평한 것을 보아도 이는 전원에 한거하는 강호한정의 가사임을 알 수 있다. 또, 송순은 그의 한글 시가 작품인 가사와 시조를 지은 솜씨의 능숙함으로 보아 이 외에도 더 많은 한글 작품을 지었으리라 여겨진다. 그는 강호가도의 주창자로서 시조문학에도 그 정수를 계승하여 뛰어난 작품을 남긴 것이다.



국문학사에 있어 가장 우수한 가사를 남겼던 송강과 노계의 가사 중에서 강호한정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는 ‘성산별곡’과 ‘사제곡’, ‘누항사’, ‘노계가’ 등이 있는데, 먼저 송강의 ‘성산별곡’을 보기로 한다. ‘성산별곡’은 송강 정철이 25세 때에 지은 가사다.



‘성산별곡’은 강호한정의 가사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전 84절 169구로 된 정형가사로, 그 구성이 서사, 춘경, 하경, 추경, 동경, 결사의 순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사에서 나그네가 식영정 주인인 서하당 김성원에게 세상의 좋은 일을 두고 어찌 강산에 묻혀 사는가 하고 그 까닭을 묻고 있다. 그 대답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결사에서 독서와 음주, 탄금으로 망아의 경지에 이름을 노래하고 있다.



매우 체계적이고 극적인 전개로 단순히 전원에 한거하는 정도를 넘어 손과 주인의 경지를 잊어버리고 자연과 신선에 합일하는 유연한 멋을 풍기는 작품이라 하겠다.



노계 박인로의 작품 중에서 강호한정을 주제로 한 가사로는 ‘사제곡’, ‘누항사’, ‘노계가’가 있는데, ‘사제곡’은 전가한거계 가사로 ‘누항사’와 ‘노계가’는 안빈낙도계 가사로 분류된다. ‘사제곡’은 노계 박인로가 51세 때에 지은 전 87절 179구로 된 정형가사다. 한음 이덕형이 선조가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더욱 격렬해진 붕당 싸움 속에서 국사를 위하여 애쓰다가 광해군 3년(1611) 용진에 은퇴하여 사제 강정에서 지낼 때 노계가 그의 손님이 되어 더불어 교유하면서 한음을 위하여 사제의 한거생활을 노래한 것이 바로 이 가사다.



내용을 보면 백사정반의 즐거움, 강산의 아름다움, 봄날의 절경, 뱃놀이의 흥치, 산속을 거닐음 등 한거의 정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다만 끝 부분에 가서는 성은과 부모에 대한 효도로 속세에 대한 정이 스며있다. 그러나 서두에서부터 전가한거의 뜻이 뚜렷이 보이는 작품이다.



이밖에도 김기홍의 ‘채미가’는 전 38절 79구로 된 정형가사로, 자연을 벗삼고 독서를 즐기면서 산중 경물을 구경하며 화조월석에 싫도록 노니는 생활로 청풍명월과 백년해로하겠다고 노래한 것이고, ‘매창월가’는 전 12절 29구로 된 변형가사로 작자 이인형(1436~1497)이 40~42세경인 성종 6년(1475)에서 8년(1477) 사이에 지은 가사로 梅, 窓, 月을 대상으로 하여 시골에서 한거하는 생활을 노래했다.



‘퇴계가’는 전 38절 76구로 된 정형가사로 중상모략이 난무하는 관계를 피하여 향리에 돌아와서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전가한거의 사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환산별곡’은 전 25절 50구로 된 정형가사로 대학본 ‘청구영언’에는 퇴계저 이십사구라고 하여 퇴계 이황의 가사로 기록되어 있으나 아직 퇴계의 작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 가사는 심각한 관료생활의 괴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사직 후 귀향하여 유유자적하는 산림처사적인 은둔사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낙지가’는 율곡 이이(1536~1584)의 가사로 전 313절 628구로 된 변형가사다. 사본으로는 가람본 가사와 남애본 ‘율곡선생낙지가’ 등이 있고, 내용은 서사, 춘사, 하사, 추사, 동사, 결사의 6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직처가 베를 짜니 의복이 걱정없고, 앞 논에 벼가 익으니 식량이 걱정없고, 노친이 강왕하고 형제가 단락하니 한없는 즐거움으로 전가한거 함을 노래하고 있다.



‘일민가’는 작자 윤이후가 숙종 24년(1698)에 지은 가사로 전 62절 124구로 된 정형가사인데 , 관직에서 물러나서 강호에 묻혀사는 초야 일민의 심회를 노래했고, ‘하명동가’는 이귀서가 영조 33년(1757)경에 지은 가사로 이는 작자의 고향인 하명동의 승경을 말하고 부모님을 정성으로 섬기면서 높은 산과 흐르는 물을 찾아 기암과 묵은 소나무 아래에 한가롭게 앉아 거문고를 타며 유유자적하는 생활을 노래했다.



‘용추유영가’는 정훈의 가사로 전 61절 122구로 된 정형가사로 이는 작자의 은거지인 지리산의 용추동을 중심으로 춘하추동 4계절의 가경을 노래하며 그 속에서 한가로이 백년세월을 노닐겠다고 노래하고 있는데, 내용으로 보아 송순의 ‘면앙정가’와 정철의 ‘성산별곡’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강촌일약가’는 영, 정조 때 번계 이양오의 가사로, 그가 향리인 울산 태촌 석천에서 후학을 훈도하는 한편 집 앞에 흐르는 석천에 낚시질 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번계가 그의 향리에 있는 석천에서의 어부 생활을 노래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가사는 ‘상춘곡’을 비롯하여 ‘낙빈가’, ‘성산별곡’ 등 많은 기존 가사를 인용 모방하고 있어 독창성이 없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강호별곡’은 고종 때에 지었으리라 추정되는 작자미상의 가사로, 세상공명을 버리고 가어옹이 되어 고기를 잡아 술과 바꾸어 마시고 취흥에 겨워 동령에 달 뜰 때 귀범하는 즐거움을 노래했고, ‘낙민가’는 작자와 제작연대 미상의 가사로, 전 30절 60구로 된 변형가사로 부귀영화를 버리고 자연에 파묻혀 유유자적하는 심회를 노래하고 있다.



처사가는 작자와 제작연대를 알 수 없는 공통점을 지닌 조선조 十二가사의 하나로 전 14절 28구로 된 변형가사이며 자연을 벗삼아 세속에서 초탈한 생애를 노래하고 있다. ‘백구사’ 또한 十二가사의 하나로 전 18절 39구로 된 변형가사인데, 벼슬에서 물러난 처사가 천석사이를 거닐며 봄철의 절경을 완상하는 한가로움을 노래했다. ‘창랑곡’은 전61절 122구로 된 정형가사로, 세상의 부귀공명을 버리고 한가닥 낚싯대를 벗삼아 창랑가에 소요자적하면서 지내겠다고 노래한 것으로 은둔사상에서 지은 것이라 생각되고 ‘연정사’는 부귀공명을 버리고 강호에 파묻혀 낚싯대나 드리우며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안빈낙도계 歌辭





안빈낙도계 가사라고 하는 것은 가난하고 곤궁하면서도 절개를 지키며 평안한 마음으로 道를 지키는 것을 노래한 것이다.



‘누항사’는 노계 박인로가 51세 때인 광해군 3년(1611) 봄에 용진강 사제로 한음 이덕형을 찾아갔을 때 한음공이 산촌생활의 어려운 형편을 묻자 이에 대답해서 지은 가사다. 전 77절 157구로 된 정형가사로 산촌의 생활이 극히 어려워 배고프고 추움이 몸을 저미고 모욕을 당함이 극심하지만 오직 빈이무원하고 자연을 벗삼아 안빈낙도하는 즐거움은 비할데 없다고 노래하고 있다. 빈한에 허덕이면서 부귀공명에 아랑곳없이 오직 안빈일념과 빈이무원하는 노계의 꿋꿋한 자세와, 또 빈한한 몸이로되 천명으로 여겨 道를 즐긴다는 그의 사상은 바로 ‘논어’의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 자왈가야 미약빈이락 부이호예자야”에서와, ‘헌문편’, ‘술이편’, ‘옹야편’ 등의 안빈낙도관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논어’에 “빈이무원 난 부이무교 역”이라 한 것이라든가, “반소식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라 한 것들은 모두 이 안빈낙도를 말하고 있는데 특히 후자의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足하도다라고 한 것은 이 안빈낙도의 사상이 고도로 승화된 표현이다. 그는 ‘누항사’ 이외에도 ‘노계가’를 비롯한 여러 가사에서 안빈낙도의 사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안빈낙도의 사상은 ‘낙빈가’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낙빈가’의 작자에 대하여 문헌에 기록된 것을 보면, 가사집인 ‘잡가’에는 “낙빈가 오십사구 차율곡선생지소제 안빈낙도지의 산인풍류지승 우어사기지간 이유아극의”라 하여 작자를 율곡이라 하였고, ‘속기아’에는 “낙빈가 퇴계 미득정본 인인송전이서지 구다착간”이라 하여 퇴계의 작이라 하였고, 신문고본 청구영언에는 낙빈가 퇴계혹운율곡사십육구라 하여 작자를 퇴계 또는 율곡이라 했다. ‘낙빈가’는 전 48절 96구로 된 정형가사로, 내용을 보면, 오랫동안 벼슬을 하다가 늦게야 산수 간에 돌아와 수간초옥을 지어두고 끼니를 많이 거르면서도 가난함을 탓하지 않고 오직 자연의 아름다움에 몰입한는 안빈낙도의 사상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



‘매호별곡’은 매호 조우인이 지은 가사다. 그는 몽신을 부로 하여 명종 16년(1561)에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 칭송되었다. 28세 때인 선조 21년(1588)에 진사가 되고, 45세 때인 동왕 38년(1605)에야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에 제수되었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 간신 이이첨(李爾瞻) 등이 국정을 전횡하여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광해군 6년(1614) 1월에는 인목대비를 서궁에 가두고, 2월에는 영창대군을 강화도에서 죽이는 등 난정이 극에 달했다.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이이첨 등과 반목질시하는 처지가 되어 56세 때인 동왕 8년(1616)에 삭방의 鏡城 판관에 쫓겨나서 5년간을 지냈다. 61세 때인 동왕 13년(1621)에 제술관으로 돌아와서 서궁의 유폐함을 보고 詩를 지었던 것이 이이첨 일파의 모함으로 투옥되어 3년간을 지냈다가 인조반정으로 석방되어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고, 이어 우부승지를 지내다가 사직되고, 고향인 경상도 상주군 사벌면에 은거했다.



인조 3년(1625) 5월 3일 세상을 떠나니 65세였다. 그는 글씨, 그림, 詩에 능하여 三絶이라 불리었으며 저서로 ‘이재집’과 가사로 ‘매호별곡’ ‘자도사’ ‘관동속별곡 ’출새곡‘ 등이 있다.



‘매호별곡’은 전 89절 178구로 된 정형가사로, 작자 만년에 고향인 경북 상주군 사벌면 매호리에서 자연을 벗하여 유유자적하는 정경을 읊은 것인데, 이와같이 깊이 잠길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속유들이 희구하는 안빈낙도의 생활을 넘어서 설경에서 노니는 선인들의 생활상과 방불하다 하겠다. 이는 바로 ‘논어’에서 말하는 “반소식음수 곡굉이침지 락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이라는 안빈낙도의 사상이 고도로 승화된 생활태도라 할 만하다.



도덕적인 생각에서 안빈낙도하는 것과는 달리 자연에 의지하여 소나 치면서 안빈낙도하는 작품으로는 ‘목동문답가’가 있다. ‘목동문답가’는 1951년 겨울에 이가원이 발견하여 ‘현대문학’ 통권 35호에 소개하여 비로소 알려진 가사로, 이는 퇴계 이황의 8대 손부인 숙부인 이씨(?~1797)가 손수 쓴 것이라 전한다.



내용은 크게 두 단으로 나눌 수 있는데, 1단은 “녹양 방초안의 쇼먹이난 아해들아~煙郊 초야의 쇼치기만 하나산다”까지이고, 2단은 “목동들이 대답하되 어와 긔뉘신고~이 동소숙 한 곡조의 행화촌을 차지리라” 까지다. 인간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江湖에 은거하여 안빈낙도하며 목동과 같이 소치기나 하며 지내는 것이 인생의 樂이라고 하는 자연귀의사상을 노래하였는데, 전반부는 목동에게 묻는 형식이고 후반부는 목동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된 가사다.



이밖에도 ‘낙지가’는 이서가 42세 때인 중종 18년(1523)전후에 지은 가사로 전 76절 152구로 된 변형가사인데, 이는 이서가 중종 2년에 무고로 전라도 창평으로 귀양가 14년 만인 39세 때 방면되어 귀경하지 않고 그 곳에 한거하며 후학을 훈도하면서 담주의 순후한 미풍양속과 승경을 노래하고, 부귀공명을 버리고 미록과 벗하며 안빈낙도하는 뜻을 중장통의 낙지론을 사숙하여 지은 것이다.



‘목동가’는 작자 임유후이 61세 때부터 5년간에 지은 가사로 전 132절 269구(문가 64절 132구, 답가 68절 137구)로 된 변형가사다. 목동에게 묻는 앞부분과 목동이 대답하는 뒷부분의 문답체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작자가 목동에게 인생의 궁달에는 귀천이 없으니 이름을 떨치는 것이 어떠냐고 권하였더니 목동 왈, 처음에는 부귀를 누리다가 말년에 불행했던 굴원, 유자후, 한신, 백기 등의 사실을 들어 세상의 명리에는 뜻이 없고 안빈낙도가 제일이라 답한다.



‘노계가’는 작자 박인로가 76세 때인 인조 14년(1636)에 지은 가사로, 전 94절 206구로 된 정형가사인데 이는 그의 은거지인 노계의 승경과 작자의 회포를 노래한 것으로 우국충군의 선비인 작자가 태평성세를 갈망하면서 전가한거하며 안빈낙도하는 심경을 노래한 것이다.



‘탄궁가’는 정훈의 가사로, 지은 연대는 알 수 없다. 전 42절 85구로 된 정형가사로 내용은 몹시 곤궁하여 끼니를 많이 거르는 형편이라 가난을 극복하려 해도 헤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는 안빈낙도하겠다고 다짐한 노래이고, ‘안빈낙도가’는 작자와 제작연대 미상인 가사로 가사 제목이 말해 주듯이 부귀공명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안빈낙도를 바라며 담백한 생활을 누리겠다고 하고 있다.



이상에서 가사문학에 나타난 강호한정을 주제로 한 가사를 ‘전가한거계 가사’와 ‘안빈낙도계 가사’로 나누어 살펴보았는데, 이들의 공통적인 점은 유교의 관념에서 충효나 수분지지를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도교적 자연사상, 자연귀의, 자연합일정신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동일한 주제안에 ‘안빈낙도계 가사’는 ‘전가한거계 가사’보다는 생활의 빈곤에서도 자연에서 즐거워하는 心性을 노래하는데 우선함을 알 수 있다. (이 기획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 글/ 한명석 記者 사진/ 서영준 記者 자문/ 최한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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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가>



무등산 한 활기 뫼히 동다히로 버더 이셔

멀리 떼쳐와 제월봉(霽月峰)이 되어거늘

무변대야(無邊大野)의 므슴 짐쟉하노라,

일곱 구비 한데 움쳐 므득므득 버려는 듯,

가온데 구비는 굼긔 든 늘근 뇽이

선잠을 갓 깨야 머리를 안쳐시니,

너라바회 우희 송죽(松竹)을 헤혀고 정자를 언쳐시니

구름탄 &#52453;학(靑鶴)이 천 리를 가리라 두 나래 버렷는 듯

옥천산 용천산 나린 믈히, 정자 앞 너븐 들헤 올올(兀兀)히 펴진 드시,

넙꺼든 기노라 프르거든 희디 마나 / 쌍룡(雙龍)이 뒤트는 듯 긴 깁을 채&#54215;는 듯,

어드러로 가노라, 므슴 일 배얏바 / 닷는 듯 따로는 듯 밤낫즈로 흐르는 듯

므조친 사정(沙汀)은 눈갓치 펴&#51275;거든 / 어즈러온 기러기는 므스거슬 어르노라

안즈락 나리락 모드락 흐트락 / 노화(蘆花)를 사이 두고 우러곰 좃니난고.

너븐 길 밧기요 긴 하늘 아래 / 두르고 꼬즌 거슨 뫼힌가 병풍인가 그림인가 아닌가.

노픈 듯 나즌 듯 긋는 듯 닛는 듯 / 숨거니 뵈거니 가거기 머물거니

어즈러온 가온데 일홈난 양하야 하늘도 젓치 아녀

웃독이 셧는 거시 추월산 머리 짓고 / 용귀산 봉선산 불대산 어등산 용진산 금성산이

허공에 버러거든 / 원근(遠近) 창애(蒼崖)의 머믄 것도 하도 할샤.

흰 구름 브흰 연하(煙霞) 프르니난 산람(山籃)이라 / 천암만학(千巖萬壑)을 제 집을 사마 두고

나명셩 들명셩 일헤도 구는지고 / 오르거니 나리거니 장공(長空)의 떠나거니

광야로 거너거니, 프르락 불그락 여트락 디트락 / 사양(斜陽)과 섯거디어 세우조차 뿌리난다.

남여(藍輿)를 배야타고 솔 아&#47504; 구븐 길로 오며 가며 하난 적의

녹양(綠楊)의 우는 황앵(黃鶯) 교태 겨워 하는괴야. / 나모 새 자자지여 수음(樹陰)이 얼&#47508; 적의,

백척(百尺) 난간의 긴 조으름 내여 펴니 / 수면 양풍(凉風)이야 긋칠 줄 모르는가

즌서리 빠딘 후의 산 빗치 금수(錦繡)로다. / 황운(黃雲)은 또 엇디 만경의 퍼겨 디오.

어적(漁笛)도 흥을 계워 달랄 따라 브니난다.

초목 다 진 후의 강산(江山)이 매몰커늘 / 조물(造物)이 헌사하여 빙설(氷雪)로 꾸며 내니

경궁요대(瓊宮瑤臺)와 옥해은산(玉海銀山)이 안저(眼底)의 버러셰라.

건곤(乾坤)도 가암열사 간 대마다 경이로다.

인간을 떠나와도 내 몸이 겨를 업다.

니것도 보려 하고 져것도 드르려코 / 바람도 혀려 하고 달도 마츠려코

밤으란 언제 줍고 고기란 언제 낙고 / 시비란 뉘 다드며 딘 곳츠란 뉘 쓸려뇨

아침이 낫브거니 나조헤라 슬흘소냐 / 오날리 부족커니 내일리라 유여(有餘)하랴.

이 뫼헤 안자 보고 뎌 뫼헤 거러보니 / 번로(煩勞)한 마음의 바릴 일리 아조 업다.

쉴 사이 업거든 길히나 젼하리야 / 다만 한 청려장(靑藜杖)이 다 므듸어 가노매라

술이 닉어거니 벗지라 업슬소냐 / 블내며 타이며 혀이며 이야며

온가지 소리로 취흥(醉興)을 배야거니 / 근심이라 이시며 시름이라 브터시랴.

누으락 안즈락 구부락 져츠락 / 을프락 파람하락 노혜로 놀거니

천지도 넙고 넙고 일월도 한가하다 / 희황(羲皇)을 모를러니 이 적이야 긔로고야

신선이 엇더턴지 이 몸이야 긔로고야

강산풍월 거늘리고 내 백년을 다 누리면 / 악양루 샹의 이태백이 사라오다.

호탕(浩蕩) 정회(情懷)야 이에서 더할소냐

이 몸이 이렁 굼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면앙정가 현대어 풀이>



무등산 한 줄기 산이 동쪽으로 뻗어 있어, (무등산을) 멀리 떼어 버리고 나와 제월봉이 되었거늘, 끝 없는 넓은 들에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 일곱 굽이가 한데 움치리어 우뚝우뚝 벌여 놓은 듯, 그 가운데 굽이는 구멍에 든 늙은 용이 선잠을 막 깨어 머리를 얹혀 놓은 듯하며,

넓고 편편한 바위 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헤치고 정자를 앉혀 놓았으니, 마치 구름을 탄 푸른 학이 천 리를 가려고 두 날개를 벌린 듯하다.

옥천산, 용천산에서 내리는 물이 정자 앞 넓은 들에 끊임없이 퍼져 있으니, 넓거든 길지나, 푸르거든 희지나 말거나(넓으면서도 길며 푸르면서도 희다는 뜻), 쌍룡이 몸을 뒤트는 듯, 긴 비단을 가득하게 펼쳐 놓은 듯, 어디를 가려고 무슨 일이 바빠서 달려가는 듯, 따라가는 듯 밤낮으로 흐르는 듯하다.

물 따라 벌여 있는 물가의 모래밭은 눈같이 하얗게 펴졌는데, 어지러운 기러기는 무엇을 통정(通情)하려고 앉았다가 내렸다가,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갈대꽃을 사이에 두고 울면서 서로 따라 다니는고?

넓은 길 밖, 긴 하늘 아래 두르고 꽂은 것은 산인가, 병풍인가, 그림인가, 아닌가. 높은 듯 낮은 듯, 끊어지는 듯 잇는 듯, 숨기도 하고 보이기도 하며, 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며, 어지러운 가운데 유명한 체하여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고 우뚝 선 것이 추월산 머리 삼고, 용구산, 몽선산, 불대산, 어등산, 용진산, 금성산이 허공에 벌어져 있는데, 멀리 가까이 푸른 언덕에 머문 것(펼쳐진 모양)도 많기도 많구나.

흰 구름과 뿌연 안개와 놀, 푸른 것은 산 아지랭이다. 수많은 바위와 골짜기를 제 집을 삼아 두고. 나며 들며 아양도 떠는구나. 오르기도 하며 내리기도 하며 넓고 먼 하늘에 떠나기도 하고 넓은 들판으로 건너가기도 하여, 푸르락 붉으락, 옅으락 짙으락 석양에 지는 해와 섞이어 보슬비마저 뿌리는구나.

뚜껑 없는 가마를 재촉해 타고 소나무 아래 굽은 길로 오며 가며 하는 때에, 푸른 들에서 지저귀는 꾀꼬리는 흥에 겨워 아양을 떠는구나. 나무 사이가 가득하여(우거져) 녹음이 엉긴 때에 긴 난간에서 긴 졸음을 내어 펴니, 물 위의 서늘한 바람이야 그칠 줄 모르는구나.

된서리 걷힌 후에 산빛이 수놓은 비단 물결 같구나. 누렇게 익은 곡식은 또 어찌 넓은 들에 퍼져 있는고? 고기잡이를 하며 부는 피리도 흥을 이기지 못하여 달을 따라 부는 것인가?

초목이 다 떨어진 후에 강과 산이 묻혀 있거늘 조물주가 야단스러워 얼음과 눈으로 자연을 꾸며 내니, 경궁요대와 옥해은산같은 눈에 덮힌 아름다운 대자연이 눈 아래 펼쳐 있구나. 자연도 풍성하구나.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경치로다.

인간 세상을 떠나와도 내 몸이 한가로울 겨를이 없다. 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 바람도 쏘이려 하고, 달도 맞으려고 하니, 밤은 언제 줍고 고기는 언제 낚으며, 사립문은 누가 닫으며 떨어진 꽃은 누가 쓸 것인가? 아침나절 시간이 부족한데 (자연을 완상하느라고) 저녁이라고 싫을소냐? (자연이 아름답지 아니하랴.) 오늘도 (완상할) 시간이 부족한데 내일이라고 넉넉하랴? 이 산에 앉아 보고 저 산에 걸어 보니 번거로운 마음이면서도 아름다운 자연은 버릴 것이 전혀 없다. 쉴 사이가 없는데(이 아름다운 자연을 구경하러 올) 길이나마 전할 틈이 있으랴. 다만 하나의 푸른 명아주 지팡이가 다 못 쓰게 되어 가는구나.

술이 익었거니 벗이 없을 것인가. 노래를 부르게 하며, 악기를 타게 하며, 악기를 끌어당기게 하며, 흔들며 온갖 아름다운 소리로 취흥을 재촉하니, 근심이라 있으며 시름이라 붙었으랴. 누웠다가 앉았다가 구부렸다 젖혔다가, 시를 읊었다가 휘파람을 불었다가 하며 마음 놓고 노니, 천지도 넓고 넓으며 세월도 한가하다. 복희씨의 태평성대를 모르고 지내더니 이 때야말로 그것이로구나. 신선이 어떻던가 이 몸이야말로 그것이로구나.

강산풍월(江山風月) 거느리고 (속에 묻혀) 내 평생을 다 누리면 악양루 위에 이백이 살아온다 한들 넓고 끝없는 정다운 회포야말로 이보다 더할 것인가.

이 몸이 이렇게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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