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새의 불안에 떠는 듯한 지저귐과 야생 고양이의 낮은 울음소리가 어우러진 차산죽해의 밤은 약육강식의 자연이 그대로 보전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상쾌함과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청량한 공기는 중국 취재 기간동안 매연과 먼지에 찌들은 폐부를 속속들이 파고들어 막힌 하수구가 시원하게 뚫린 것처럼 청아한 기운이 전신을 휘감고 돌 정도의 신선함, 그 자체로 이번 중국 취재의 백미로 뽑고 싶다.
호텔 중앙 로비에는 차산죽해를 무대로 장이머우(장예모)가 촬영한 영화 ‘연인’의 포스터가 자리하고 있으며 한쪽 벽면에도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는 등 영화를 통해 알려진 차산죽해의 명성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빼어난 풍경과 더불어 영화의 잔상이 겹치는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 차산죽해는 구비 구비 산등성이를 넘어서는 동안 보성 차밭을 연상케 할 정도로 광활한 차밭이 잘 조성돼 있다.
걸음을 멈추고 전망 좋은 곳에서 바라본 차밭은 끊임없이 이어져 거의 하늘과 맞닿은 곳까지가 차밭이라고 할 정도로 광대하며 이 정도는 돼야 수십억 중국인이 마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특히 어른 허리 정도로 정성스럽게 다듬어진 차밭을 배경으로 쭉쭉 뻗은 대나무와 아침 안개의 어우러짐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고 보성과 담양의 장점만을 뽑아내어 잘 빚은 도자기처럼 한마디로 집약하면 '아름답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올 정도로 환상적이다.
차산죽해의 입구는 촉남죽해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솟을대문 같은 거대한 출입구를 대나무로 장식해 초입부터 차산죽해가 시작됨을 알리고 있으며 매표소 좌우에도 영화 '연인'의 포스터가 곳곳에 설치돼 차산죽해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영화 촬영지로 가는 도중 잠시 들른 金盆湖는 호수와 대나무밭이 앙상블을 이뤄 감탄사를 절로 나게 한다.
호수가를 따라 설치된 茶室을 겸한 500여m의 이동로는 지붕부터 탁자, 의자, 바닥까지 대나무로 인테리어 돼 고풍스러움과 함께 오직 차산죽해에서 맛 볼 수 있는 풍취임과 동시에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의 가능성을 열어준 공간으로 깊은 감명을 주었으나 이곳도 관리 부재로 인해 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옥의 티이다.
또한 금분호 앞에 자리한 식당들은 전형적인 중국 가옥 형태를 따르고 있는데 지붕부터 처마까지 건물 전체가 대나무로 만들어져 색다른 감흥과 함께 병풍처럼 휘둘러진 대밭은 오랜 친구처럼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고 있는 것 같다.
드디어 도착한 영화 촬영지는 '기대한 것이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커다란 간판 하나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 화려한 세트는 고사하고 다 쓰러져 가는 오래된 가옥이 영화의 주무대이고 한창 죽순이 올라오고 있는 대나무 밭이 금성무, 장자이, 유덕화 등 스타들이 뿜어내는 매력과 무협이 어울리는 영상 미학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영화 촬영지를 더 보고 난 느낌은 자연 그대로의 인프라에다 풍부한 상상력을 더하고 세련된 촬영기법이 더해지면 허름한 古屋이 역사의 현장이자 연인들이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공간으로 거듭 날수 있고 대밭도 그 신비로움이 더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차산죽해를 보기 위해 나선 일행에게 호텔 로비에서 가이드가 해준 말이 생각난다.
"차산죽해는 계산, 대산평, 청용차원 3개로 나눠집니다. 차밭은 인공재배를 거쳐 아주 규칙적이고 여러 겹으로 겹쳐져 있다. 특히 차나무로 귀신 형상을 만들어 조성한 것은 익살스런 중국인의 해학을 담고있어 보노라면 흥미를 돋구게 합니다"
"또 갈래갈래 녹색 비단이 산을 둘러싸고 돌아 천연 수를 놓은 것처럼 절경을 이루고 있고요 늘 공기가 습윤하고 안개가 감돌아 차잎의 품질이 좋고 맛이 순수하여 아시아는 물론 구라파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특히 차밭에는 30여 품종의 차나무가 있는데 그중 국가급 우량품종이 8개, 성급 우량품종이 4개나 됩니다"
그러려니 하고 흘려 들은 말인데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보니 名不虛傳이다.
차산죽해에 대해 박학다식한 가이드의 설명은 죽해에 다다라서도 이어진다.
"차산죽해는 인공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천연적으로 자라난 것인데 5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품종은 남죽이 위주이고 그 외 고죽, 자죽, 백협죽 등 10개 품종이 있고 그중 人面竹과 수죽이 제일 진귀한 품종입니다"
"죽해는 대남아, 금분, 백양만, 서우, 구용, 선자만 등 6개의 큰 죽해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중 우리는 푸르른 대나무가 무성하고 산간 도로가 죽엽에 덮여져 있어 마치 팔개미혼진에 들어선 것 같다는 竹海 迷宮을 보게 됩니다"
죽해미궁 입구에는 우리나라 관광지 풍경과 별 차이가 없는 노점상과 기념품 판매 가게와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이곳도 수백년 동안 반복되었듯이 막 대지를 박차고 모습을 드러낸 죽순들이 새로운 죽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 한쪽에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호객 행위를 하는 가마꾼들이 무리를 이뤄 자리하고 있으며 겨울에 쓸 요양으로 죽순을 건조하기 위해 지붕에 너는 모습은 물론 철사에 끼워 건조하는 풍경도 이국에서만 볼 수 있는 삶의 모습들이다.
이곳도 촉남죽해처럼 대나무 밭에 설기 설기 만든 노점 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주방과 식당을 연결하기 위해 만든 대나무 다리가 이채롭고 그 밑에서 노니는 닭들의 한가로움이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미로의 탈출구는 2곳으로 출구를 못 찾을 경우 3~4시간은 허비해야 한다는 가이드의 과장 섞인 말에 못 이겨 내려오는 도중, 오래 전 사라진 담양의 모습을 목격 할 수 있었다.
나이든 노파와 젊은 아낙네가 정답게 대나무 가지를 엮어 대나무 빗자루를 만들고 있는 풍경을 접했다.
사진 찍기를 거부하는 젊은 여인과는 달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준 할머니의 인자한 웃음과 '뿌리부터 잎까지 버릴 것이 없다'는 대나무의 효용가치를 알고 실생활에 활용하고 있는 竹海의 사람들에게 대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이상의 존재 가치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젊은 여인의 등에서 낮잠을 즐기는 어린아이의 손에 들려있는 대나무 잎으로 만든 공룡 인형이 꿈과 희망을 키워주는 훌륭한 장난감 역할을 하고 있다.
산자락 어귀부터 산꼭대기까지 빽빽이 들어선 대나무가 등성이를 넘어 마을을 감싸고 사찰을 가슴에 품에 안고 시민들에게 놀이의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는 것은 물론 차나무와 멋진 조화를 이뤄 절경을 이루는 차산죽해의 진경은 감동으로 물결처럼 밀려옴과 동시에 숙제를 안긴다.
대나무골 담양이 중국 죽향과의 경쟁력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며 중국이 우리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또 우리는 이곳에서 무엇을 배워 우리만의 장점으로 승화시킬 것인가?
끝없는 自問自答에서 내린 결론은 하나이다.
중국의 촉남죽해와 차산죽해가 세계 속의 죽향으로 이름나 있듯이 자랑스런 대한민국 담양은 대나무에 희망이 있고 대나무에 미래가 걸려 있다는 것을 말이다.(이 기획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 한명석·정종대 記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