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의사의 명언을 표절한 것일까. "하루라도 들녘에 나오지 않으면 몸이 쑤셔 못배긴다."며 악수를 청하기 위해 장갑을 떼어내려고 애쓰는 전정완(담양읍 만성리. 59) 씨.
해질녘 장화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흙의 두께가 오늘 하루도 고단했음을 말해준다.
스무살 청년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이자 자신의 명함이 되어준 '농사일'이 이제는 안하고는 참기 힘든 전씨의 삶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전씨를 아는 지인들은 그를 만나기 위해 집보다는 항상 그의 논과 축사를 먼저 찾는다. 농군이던 부모님과의 인연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들녘에 출근하고 있는 전씨는 "뭐 한가지 내세울 것 없는 그저 평범한 농사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가지 특이한것은 전씨가 잠은 읍에서 자고 일은 월산면에서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전씨의 텃밭이 월산면 화방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자신을 월산면민으로 착각한다는 그는 "얼마 안되는 거리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국경(?)을 넘나든다."며 주름진 얼굴에 여유로움을 보였다.
전씨는 복합농업인이다. 수도작 4000평,딸기와 토마토 1200평 그리고 한우 30두의 축사까지 모두 전씨의 일터다. 현재 축사운영은 큰아들 인철(34)씨가 맡고 있지만 전씨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적지 않은 나이에도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근육진 청년과 다름없다.
"농사를 배우고 이게 내 길이구나 했을때는 참 욕심이 많았제. 한마지기에 20여개 들어가는 모판작업을 14000장이나 했으니 말일세."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14만평의 수도작을 운영했다는 전씨의 말이 믿기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더욱이 전씨가 소유한 땅은 극히 일부였다는 사실이 농사에 대한 욕심을 짐작케 할 수 있었다. 축사앞에 자리잡은 전씨의 논 한가운데는 마치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상케 할만큼의 황토와 모판이 쌓여 씨앗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것도 부족했던지 아들 인철씨가 트럭을 이용해 어딘가로부터 계속 모판을 나르고 있었다.
"젊을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한 200마지기 벼농사를 짓고 있구만.추곡수매가 올해부터 안된다고 혀도 벼농사가 농사중에서는 일등 아니 것는가. 밥이 있어야 반찬도 필요헌 것이제. 안그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묵어도 벼농사는 많이 질라고 허네. 논을 빌려서라도 많이 질것이구만."
시설원예와 축사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는 전씨는 딸기 시세가 좋다고 해도, 소값이 오른다고 해도 결코 벼농사에서 손을 뗄 수 없다. "밥이 있어야 반찬도 필요하다."는 전씨의 뜻깊은 농담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벼농사는 포기해선 안되는 희망이다. 시세가 좋아 수입이 많아서가 아니다. 수입개방으로 쌀값이 하락하고 외국산 쌀이 밀려들어 와도 "쌀농사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전씨는 말한다.
"쌀은 뿌리당께.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때부텀 쌀농사가 진짜 농사였어. 아버지가 없이 아들이 있을 수 있고 아들이 돈좀 번다고 아버지를 무시하믄 쓰것는가. 그래서 벼농사는 절 때 포기 못혀. 아마도 내가 농촌을 떠나지 않는한 벼농사는 끝까정 질것이구만."
전씨의 병농사에 대한 애찬은 금새 농기계로 옮겨졌다. 한 아이가 친구들에게 "우리집엔 불자동차도 있고 경찰차도 있다."며 자랑을 늘어놓는 그 순박함으로 전씨는 "경운기도 두 대있고 트렉터도 두 대있고 콤바인과 이앙기도 있다."면서 애지중지하는 축사한켠의 농기계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리고는 "언젠가는 저 기계들이 타이어에 땀나게 돌아댕길 날이 틀림없이 올것"이라는 기대를 덧붙였다.
담양우시장이 문전성시를 이루던 때 운전을 배워 소를 실어나르는 일을 했던 아들 인철씨는 전씨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우시장이 쇠퇴하고 일감을 찾지 못했던 아들이 진지한 어조로 "아버지 소 한번 키워볼랍니다."라고 말했때 전씨는 아들을 위한 믿음으로 축사를 마련하고 송아지를 샀다. 아들은 직장의 동료로 가끔은 전씨의 사업을 도와주는 엘리트 직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고 전씨 역시도 그런 아들이 한없이 자랑스럽다.
만성리 농군 전정완씨. 인터뷰를 하는 동안 쉬지않고 벼농사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피력하는 그는 역시 농사꾼이었다. 그리고 "땅을 빌려서라도 벼농사는 짓겠다."는 욕심이 그의 유일한 무기였다. 전씨의 옆에서 사진의 배경이 되어준 오천여장의 모판이 언젠가는 시세좋은 쌀가마니가 될것이라 그는 믿고 또 믿고 있었다. /김필식 記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