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0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434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1월 5일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에서 윤석철 한양대 석좌교수가 '세월 속에 생각하는 인생과 기업'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벌거벗은 뒤에도 남는 힘이 진짜"
알프레드 로드 테니슨(1809∼1892). '한국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윤석철 한양대 석좌교수(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워즈워드의 후임으로 계관시인이 된 이 영국 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조찬강연의 서막을 열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바니아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다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윤 교수가 청중에게 테니슨의 영시(英詩) 'The Oak'를 소개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 속에는 약 1천억 개의 별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광대한 우주 안에는 다시 그런 은하계만 약 1천억 개나 존재한다. 1천억과 1천억을 곱하의 22제곱승이 된다. 그러나 그 중에서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은 현재까지는 지구밖에 없다. 따라서 지구에서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의 존재는 사실상 0과 다름없는 10의 22제곱승 분의 1이라는 확률이 실현된 결과인 셈이다. 인간 존재에 부과된 의미와 무게가 얼마나 심오하고 무거운 것인지 냉철하게 자각하고, 우리가 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늘 곱씹어 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그런 인간 탐구의 힌트를 인문학적 상상력을 지니고 있는 문호(文豪)에게서 찾곤 했다."
지면 관계상 여기서 '물리학도 출신 경영학자의 인문학적 상상력'의 심지에 불을 붙인 'The Oak'의 전문을 소개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시가 테니슨이 생을 마감하기 1년 전인 82세 때에 발표됐다는 사실만은 밝혀 두자.
"한 위대한 시인이 말년에 인생을 관조하며 지었던 이 영시를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끝끝내 두 개의 단어가 상징하는 의미만은 이해할 수 없었다. 'Sober(er)-hued'와 'Naked strength'가 바로 그것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30년을 흘려보낸 뒤에야, 나는 그 깊은 의미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우선 첫 번째 탐구 과제인 'Sober(er)-hued'를 보자. Sober는 술, 환상, 유혹 등에 취해 있던 상황에서 깨어나 바른 정신을 회복한 상태를 말한다.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즉 '인생 70에 이르러서는 내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더라'가 바로 이런 상태를 노래한 것이리라."
이어서 윤 교수는 몇 가지 사례를 더 동원해 Sober의 의미를 설명했다. 여기선 연금술과 이동국의 비유만 들어보기로 하자.
"무엇보다 먼저 '근거 없는 신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럽인들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패한 것 중의 하나가 쇠(Fe)와 구리(Cu) 등 보통 금속을 황금(Au)으로 바꾸려고 시도한 연금술이다. 비록 화학의 발달이라는 반대급부를 얻긴 했지만, 연금술은 자연법칙을 위반한 것이었기에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환상에서 벗어나기까지는 무려 1천년의 시간이 걸렸다. 2002 월드컵 국가대표 명단에서 항상 수백명의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던 이동국 선수가 빠지자 축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단호했다. '우리에게 스타는 필요 없다. 플레이어가 필요할 뿐이다.' 환상에서 깨어나 이를 악물고 노력한 이동국 선수는 '아드보카트호의 황태자'로 부활할 수 있었다."
윤 교수의 두 번째 탐구 과제가 된 'Naked strength'를 살펴볼 차례다. 그렇다면 그는 테니슨이 던진 '벌거벗은 힘'의 메시지를 어떻게 읽어냈을까.
"오페라 '아이다'는 10년의 공기(工期)를 거쳐 1869년 완성된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경축하기 위해 제작된 일회성 작품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집트의 국왕 이스마일 파샤가 당시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였던 베르디에게 의뢰함으로써 창작된 이 작품은 뛰어난 완성도로 인하여 인류사에 남을만한 '불후의 명작'이 되었다. 1863년 게티스버그 국립묘지 헌정식에서 진행된 링컨 대통령의 즉석 연설은 단 2분만에 끝났다. 그러나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이라는 표현은 민주주의를 언급할 때 전 세계 사회 교과서에서 반드시 언급됨으로써 '영원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대학 교수가 '옷'을 벗은 후 남아 있는 힘은 무엇일까? 학문과 인격과 인간적 미(美)가 축적돼 있지 않으면 제자들은 그를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윤 교수는 나아가 이러한 '인생의 지혜'에서 '기업의 원리'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원가(cost)보다 가격(price)이 높아야 하는 것처럼, 고객이 느끼는 기업과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가치(value) 역시도 고객이 지불하는 가격보다 훨씬 뛰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생존부등식(V > P > C)은 인생과 기업에 동시에 적용된다는 것이 윤 교수의 믿음이다. /정지환 기자
윤석철 교수의 이력서
▲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 미국 펜실베니아대 전기공학·경영학 박사
▲ 미국 펜실베니아대 조교수
▲ 미국 미시간대 조교수
▲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 독일 훔볼트재단 연구교수
▲ 한양대 석좌교수
상훈: 서울대 총장상, 제21회 정진기언론문화 대상, 근정포장
저서: 경영학적 사고의 틀,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 계량적 세계관과 사고체계, 경영학의 진리체계, 경영 경제 인생 강좌 45편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