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앞에는 호남의 젖줄 영산강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수북천이 장천을 이루고 내려와 마을 남쪽에서 영산강에 합류, 널따란 평야와 樹林·竹林으로 우거진 미어산(尾魚山) 산자락이 마을을 포근히 안고있는 수북면 풍수리 3구 미산. 전체 60여호의 가구에 170여명의 주민들이 대부분 농사를 짓지만 먹고사는 일에 크게 쪼달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리 넉넉치도 않게 알뜰살뜰 살아가고 있는 들녘의 조용한 마을 미산의 여성이장 박영자씨(57)를 만나보았다.
지난해초 이장을 맡아 올해 2년차로 어찌보면 새내기(?) 이장이지만 남편에 이어 아내가 이장을 역임하게된 수북면 최초의 부부이장 출신답게 차분하고 논리적인 달변, 자세히 묻지않아도 기자가 알고 싶어하는 부분을 시원스레 답변하고 설명하면서 시종일관 분위기를 주도하는 모습에서 3년여 동안 이장을 했던 남편의 경험과 노하우까지 보탠 경력이 그대로 묻어났다.
여성으로 또한 적지않은 나이에 이장을 맡아 힘들지 않느냐는 말에 "이장 경력은 내세울 것도 없지만 농촌 사람치고 평소 지역 사회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라 마을에도 힘이 닿는 한 봉사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일념으로 이장일을 맡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답하는 박영자 이장은 오히려 여자이기 때문에 노인들이 대부분인 마을일이 더 수월하고 나름대로 재미와 즐거움이 있다고 밝힌다. 4년전 교통사고를 당한뒤 마음을 비우고 봉사활동에만 전념하게 됐다는 그녀는 시부모 모시듯 마을 노인들을 대하고 마을일을 협의하면서 협조도 구하고 조언도 받아 마을일을 보다보니 어느새 마을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일꾼이 되어 버렸다.
그녀가 이장을 맡은 뒤 주민화합이 어느때 보다 잘 이뤄지고 있는 것은 물론 아름다운 마을가꾸기 일환으로 마을광장 꽃동산을 조성하고 농로가 없어 출하때마다 애를 태우던 딸기하우스 단지에 이제야 농로를 새로 포장하게 되었고 물길이 협소해 비만 오면 침수피해를 입었던 마을 제방변 농지 배수로를 농업기반공사의 포크레인 협조를 얻어 최근에 원상 복구한 것도 박영자 이장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주민들의 말이고 보면 오히려 남성 이장들이 못했던 일까지 당차게 해내고 있는 그녀의 뚝심(?)과 마을의 애로사항과 주민화합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그녀의 사려깊은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많은 동넷분들의 권유와 봉사의 일념으로 권유 반, 봉사 반으로 이장을 해보겠다고 나섰지만 상대가 있어 마을 투표를 통해 결국 이장에 선출되었다는 그녀는 이장을 맡자마자 지금껏 마을에서 이장에게 걷어주던 보리와 나락 등 소위 이장세(일종의 보수)를 반납하고 받지않기로 했다. 옛날에야 먹고살기 힘들어 마을에서 주는 이장세가 살림에 보탬도 되었겠지만 지금은 넉넉지는 않아도 사는데 큰 불편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순수한 봉사 차원에서 마을 일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미산마을의 가장 큰 숙원은 마을진입로 확포장과 마을안길 복개사업이다. 국도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이리목-마을간 진입로가 너무 좁아 차량이 교행하기 어렵고 바쁜 농사철에는 농기계 운행에도 무척 애로사항이 많다. 마을안 골목길 또한 협소해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면사무소와 군청에 여러차례 건의한 바 있어 언젠가는 해결해 주리라 믿고 있지만 하루라도 빨리 조치됐으면 하는게 박영자 이장뿐 아니라 마을민 모두의 소망이다. 아울러 지난 79년 '우수새마을'로 선정돼 대통령 하사금과 마을부담으로 건립한 마을회관이 이제는 너무 낡고 협소해 새로 건립은 못할망정 개보수, 증축해야 할 처지여서 수차례 군에 건의도 해보았지만 아직까지 긍정적 답이 나오지 않고있어 그저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박영자 이장은 "마을회의나 모임, 행사때마다 좁은 회관을 사용하는데 불편이 너무 크다"며"회관 창고를 개조해 조금만 공간을 넓히면 되는 일을 마을 기금도 없고 몇백만원의 공사비를 마련하지 못해 아직까지 엄두도 못내고 있다"면서 군에서도 예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소소한 돈이 들어가는 이런 일은 가급적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고 바랬다.
수북 삼인산 아래 오정리가 고향으로 스무살에 미산마을로 시집와 2남2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내 주위에서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소리 듣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며 지금껏 38년째 흙과 함께 살고있는 박영자 이장은 현재 담양군향군여성회장, 수북면주민자치위원, 담양군지역혁신협의위원,경찰서 전의경어머니회원 등 지역사회 봉사에도 폭넓게 활동중인 보기드문 멋진 여성 일꾼. / 장광호 記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