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평 축산농가들은 '수의사는 안와도 주영일씨는 온다'는 우스갯소릴 하곤 한다. 관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의 축산시설과 한우 180두를 사육하는 축산인으로 튼실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주영일(57), 주정중(30 창평면 창평리)부자.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천여평의 축사는 마치 대규모 공장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더욱이 정갈하게 정리된 내부는 가축을 기르는 곳이라고 하기엔 쾌적하기 이를 때 없다.
주씨는 창평축산농가들이 인정하는 실력있는 '기술고문(?)'이다. 특히 송아지 설사병을 잡는데는 견줄 사람이 없다는게 주민들의 평가.
양파,딸기 등 시설원예 10여년동안 한 마리씩 소를 늘려오던 일이 계기가 되어 발전을 거듭, 현재는 한우 180두의 규모있는 축산인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주씨는 성공한 축산인이란 자신의 자리보다 더한 기쁨이 있다. 자신의 아들인 정중씨가 자신의 위치를 호시탐탐 넘보며(?) 아버지를 도와 농촌에서의 터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저기 보이는 10여마리의 한우가 보이십니까? 제 아들애의 축사입니다. 이를테면 저는 본사장이고 아들애는 지사장인 셈이죠."
주정중씨- 아들 정중씨는 도외지에서 직장을 다녔다. 대학졸업과 동시에 시작한 5년여의 직장생활동안 저축한 천만원으로 송아지 12마리를 구입했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 된 계기는 "언젠가는 농촌에 터를 묻고 부모님을 모시고 살겠다"는 정중씨의 의지와 축산을 해보기를 권하는 아버지의 든든한 후원때문이었다. 정중씨는 자신의 소신을 실천, 아버지와 비교할 순 없지만 2년동안 부단히 노력, 초기자본의 4배에 해당하는 아버지 농장의 대주주(?)가 되었다.
"소 키우는 일요? 재미있고 편합니다. 아버지에게 항상 감사드려요 이렇게 좋은 일을 하게 해주셨으니까요" 매일 아침 작업복과 무릎높이의 장화를 신고 소와 씨름하는 일이 재미있다는 정중씨의 표정에는 자기일에 대한 만족이 넘쳐흐른다. 직업이 좋고 재미있다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없다.
특히 우리사회는 직업을 수입과 사회적인 지위의 잣대로 재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나 정중씨는 "직업이 좋고 나쁨은 결코 타인이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사람이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그 안에서 꿈을 펼칠 수 있다면 그것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있겠냐는 의미일지 모른다.
주씨 부자의 일과는 자식같은 소들의 아침식사를 체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축사를 둘러보며 조금은 여유롭게 물과 볏짚 그리고 사료와 배설물 상태를 파악하며 하루를 보낸다. "180여마리의 소들을 자신과 아들이 돌보는 일은 쉬운일은 아니다."고 말하는 주씨는 축사의 자동화장치를 설명하며 "의지와 아이디어만 있다면 소 키우기 쉬운 세상이다."고 열변을 토한다. 또한 그는 "180두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능력이 허락된다면 300두 이상도 자신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주씨의 자신감은 '고급육 생산만이 살길'이라는 굳은 신념으로 볏짚 및 사료 급여 방식프로그램에 충실, 60% 이상의 1등급 출현을 실현시킨 실력자로서 빛을 발하고 있다.
더불어 주씨는 사육 과정에서 발생하는 축산 분뇨를 환경 친화적인 형태로 처리, 농가에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등 축산농가의 고질적인 분뇨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김막례(52)씨- 주씨의 아내이자 정중씨의 어머니인 김씨도 바쁘긴 매한가지. 소 키우는일을 천직으로 여기는 두 사람덕에 더러워진 작업복 세탁에서 뒤치다꺼리까지 살림은 온통 김씨의 몫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하루가 멀다하고 주씨와 상담을 하기위해 찾아오는 주민들을 따뜻하게 대접하는 일도 김씨의 몫이다. 남편의 유명세덕에 일은 늘었지만 그래도 김씨의 표정에는 행복이 묻어난다. "남편은 수의사는 아니지만 수의사 대접을 받아요. 오랜세월 쌓인 경험이 인정받고 있나 봅니다.기쁜일입니다."
주씨가 이웃 축산농가들로부터 인정받는 이유는 당연지사다. 언젠가 아끼던 어미소가 새끼를 낳는 날, 장시간 줄다리기로 송아지를 잃을까 두려웠던 주씨는 결국 수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늦게서야 도착한 수의사는 준비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아 송아지를 잃었던 일이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누구보다 축산농가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고 어느때건 농가에서 도움요청이 있으면 열일을 제처두고 달려가 해결사 역할을 해주었다. 그런 주씨의 배려로 지금은 수의사보다 인정받는 주씨는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설사하는 송아지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에게 치료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주씨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농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축산인에게 소는 자식이나 다름없습니다. 시세, 육질 한가지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그 근본에는 자식처럼 아끼는 애정이 필요합니다. 그 바탕위에서만이 발전이 있습니다."
주씨 부자에게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이어주는 가교로, 그들의 힘을 모아주는 매개체이며, 한없이 소중한 존재다. 이런이유로 오늘도 주영일, 주정중 부자는 작업복차림으로 축사에 있다. 물론 일등비서 김막례씨도 함께. /김필식 記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