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의 시원지인 가마골의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그 물이 맑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흐름이 비록 굽이굽이 굽어가지만 막힘이 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어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사람 사는 사회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상호간에 막힘이 없는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이며, 건전하고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비단 개인적이거나 국가적인 문제를 떠나 동서양의 문제이기도 하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배경은 서로 모순처럼 대립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는 부분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이를 두고 '문명의 충돌', 또는 '문화의 충격'으로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갈등은 극복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특히 동양사회가 급격히 서구화되고 있는 시점에 있기 때문에 각 대학에서도 몇 년 전부터 이 문제 곧 동양과 서양의 차이에 대한 근본적 해결 방안에 대한 논술문제가 각 대학에서 지문으로 주어지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리처드 니스벳이 지은 "생각의 지도"란 책에 보면 우리 사회가 어떠한 길로 나아가야 할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사상, 문화, 전통을 비교하면서 서로가 다르지만 상호수용 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동양 사회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고 있으며, 개인의 '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에는 개인의 사유와 사물의 본질을 더 중시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서양인들은 부분을 보는 능력과 분석적이며 직관적인 사유의 삶이 생활화되어 있고 역사관 또한 직선사관에 익숙해져 있다. 반면 동양사회는 부분보다는 전체적인 것을 보고, 분석과 비평적인 것보다는 공유와 합일을 이끌어 내려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그들의 역사관에도 영향을 주어 순환사관적 입장에서 우주를 바라보게 하였다. 그리고 인간과 사물의 이치에 대해서도 서로의 대립과 경쟁이 아닌 관계와 상생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서구 사회에서는 개인적 입장에서 사유하며 통찰한다.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삶의 방식도 서로 다르다. 동양인들은 전체를 보는 가운데 나를 본다. 곧 전체 속에서 나는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집단이나 사회 속에서 나를 드러내기보다는 융화되고 조화롭게 되기를 원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하기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헌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사회나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개인이 희생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는 독립적인 인간관을 가지고 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이를 개성이 강하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삶에 부분에 있어서도 서양은 분석적이면서 논리를 중시하고 동양은 경험을 중시한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건에 대한 이해를 구할 때, 서구적 사고를 가진 사람의 설명을 들을 때는 그것이 합리적이면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동양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분석적이거나 논리적인 면보다는 상황적이거나 정(情)적인 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설득력을 잃는다.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에 대하여 어느 쪽이 옳은가? 아니면 과연 어느 쪽으로 흡수될 것인가? 그래서 어느 사회의 문화가 그 시대를 지배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학자들간에 분분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것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동양 사람이 아무리 서구적인 사고와 문화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곧 그의 서구적인 면은 부분적인 것으로 변형된 서구화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즉 서구적인 것이 동양적 환경에서 토착화된 서구화라 해야 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느 쪽이 더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인류 사회에 어떻게 작용하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독창성과 개성만을 강조하다 보면 한 개인의 능력은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사회의 기본적인 틀을 깨트릴 수 있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한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그 역시 개인의 소중한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이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서로를 통합하려고 하기보다는 서로를 존중해 줄 때, 생각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동서양이 서로 사유하는 것이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지라도 사람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서로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생각의 차이는 오히려 건전한 길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측근 진언할 수 없다. 다만 간언하기를 즐거워한다"고 혹자는 말한다. 본인에게 진언하는 생각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이해하며 어우를 수 있다면 그 사회는 한 단계 더 진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동안 기고를 해주신 송효근 목사님께서 광주로 전근을 하심에 따라 독서와 삶은 이번호로 끝을 맺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