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평면 유천리를 지나 굽이진 산등성이 길을 십여분 달리다 보면 길가에 환영나온 산수유나무들을 만나게 된다. 주민들과 함께 이룬 하진찬 이장(43 창평면 외동리)의 작품이 이른 봄 방문객들을 노란미소로 맞이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봄오는 소리 뉘 먼저 알아 듣고 꽃부터 피운 산수유나무'라는 동시 구절처럼 외딴 산골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하진찬씨는 주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여성 이장이다.
86년도 결혼과 동시에 농촌,게다가 버스도 외면해(?) 버린 산골마을에 둥지를 튼 하씨는 초창기 노부모를 모시고 농군의 아내로 시골생활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도시에서 직장생활과 비교해 시골에서의 삶이 편하다고는 말할수 없었습니다. 농사일을 비롯해 부모님을 모시고 살림을 꾸려가는 일이 힘겹게만 느껴졌으니까요. 몇번이고 도시로 나가겠다고 결심한 적도 많았습니다." 하씨는 현재 자신의 모습에 비추어 과거의 불평이 부끄러운 듯 미소를 흘렸다.
"13년의 세월동안 시부님을 모시며 농촌에 터를 묻고 살면서 자식의 의미와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는 하씨는 이후 부단한 노력으로 100여명 외동리 주민들의 손과 발이되어 봉사의 삶을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6년간의 부녀회장의 소임을 마치고 2003년 여성이장이 된 그녀는 산골마을의 여유로움에서 벗어나 활기차고 생산적인 마을을 꿈꾸며 다양한 사업을 펼치게 된다.
"우리 마을은 일흔이 가까운 노인들이 대부분입니다. 마을 공동으로 작업을 하는 날이면 거동도 불편하신 노인들이 손수 땅을 파고 나무를 심으며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며 저 역시도 보람을 느낍니다."
이장으로 젊은 사람들이 없는 농촌의 단면을 직접 체험해 온 하씨는 지난 3년동안 주민들의 봉사자로서 두가지는 꼭 이루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의 공약(公約)이기도 한 하씨의 꿈은 노인분들을 위한 복지시설 확충과 산골마을의 특색을 살린 수입증대 사업이다.
"독거노인들이 많은 이유로 복지관 건립이 시급했습니다. 추운 겨울이면 노인분들이 모여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밤을 보내는 풍경을 꿈꾸었죠. 지금도 낮이나 밤이나 주민들의 모임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마을앞에 자리잡은 복지관의 입구에는 수켤레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하씨의 꿈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마을공동의 퇴비발효장과 고개를 넘으면 시야에 들어오는 1000주의 산수유나무, 쓸모없는 땅을 이용한 3만평의 고사리재배 등 3년 동안의 하씨의 노력은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다.
또한 창평시장에 가면 '외동리 특산물 상가'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산골마을의 특색에 맞게 생산된 고랭지 팥무와 갖가지 채소들은 그 인기가 좋아서 제품이 부족할 정도라고 하니 하씨의 표정에 즐거움이 묻어나는 것도 당연한 일.
이장으로서만 아니라 창평을 움직이는 여성 파워로 손색이 없는 하씨는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행복하다"며 창평자치발전위원회 사회복지과 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삶의 행복을 느낍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제 손을 잠시 빌려주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거든요. 언제든지 제 거친 손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갈것입니다." 봉사는 남의 이목보다는 자신과의 약속이며 삶을 살아가는 지혜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거친손이 곱게만 보이는 이유도 그녀의 진솔한 마음때문이 아닐까 싶다.
6000평의 벼농사와 채소밭을 일구며 남편 정정조(46)씨의 아내로 두 아들의 어머니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 하씨는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효와 마을의 번영이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외동리가 담양 일등마을이 되리라 확신하고 있다.
겨울 해님덕에 나물을 말리고 있는 박씨 할머니의 말처럼.
"우리 이쁜 이장 누가 보쌈해 갈까 겁나부러. 이쁜짓만 한당께. 잘 될거구먼 암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