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하면 창평이라는 말이 있다. 옛부터 대법관,국회의원 등 유수의 인물들이 배출된 고을이라는 명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창평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도란도란 딸기같은 삶을 살고 있다. 농부가 좋은 땅에서 풍년을 확신하듯이 창평은 '어울림'이라는 열린 마음으로 인재의 고을이라는 명성을 얻어가고 있는 듯 하다.
그 중심에 선 김이순(52. 창평면 광덕리)부녀회장과 남편 최영운(59)씨는 그저 평범한 농촌부부다. 이웃 고서면이 고향인 김씨는 이웃사촌 창평 청년 최영운씨와 73년 결혼, 현암마을 산비탈 들녘을 가꾸어 오고 있다.
"결혼후에 정미소를 운영했었습니다. 벼농사도 1000평 남짓 했었구요. 우렁찬 방아소리에 흰쌀이 쏟아져 나오면 그것같이 보기 좋은 풍경이 없었지요."
먼지를 뒤집어 쓰는 일이라 마스크에 목도리까지 중무장을 해야했지만 최씨부부도 역시 농업인이었기에 수확한 쌀을 기다리는 이웃주민들의 농심(農心)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열성적으로 정미소를 운영해 오던 부부는 뜻하지 않았던 사고로 정미소를 중단하고 본격적인 농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000평의 수도작에서 출발해 밭농사, 그리고 현재 딸기재배와 자식같이 애지중지 하는 한우 70마리를 비육하는 축사까지, 이 모든 것들이 발전에 발전을 이루어 왔다.
"우리 마을은 오시면서 보셨겠지만 산골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게다가 가구수도 21가구밖에 안되고 대부분이 노인들입니다. 쌀농사에 의지하는 농가가 대부분였으니 수입사업이 필요했죠. 그래서 딸기재배를 주민들에게 선도하게 됐고 지금은 10여가구가 하우스 농가가 되었지요."
부인 김이순씨. 그녀도 역시 남편과 어깨를 견주는 창평의 대표적 우먼 파워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마을을 보살피고 있는 그녀는 현암마을 부녀회장의 소임과 함께 창평 27개면 부녀회장단의 단장을 맡고 있다. 가사와 농사일 그리고 부녀회장단의 수장으로 튼실한 삶을 뿌리내리고 있다.
"공감하는지 모르지만 농가의 주부로 사회활동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한시도 손을 뗄 수 없는 농사일과 아이들 뒷바라지, 정말이지 힘들때도 많습니다.그러나 저는 분명히 해야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당당히 1인 3역을 소화하고 있는 김씨는 '여성의 힘'을 믿는다. 그것은 자신이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의 단위가 가정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아이들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따스한 등받이가 되주는 어머니의 역할이 사회에서 여성들이 해야 할 일이라 믿고 있다.
또한 "여성의 활동이 개별적이어서는 안되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여야 된다"는 것이 김씨의 생각이다.
창평부녀회장단은 매년 휴경지 1400평에 보리와 콩 등을 재배해 이익금을 창평 초·중·고등학교에 장학금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결식아동 및 수술비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든든한 어머니의 역할을 해 오고 있다.
"농업인들은 매년 수확을 마치고 이듬해 농사를 준비할 때면 땅에 감사하며 퇴비를 뿌립니다. 그러면 땅은 농업인들에게 다시 풍년을 약속하죠. 농사일도 사회활동도 같은 이치 아닐까요. 사랑받고 함께하는 삶의 중요성을 아는 아이들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최씨 부부는 요즘 딸기하우스 1000평에 온 정열을 쏟고 있다. 부인 김씨가 딸기에 상처날까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바구니에 담아내면 최씨는 박스안에 일목요연하게 정렬시킨다. 박스가 하나,둘 쌓여 갈때마다 이들부부의 표정에 행복이 뭇어난다.
"붉은 빚을 뽐내며 고랑사이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딸기는 마치 사람사는 것 같아요. 하나가 병들어 버리면 다른 것들도 금새 썩어버리지요. 그래서 신경을 많이 써야 해요. 농사일이든 사회활동이든 마음을 주면 줄수록 잘자라고 잘 여문답니다."
땅이 베푼 은혜에 감사하며 그 보답으로 이 땅위에 사는 불우한 이웃을 살피는 일이 최씨부부에게는 또 다른 농업이다. 아내에게 사준 목도리가 아버지를 감싸고 다시금 딸아이의 목을 채워주는 것처럼 사랑은 부메랑의 속성을 띄고 있다. 이런 마음가짐이 최씨 부부에게 '맛깔스러운 삶'을 선물하고 있고 그래서 창평이 '인물의 고을'인가 보다. /김필식 記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