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있는 휴경지를 빌려 작년에 마을민들과 공동으로 콩을 재배, 콩과 메주를 판매해 4백여만원의 노인당 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나이드신 노인들의 복지와 효사랑에 쓰고 있는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할 마을주민들만 있다면 이런저런 마을 공동사업을 추진해 마을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은데 마을주민 대부분이 노인분들이라 마음은 있어도 일하기가 쉽지 않네요"
봉산면 제월2구 서봉마을 젊은 여성이장 최영미씨(37)의 아쉬움 섞인 한마디. 최영미 이장은 몇 년전 남편을 따라 도시에서 농촌으로 터전을 옮기고 이장까지 맡게된 우리 주변에선 보기드문 여성 캐리어 우먼이다.
현재 이장일 외에 봉산면 주민자치위원, 담양군지역혁신협의위원 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IMF때 귀농한 젊은 부부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고 어렵게 생활하거나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최영미씨 부부는 용케도 농촌에 잘 적응하며 대지에 피어나는 질긴 들꽃처럼 거칠고 모진 농사일을 이겨나가고 있다. 대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6년전 농촌에 내려와 힘들고 거친 농사일에 가족의 미래를 걸고 팔을 걷어 부치게 됐지만 서툰 농사일에 애초부터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닐였을 터. 게다가 젊은 여자로써 마을 살림까지 맡아야 하는 이장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으리라 충분이 짐작이 간다. 그러나 기자가 만나본 그녀는 강쟁리 들녘에 자리한 시설하우스에서 남편 최규용씨와 시아버지, 그리고 그녀 셋이서 밝고 환한 모습으로 끝물에 접어든 토마토 수확에 한창이었다.
"농사와 이장 일이 때론 힘들고 고달프지만 가족과 마을주민들이 항상 함께 하는 일이라 생각하면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또 시골에서 건강하고 올바르게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농촌 생활도 마음먹기에 따라 꽤 보람이 있다고 여기고 있어요." 잔잔한 미소와 함께 그녀의 말속에는 내면에서 다져지고 또 다져진 농사·농촌생활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30여가구 50여명이 살고있는 작은 농촌마을 제월2구 서봉마을.
노인들이 대부분인 이 마을에 도시에서 귀향한 30대 초반의 나이 어린 여성이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시골에 정착하고 마을이장까지 맡아 크고작은 마을일을 챙기고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일 어느것 하나 힘들고 어렵지 않은 때가 없었겠지만 최영미 이장의 미소에서는 지치고 그늘진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800여평의 비닐하우스 3동, 벼농사 14마지기를 지으며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남매를 건사해야 하는 농촌생활이 그리 쉽지는 않게 보였지만 밝고 건강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서 이 땅의 젊은 농촌부부의 희망을 옅볼 수 있었다.
최영미씨가 젊은 여성이장으로 마을일을 보면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모두 남자들인 봉산면 이장 모임에 홍일점 여자로 자리를 함께 하면서 낯설어 부끄럽기도 하고 행정도 잘 모르는 때라 뭘 어떻게 마을일을 챙겨야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고, 게다가 마을에 독거노인들이 많아 이들을 자주 찾아보고 보살펴야 하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던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지금은 어느정도 이력이 붙어 편안 마음으로 마을 일을 살피고 있지만 처음엔 "정말 꼭 내가 이장을 해야만 하나"하는 생각을 여러차례 갖기도 했다는 것.
이제 불과 2년여 동안 서봉마을 이장을 하고있는 그녀지만 이장을 맡은 첫해에 마을숙원사업인 마을회관을 건립할 수 있었고 자력으로 마을기금을 조성한 것은 물론 마을공터를 주차장으로, 회관광장을 아스콘으로 포장하는 등 짧은 기간동안 적지않은 마을일을 당차게 해냈다.
새마을창고를 개조해 마을노인들의 일거리·소득창출을 위한 천연비누 작업장으로 활용하고 마을안길을 아스콘으로 포장하는 일, 상수도를 들이는 일, 생활이 극빈한 마을주민 7-8세대와 집이 허름해 생활여건이 극히 열악한 2-3세대의 독거노인 가옥·재래식 부엌등을 쾌적하게 고쳐주는 일 등이 현재 그녀가 가장 바라고 소망하는 마을 숙원사업이다.
아울러 최영미 이장은"농사를 지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농산물을 시장에 내놓을 때 마치 도박하는 것 같은 불안한 심정이 든다"며 "농사꾼은 농사에만 충실하고 출하·유통·가격보전 등은 농협이나 행정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해 농민들이 땀흘려 생산한 농산물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면 정말 좋겠다"고 농산물 가격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농촌과 농사의 어려움을 대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