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일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남자들만 해왔던 일이라 아직도 선입견이 남아서일 뿐이지 여자라고 해서 힘든 것은 크게 없는 것 같아요. 동네일을 살피고 이웃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면서 혹시 도움을 줄 것이 없는가 돌아보는 일을 재미로 알고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벌써 6년째 담양읍 천변리 3구 살림을 도맡아 해오고 있는 배테랑 여성 이장 정숙희씨(58).
여성만이 가진 섬세함과 꼼꼼함으로 행정에서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대민사안들을 집집마다 빠짐없이 챙기면서 언제 어느때고 시시콜콜한 집안 사정이며 가족史를 누구나 부담없이 토로하고 얘기할 수 있는 친숙하고 따스한 정이 느껴지는 이웃집 댁이 바로 여성이장 정숙희씨다.
한 가정의 어머니요 아내, 손주까지 맡아 키우는 할머니로, 그리고 농사일에 때로는 남편의 가게일까지 거들어야 하는 일인다역의 버거운 생활을 해야하는 처지에서 이장 역할까지, 그야말로 누구못지않게 눈코뜰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정숙희 이장. 여기에 지난해 여름 첫 모임을 갖고 결성한 담양군 여성이장단 단장까지 맡고있어 그녀의 하루는 누구못지 않게 늘 바쁘고 열심히 살 수 밖에 없는 캐리어 우먼. 그렇지만 여자로써 이장 일을 맡아 6년째 해오는 동안 단 한번이라도 힘들거나 고달파서 포기하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마을 노인들이 너무 좋아해요. 남자보다 훨씬 섬세한데다 내집 내식구 일처럼 자상하게 일을 잘한다고....동네잔치나 이런저런 행사때면 맛있는 음식 하나라도 더 챙겨드리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는 말 한마디에도 노인들은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남자는 그렇게 못하는데 여자 이장 뽑아놓으니 이렇게 잘 하고 고마울수가 없다는 말을 들을때면 힘들게 생각되던 모든 것들이 일시에 사라지고 말거든요. 이런 보람과 긍지 때문에 더 즐겁고 재미있게 이장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여성 이장으로 일해오면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정색하는 정숙희 이장. "마을 일을 보면서 가장 힘들고 큰 애로를 느낄때가 추곡수매 때와 무슨무슨 기금, 성금 걷으러 다닐때지요. 마을에 배정된 수매량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집집마다 일정량을 배정하자면 이웃간에 다툼도 일어나고 서운한 소리와 오해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데 남자들 같으면 술한잔 하면서 훌훌털거나 화끈하게 오해를 풀 수 있는 일도 여자이다 보니 마음의 상처가 오래가고 쉽게 풀어지지 않아 힘들더라구요. 이제는 이장 오래하다 보니 주민들 이해시키는 요령도 알고 웬만하면 다들 믿고 따라주니까 별 어려움은 없지만 아무튼 이장 맡은지 1-2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어요"
일정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마을을 돌며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는 적십자회비니 이웃돕기 성금이니 하는 기금을 모금하는 일은 지금까지도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토로한다. 어느마을 이장들이나 다같이 느끼는 애로사항 이긴 하지만 면지역 마을과는 달리 천변리는 상가를 끼고있는 시내권 마을이다보니 유달리 마을기금 조성이 어렵고 그러다보니 연말연시 공식적으로 내야하는 각종 성금·기금을 맞추거나 주민세·자동차세 등 각종 고지서를 전해주기 위해 일일이 가가호호 돌며 다리품을 팔고 아쉬운 소리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 그래서 정숙희 이장은 하루빨리 천변리 3구 마을회관 갖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녀는 "다른 마을에는 군 지원과 마을기금으로 지은 훌륭한 마을회관이 다 있는데 유독 우리 마을만 변변한 회관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무척 아쉽다"며"각종 고지서와 반상회 소집, 행정소식 등을 고지하는 방송시설과 노인들이 편히 쉬고 지낼수 있는 휴게실을 갖춘 작은 사무실 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회관을 지을 마땅한 땅도, 마을기금도 한 푼 없지만 군에서 비어있는 상가 건물을 싸게 임대해서라도 마을회관을 만들고 노인당·회의실·방송실 등을 갖춰주길 희망한다는 것이다.
정숙희 이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이웃을 만났을 때 이들의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주고자 영세민으로 등록해 주는 일. 여성이장으로 6년을 일하면서 10여명의 이웃에게 이같은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을 큰 보람으로 느끼고 있다. 여성이장단을 조직하고 첫 단장을 맡았던 것도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만나면 여성의 섬세함과 자애로움으로 보살피고 그들이 새로운 삶의 희망을 갖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용기와 의지를 불어넣어 줄 수 있도록 서로 힘을 모으기 위해서이다.
"혼자서 하는 것보다 여럿이서 힘을 모아 함께하면 훨씬 든든하고 보람도 더 크지 않겠어요. 쉽게 생각하고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이웃의 작은 일일지라도 여성의 섬세한 손길은 놓치지 않거든요. 앞으로도 즐거운 마음으로 여성 이장으로써 제 역할을 성실히 할 생각입니다. 주위에서 많이들 도와주세요"
손주를 등에 업고 자리를 잠깐 비운 남편의 가게일을 보면서 취재에 응한 정숙희 이장은 인터뷰 도중에도 찾아오는 손님을 맞으랴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랴 응석부리는 손주를 달래느랴 바쁘기만 하다. 아내·어머니·할머니에 주부, 그리고 농사꾼이자 사업가의 아내, 마을을 돌보는 이장으로 일인다역의 많은 역할을 누구보다 잘 해내고 있는 정숙희 이장의 모습에서 '여성의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가를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 장광호 記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