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은 웨일즈에서 오후 늦게 버어밈 햄 시내에 도착했다. 그리고 시내 한 중앙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고 늦은 저녁식사를 하러 나왔다. 그 시간이 오후 7시 반에서 8시쯤 되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현재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거리는 인구 300만 버어밍햄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우리나라로 말하면 서울 명동이나 광주 충장로에 해당되는 곳이라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번화할 시간인데도 가게는 거의 대부분 문을 닫았고 거리는 살벌할 정도로 인적이 뜸했다.
가이드에게 궁금해 물어보니 영국은 어느 대도시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영국인들은 직장일이 끝나면 곧 바로 집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저녁 7시가 되면 거의 모든 가게도 문을 닫고 철수하여 가족과 저녁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쳐도 인구 300만의 대도시의 가장 번화한 거리가 이토록 사람이 없다니.... 시끌벅적하고 인파로 물결을 이루는 우리나라 대도시 풍경에 눈이 익은 우리 일행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직장 회식 등 여러 밤 문화에 젖어있는 우리나라 남성들에게는 영국의 밤 문화는 너무 심심한 일상일 것 같았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그래서 영국이나 유럽 쪽에 온 상사원들이나 유학생들은 얼마 못 버티고 한국을 그리워 하지만 같이 온 부인들은 절대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한단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빌딩숲 속의 거리가 너무 깨끗했다.
그 이유는 돌출 간판이 전혀 없었고, 휘황찬란한 밤 문화를 알리는 네온싸인 또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큰 업체나 빌딩도 동그랗고 조그마한 간판하나만 달랑 달려 있었을 뿐이다. (이 현상은 우리가 거쳤던 독일, 프랑스, 스위스 심지어 브라질까지도 마찬가지 현상이었다.) 그래서 거리가 산뜻하고 깨끗해 보였다.
인구 만 오천밖에 안되는 담양 읍 시가지만 보자! 얼마나 많은 돌출간판이 흉물스럽게 널려져 있는가? 얼마 되지 않은 담양 사람들이 어느 가게가 무엇을 팔고 있는지 대강 다 알 것이다. 그런데도 커다란 돌출 간판을 달아서 자기 가게를 홍보하기 위해 도시미관을 해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나라와 유럽의 생활환경이 다르고 문화적 차이도 다르다. 그러한 것이 이러한 간판문화의 차이를 나타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못된 것은 시급히 고쳐야 하고 우리가 받아들일 것은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선진 생태도시를 돌아보면서 아름다운 생태도시를 지향하는 우리 담양이 가장 시급히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간판과 묘지 문화였다고 느꼈다
또 한 가지 묘지문화는 영국뿐만 아니라 우리가 방문한 유럽이나 브라질 모두가 거의 같은 모습이었다. 이 문제는 독일에서 직접 가본 공동묘지와 함께 독일 편에서 다루고자 한다.
2) 런던
다음 날 아침 버어밍햄을 출발하여 밀턴케인스 시를 들리고 오후에 다시 런던으로 향했다.
런던에 처음 도착한 날 오후 늦게 런던에 도착하여 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루 묶고 다음날 아침 일찍 외곽도로를 통해서 막 바로 웨일즈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런던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저녁 7시40에 유로스타를 타고 지하터널로 되어있는 도버해협을 건너 프랑스로 가야했다. 밀턴케인스 시에서 오후 3시 넘어서 런던에 도착해서보니 런던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영국에까지 와서 런던의 명소들을 돌아보지 못하고 간다는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런던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 것을 취소하고 대신 도시락으로 기차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차로나마 런던시내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결정했다.
차로 돌아보는 2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런던시내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것처럼 현대식 건물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버어밍햄 밤거리와는 달리 낮이라 많은 사람이 길거리를 지나다니고 있었는데 인종들이 너무 다양했다. 인도인, 흑인, 아랍인들이 길거리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영국을 앵글로색슨 단일 민족 국가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조금 의외였다.
차로 돌아보는 런던 시내에는 중심지를 비롯하여 군데군데 많은 생태 녹지공원이 있었다.
1인당 녹지율이 세계 제일로 꼽힌다는 가이드 설명답게 도심지 한 중심인 런던 시내에만 7개에 해당하는 생태공원을 건설해놓았다. 시내에서 조그만 벗어나도 숲으로 둘려 쌓여진 공원이 보였다. 그 공원들은 시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했지만 동식물의 중요한 서식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최근 조사한 바에 의하면 런던 일대 반경 32키로 이내의 공원에서 야생 척추동물만 무려 3백41종이 산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사라졌던 연어가 템즈 강을 거슬러 올라와 시민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영국인들의 야생 동물에 대한 사랑은 엄청나서 가이드 말에 의하면 아주 최근에 지렁이를 밟아 죽여도 처벌하는 법이 생겨났다고 한다.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이란다.
우리가 웨일즈에서 버어밈햄으로 가는 도중 길에 수 십 키로 거리의 그 멋진 녹색초원구릉에 살이 오를대로 오른 야생 꿩 수천마리가 평화롭게 앉아서 먹이를 쪼아먹고 있었다.
우리일행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입맛을 다시면서 그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다. 영국은 정말 야생동물의 천국이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대영박물관을 보았다. 안 보았으면 엄청 후회 할 뻔했다.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문화의 유적들을 실물로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놀란 것은 우리 가이드의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었다.
깊은 고대 지식을 어찌나 맛깔스럽게 잘 설명 해 주던지 시간이 부족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차분하게 자세히 보면서 좀 더 깊이 있는 설명을 많이 듣고 싶었다.
특히 가이드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정말 흥미로운 사실을 많이 말해주었는데 지면 때문에 다 적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그분의 결론은 한 때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이 고대 그리스나 이탈리아 혹은 영원한 라이벌 프랑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천한 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이 심하다고 한다. 그래서 대륙 서구 유럽인들이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에 대해서 깊이 파고들었다. 그 결과 로마 문화는 그리스 문화에서 왔고, 그리스 문화는 이집트에서 왔고, 또 이집트 문화를 파고드니 그 문화가 동양에서 왔다는 것이다. 그것을 전시된 유물을 증거로 설명해주니 정말인 것 같았다.
동양을 문화의 근원지로 파악한 영국인들은 한국에 대해서도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보고 있다. 영국인들은 1988년 이전까지는 한국을 중국과 일본의 속국정도로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88올림픽과 2002월드컵을 거치면서 동양에서도 중국 또는 일본과 전혀 다른 그 이상의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한국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삼성, 현대, 대우, 엘지 등 대기업 브랜드는 세계 초일류 기업에도 뒤지지 않을 명성을 지녔다고 했다. 영국인들에게도 삼성에 입사하는 것은 최고의 자랑거리라고 한다.
없는 시간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박물관에서 쫓기듯이 나와 그 유명한 버킹검 궁전과 국회의사당,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을 차속에서 눈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버킹검 궁전 앞에서는 잠깐 내려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그 유명한 멋진 제복을 입은 경비병들의 교대 장면은 볼 수 없었다.
지나치는 길에 영국의 유명한 다우닝가 10번지 수상관저도 보았는데 다른 건물들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러한 것이 영국 민주주의가 성공 할 수 있는 전통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도 미처 보지 못한 영국 런던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컸다. 런던을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런던에서만 한 달 이상 머물러야한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단 몇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안보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유로 스타 역으로 가 프랑스로 가는 초고속 기차에 올랐다. 유명한 도버해협을 건넜다는데 우리는 바다 속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